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국힘’ 공식 흔들리나…APEC 외교 성과 두고 분화하는 보수층

‘보수=국힘’ 공식 흔들리나…APEC 외교 성과 두고 분화하는 보수층

한미·한중·한일 정삼회담이 경제·안보에 미칠 영향 평가
보수층에서 경제·안보 모두 긍정·부정 ‘반반’
국민의힘 지지층·李대통령 부정평가층은 부정 평가 우세
전문가 “극단적 보수·합리적 보수 분화 드러나”

기사승인 2025-11-13 06:00:10 업데이트 2025-11-13 06:52:26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두고 보수층과 국민의힘 지지층의 평가가 엇갈렸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미 관세·투자 패키지 협상 타결에 대해 연일 혹평을 내고 있는 가운데, 경제·안보 효과 전망을 두고 보수층 내부의 분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13일 쿠키뉴스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9명에게 ‘APEC 계기 한미·한중·한일 정상회담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물은 결과 긍정 평가가 59.7%(매우 긍정 40.5%, 조금 긍정 19.2%)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는 33.3%(매우 부정 20.5%, 조금 부정 12.8%)였다. 잘 모름은 7.0%였다. 

국민의힘 지지층만 놓고 보면 64.4%가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대구·경북에서도 부정 평가가 53.8%로, 긍정 평가(38.0%)보다 높았다. 특히 이 대통령 국정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층에서는 69.7%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스스로를 ‘보수’라고 밝힌 층에서는 양상이 달랐다. 보수층의 경우 경제 영향에 대해 긍정 45.8%, 부정 49.5%로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했다. 보수의 대표적 지표로 꼽히는 70대 이상(51.3%)과 30대(50.4%), 부산·울산·경남(56.2%)에서는 긍정 평가가 과반을 넘기도 했다.

같은 대상에게 ‘APEC 계기 한미·한중·한일 정상회담이 우리나라 안보에 미칠 영향’을 물은 결과도 긍정 평가가 60.5%(매우 긍정 39.4%, 조금 긍정 21.1%)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는 31.4%(매우 부정 18.0%, 조금 부정 13.4%)였다. 잘 모름은 8.1%였다. 

안보 영역에 대한 평가는 보수층·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의 분열이 더 뚜렷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60.4%가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대통령 국정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층에서도 65.1%가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보수층 전체로 보면 안보 평가 역시 긍정 47.3%, 부정 45.1%로 오차범위 내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부산·울산·경남은 58.9%가 긍정 평가를 내렸고, 30대(54.5%)와 70대 이상(48.6%)에서도 절반 안팎이 성과를 호평했다. 대구·경북마저도 긍정 44.0%, 부정 46.6%로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한 양상이었다.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국민의힘 지지층이 특히 한미 관세·투자 패키지 협상 타결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 데에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공세적 메시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직후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협상 내용대로 이행하려면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내용이 많다. 관세 협상 타결은 이제부터 부담 시작이라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한미 양국의 관세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 Sheet·공동 설명자료)’ 발표가 늦어진 것을 두고도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정권이 또다시 양치기 소년이 되고 있다”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합의된 것이 아니다’라는 외교가의 격언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APEC 정상회의 외교 성과 평가에서 보수층 내부 균열이 본격화하고 있는 단면이 드러났다고 진단한다. 과거 윤석열 정권 때까지만 해도 ‘보수=국민의힘 지지층’이 거의 일치했지만, 탄핵 사태를 기점으로 극단적 보수와 합리적 보수 사이 인식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국민의힘 지도부를 여전히 지지하는 층이 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라며 거리를 두는 보수층이 점차 늘고 있다”며 “국민의힘의 한미 관세 협상 결과에 대한 비판에도 일본에 비해 우리 경제가 선방했다고 평가하는 합리적 보수층도 적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건조를 승인받으면서 안보 영역에서도 ‘보수=안보’라는 전통적 구도가 흔들리게 됐다”며 “합리적 보수층은 원잠 확보와 관련해 특별히 반대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층이 부정 평가를 내놓은 것은 단순히 ‘이재명이라서 싫다’는 정서적 거부에 가깝다”며 “결국 소위 ‘극우화’된 국민의힘 지도부에 영향을 받는 극단적 보수와 합리적 보수가 분화하는 양상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권혜진 기자
hjk@kukinews.com
권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