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장 “종묘 앞 고층건물 들어서면 세계유산 취소될 수도”

국가유산청장 “종묘 앞 고층건물 들어서면 세계유산 취소될 수도”

기사승인 2025-11-07 06:32:30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5년도 국가유산청 등에 대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宗廟) 인근 재개발 사업에 대해 “(고층건물 건축을 강행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허 청장은 전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이 서울시가 종묘 맞은편 재개발 사업지인 세운4구역의 높이 계획을 최근 변경한 것과 관련해 의견을 묻자 “저희는 실로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렇게 답했다. 허 청장이 세운4구역 재개발이 세계유산인 종묘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종묘 인근 세운 4구역의 높이 계획 변경을 골자로 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을 고시했다. 이에 따르면 해당 구역에 들어서는 건물의 최고 높이는 약 141m로, 당초 계획된 높이인 약 72m의 2배 가까이 된다. 이에 유산청은 “유네스코 권고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이라고 반발했다.

허 청장은 “저희가 2006년부터 서울시에 공문을 보내고, 회의를 거치면서 유네스코 권고안을 따르라고 말씀을 드렸다”며 “그런데 아쉽게도 (서울시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간에 기습적으로 39층, 40층을 올린다고 변경 고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아시다시피 종묘는 대한민국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며 “(사업을 강행하면) 부정적 영향을 생각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허 청장은 또 “이 문제는 크게 보면 (사업 구역이) 100m나 180m (떨어져 있느냐), 혹은 그늘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주느냐 하는 부분”이라며 “미래 세대에게 세계유산을 물려줄 것인지, 아니면 미래 세대에게 콘크리트 빌딩을 물려줄 것인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시 측은 “(세운 4구역은) 고도 제한 구역이 아니다”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세운 4구역은 종묘에서 약 180m 떨어져 있어 세계유산법이나 문화유산보호법상 고도 제한 구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5일 ‘녹지생태도심 선도 사업 서소문빌딩 재개발 사업 착공식’에서 “세운 4구역 빌딩 높이를 높이면 문화유산인 종묘에 그늘이 생긴다는 우려는 잘못된 시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으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더불어 한국의 첫 세계유산이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세계유산 구역 내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 건물 인허가는 없음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정혜선 기자
firstwoo@kukinews.com
정혜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