
국내 원전 수출 정책을 둘러싼 산업통상자원부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 입찰 과정에서 한국형 원전 APR1400의 수출이 미국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며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과 대립했던 산업통상부가, 정작 2022~2024년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선 묵묵부답해 불공정 계약 논란을 사실상 방관했다는 지적이다.
23일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7일 미국 에너지부가 ‘체코 수출 노형에 웨스팅하우스 기술이 포함돼 있다’는 기술검증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안덕근 전 산업부 장관을 비롯해 한전 사장, 황주호 한수원 전 사장과 원전 관련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당시 미 에너지부는 산하 국립 아르곤연구소를 통해 실시한 기술 검증 결과를 토대로 ‘한국형 원자로(APR1400)에 미국 기술이 포함돼 있어 (미 정부의) 수출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 발표는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수원이 선정된 지 20일 만에 나온 것으로, 이후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에 50년간 원전 1기당 약 1조1400억 원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료와 기술사용료를 지급하는, 이른바 ‘불공정 계약’ 논란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산업부의 대응이다. 2017년 사우디 원전 수주 입찰 과정 당시 산업부는 “사우디 원전 수출을 위해서는 한미 원자력 협정에 의해 미국의 승인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입장을 밝히며 미국 통제 가능성을 인정했다. 당시 한전과 한수원이 “한국형 원전 APR1400은 100% 기술자립이 완료돼 해외 수출 시 미국의 동의 없이 수출이 가능하다”고 보인 입장과 대치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약 6~7년이 지난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는 산업부가 이 같은 입장을 유지하지 않았다. 안 전 장관이 직접 미 에너지부의 기술검증 결과를 보고받았음에도, 이후 산업부는 별다른 대응이나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달 열린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과의 ‘한미 에너지장관 회담’에서는 양국 장관이 협력 채널 유지를 위한 민관 파트너십 구축에 합의했다는 내용만 공개했다.
이와 대해 산업부는 “2017년 당시 산업부는 국회에 ‘기술 자립이 됐더라도 우리나라 기업이 수출하는 원전에 미국의 기술·부품·장비가 포함될 경우, 미 원자력법 등에 따라 미국의 승인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미 수출통제 원칙을 설명 드렸다”며 “체코 원전 수주와 관련해서도 ‘우리나라 기술 고유화로 미국 기술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미국의 수출 통제를 준수할 필요가 없으나, 미국 기술이 포함돼 있다면 수출 통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업부가 체코 원전 수주 전 과정은 물론, 지난해 8월7일 미 에너지부의 발표 이후에도 별도의 조치를 취하거나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점에서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해 허성무 의원은 “2017년 사우디 원전 수출 관련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던 산업부가, 이번 체코 원전 수출 과정에서는 ‘무개입’ 원칙을 견지해 왔다”며 “당시 대통령실의 외압이 있었던 것인지 24일 종합국정감사에서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