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검찰개혁 입법에 속도를 내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향후 위상이 사정기관 재편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사실상 해체하는 방향의 구조 개편이 추진되면서, 공수처의 권한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논의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출범 5년을 맞았지만 성과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여전한 가운데, 이번 개혁 국면이 공수처에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기소를 각각 행정안전부 산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법무부 산하 공소청으로 분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검찰청 폐지 시한은 내년 10월로 확정됐다. 기존 검찰이 맡아온 권한을 어떻게 분담하느냐에 따라 사정기관 전반의 지형이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수처가 아직 존재감을 온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월 출범 이후 올해 8월까지 공수처에 접수된 사건은 총 1만988건이지만, 이 중 기소는 6건(0.05%)에 불과했다. 단순 민원성 사건이 42.9%, 검·경 이첩이 36.4%로 나타나며 ‘성과 대비 과한 조직’이라는 비판이 되풀이돼 왔다.
인력 기반도 불안 요인이다. 조배숙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공수처 정원 85명 중 실제 근무 인원은 77명에 그쳤으며, 지난해 공수처를 떠난 검사만 13명으로 절반 이상이 이탈했다.
그럼에도 검찰청 폐지가 확정되면서 공수처의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중수청이 수사를, 공소청이 기소를 담당하는 구조 속에서 고위공직자 수사 영역에서 공수처의 비중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간 취약점으로 지적돼 온 수사력 부족 문제 역시 검찰 이탈 인력 유입을 통해 보완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실질적인 역량 강화에 성공한다면 공수처가 독립 사정기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권한 확대가 곧바로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사건 처리 속도와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구심이 남은 상황에서 ‘권한 대비 성과 부재’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검찰 및 다른 사정기관과의 역할 조정이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만큼, 제도적 충돌을 최소화하는 방향의 재정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수처가 △역할 구도 명확화 △조직 역량 확충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는 세 가지 과제를 충족해야만 실질적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정기관과의 권한 충돌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가 과도하게 확대되면 검찰을 대신하는 조직이라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며 “수사·기소 분리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검찰을 없애고 공수처가 검찰 역할을 맡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뒤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수처와 중수청 간 역할 중첩 문제도 심각해질 수 있고, 검사 유입이 늘면 기존 공수처 검사들의 역할이 축소돼 ‘검찰 장악’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수처가 제2의 검찰이 됐다는 지적과 권한 범위 혼란이 불가피할 수 있는 만큼, 과정에서 제기될 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수처는 정원 확대를 통한 대응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공수처 정원 확대 법안이 통과돼야 검찰 조직 변화에 맞춰 현실화가 가능하다”며 “현 상황에서는 여지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정권 차원의 검찰개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공수처는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 제도 재설계 과정에서 어떤 역할과 역량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공수처의 미래가 결정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