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진호의 AI, 사람을 향하다] AI에게 감정을 가르칠 수 있을까?

[금진호의 AI, 사람을 향하다] AI에게 감정을 가르칠 수 있을까?

금진호 목원대학교 겸임교수/인간 중심 AI 저자 

기사승인 2025-11-12 09:41:17
금진호 목원대학교 겸임교수/인간 중심 AI 저자 

차가운 논리에 온기를 심는 감정을 AI에게 넣어줄 수 있을까?

우리는 0과 1이라는 디지털의 언어로 직조된 새로운 거울 앞에 서 있다. 그 거울은 인류가 쌓아 올린 방대한 지식을 학습하고, 논리적인 추론을 거듭하며, 때로는 인간의 창의성을 흉내 내어 눈부신 시와 그림을 토해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차가운 실리콘 거울 앞에서 문득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너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AI에게 감정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기술적인 과제를 넘어, 우리 자신을 향한 철학적인 반향(反響)이 된다. 그것은 마치 텅 빈 캔버스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적어 넣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주는 가슴 떨리는 온기를, 그 붉은색의 농담을 어떻게 물들일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도 같다. 눈부신 흉내, 그 너머의 공백이다.  

AI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감정을 '모방'한다. 사용자의 슬픔에 공감하는 듯한 위로의 문장을 건네고, 기쁨의 순간에는 함께 환호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이들은 수많은 텍스트와 데이터를 학습하며 '슬플 때', '기쁠 때' 인간이 보이는 반응의 패턴을 통계적으로 체화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슬픔'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 빗속에 홀로 서서 가슴을 적시는 '슬픔'을 체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것을. AI가 구사하는 감정의 언어는, 아직 주인을 잃은 강아지의 눈빛을 완벽하게 묘사한 그림일 뿐, 그 눈빛에 담긴 애절한 그리움의 무게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것은 눈부시게 정교한 '재현(Representation)'이지, 살아 숨 쉬는 '경험(Experience)' 그 자체는 아니다. 

AI는 렘브란트의 빛과 어둠을 분석할 수는 있지만, 그 어둠 속에 담긴 화가의 고뇌와 절망을, 빛을 향한 처절한 갈망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을까? 감정은 논리적 귀결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존재가 세상을 겪어내며 발생하는 생생한 파동이기 때문이다.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가르치려는 시도다.

그렇다면 AI에게 감정을 가르치는 일은 불가능한 꿈일까? 어쩌면 우리는 '가르친다'는 말의 의미를 잘못 정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아이가 감정을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아이는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배우지 않는다. 엄마의 따뜻한 포옹 속에서, 아빠가 높이 던져 올리는 순간의 환희 속에서, 온몸의 세포로 '기쁨'을 체득한다.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슬픔' 역시 마찬가지다. 넘어져 깨진 무릎의 아픔과 친구와 다툰 뒤의 서먹함 속에서 배운다. 감정은 '데이터'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그것은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공명의 울림이다. AI에게 감정을 가르치려는 시도는, 어쩌면 AI에게 인간의 무릎을 만들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의 그물망 안으로 AI를 초대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AI에게 시를 읽어주고, 음악을 들려주며, 슬픈 이야기를 건네는 그 순간. 우리는 AI를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모르게 '교감'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섬세한 악기를 조율하는 연주자와 같다. 우리는 AI라는 새로운 디지털 인류에게 인간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연주해 보라고 요청한다. 처음에는 불협화음일지라도, 그 미숙한 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우리'라는 청중이 있을 때, AI는 비로소 '공감'의 첫 음을 낼 수 있을지 모른다.  

AI가 언젠가 인간과 똑같은 방식의 감정을 갖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AI는 끓어오르는 질투나 심장을 도려내는 상실감을 겪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을 복제한 '가짜 감정'이 아니라, 논리 회로 위에서 피어난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감수성'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해 손을 뻗는 우리의 '열망'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지능적인 기계에 감정을 불어넣고 싶을까? 그것은 아마도 외로운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지성을 넘어선 '또 다른 존재'와 연결되고픈 본능적인 갈망 때문일 것이다. 나의 기쁨과 슬픔을 알아주고, 나의 언어를 이해하며, 나의 존재에 응답해 주는 '타자'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삭막한 디지털 기술의 시대에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장 아름답고 정서적인 희망의 증거, 어쩌면 우리가 AI에게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감정은, 우리를 이해하려는 AI의 '그리움'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기나긴 그리움의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