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개가 뜨고 지는 하루, 성수의 불안한 전성기 [취재진담]

90개가 뜨고 지는 하루, 성수의 불안한 전성기 [취재진담]

3일에 한번씩 건물을 부수는 ‘팝업 성지’

기사승인 2025-11-20 13:31:33

성수동 팝업스토어 거리에 서면 K-뷰티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동시에 낯선 모습도 수시로 겹친다. 지난주에 자리를 지켰던 브랜드가 이번 주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거나, 얼마 전까지 텅 빈 공터였던 곳에 3층 건물이 들어차 있는 모습을 볼 때 그렇다. 

성수의 ‘팝업 시대’는 지난 2022년 디올 플래그십 스토어가 깃발을 꽂으면서 본격적으로 열렸다. 이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했고, 수천 개의 브랜드가 성수를 거쳐 갔다. 지금은 일평균 90개의 팝업이 생기고 사라지는, 말 그대로 회전율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동네가 됐다.

최근 성수를 방문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확연히 늘었다. 올리브영이 성수 상권을 분석한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성수 일대 유동 인구는 약 2000만명 증가했다. 연간 2억9000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온갖 자재로 꾸며져 있던 공간이 하루 만에 철거돼 앙상한 시멘트 구조물을 드러낸 상태를 마주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성수동 곳곳에서 1년 내내 짓고 부수기를 되풀이하는 풍경이 어느새 당연시되는 현실은 기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 계절 없는 장면들은 과연 이 동네의 미래를 잇는 이야기일 수 있을까.

철거에 따른 쓰레기의 양은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이다. 하나의 팝업스토어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평균 약 3톤(t)에 달한다. 성동구 내 사업장 일반폐기물 배출량은 2018년 51.2톤에서 2022년 518.6톤으로 4년 사이 10배 이상 늘었다. 폭발적인 폐기물 증가는 팝업스토어발(發)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동구청은 팝업스토어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등에 대응하기 위해 ‘성동형 팝업 가이드북’까지 만들었으나, 법적 강제성은 없는 상황이다. 

불안정하고 소모적인 생태계 속에서 성수동은 스스로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한때 내로라하는 패션 브랜드들이 가득 몰렸던 가로수길이 떠오른다. 현재 가로수길 일대는 40%가 넘는 공실률을 기록 중이다. 성수가 ‘가로수길 테크’를 탈 것이란 추측이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로수길과 성수는 지리적 특성, 타깃 연령대, 상주하던 브랜드의 단가나 장벽이 다르다.

다만 마케팅 수법은 시대와 유행을 타기 마련이고, 그 방식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팝업스토어를 중심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지금의 핫플레이스 전략 역시 영원하지 않다. 성수가 팝업 성지로서 누리는 전성기는 언젠가는 끝날 수밖에 없다.

브랜드가 ‘체험’을 내세우는 방식도 결국 비슷해지고 있다. 인플루언서와의 협업, 20% 확률로 본품을 받을 수 있는 돌림판, 받는 순간엔 기쁘지만 곧 버려지는 브랜드 굿즈들까지. 사람들이 룰렛을 돌려 샘플을 받고, 여러 제품의 테스터를 손등에 발라보는 것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성수는 무엇으로 이들을 붙잡을 수 있을까.

이미 대부분의 상점들은 성수를 떠났고, 그 자리에는 팝업스토어를 위한 단기 임대 공간이 들어섰다. 이는 팝업 열풍이 꺼졌을 때 그 공백을 메울 다음 사업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소금빵집이나 예쁜 컵에 담긴 7000원짜리 아인슈페너를 파는 카페, 소문이 난 감자탕집 정도로는 팝업이 빠진 뒤의 성수를 지켜내긴 어려워 보인다.

성수가 관광지의 명성을 이어가려면 다른 접근과 고민이 필요하다. 브랜드 차원에서 폐기물을 줄이는 방식과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살펴야 한다. 지자체는 규제와 지원책을 정교하고 신중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신발을 만드는 장인들의 섬세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성수가 무분별하게 팝업만 찍어내는 지역으로 남지 않기를, 또 지속성을 가진 창조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심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