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은 한국인데 속은 차이나…글로벌 유통망에 숨은 중국 [K-산업 구조中심④]

포장은 한국인데 속은 차이나…글로벌 유통망에 숨은 중국 [K-산업 구조中심④]

‘탈(脫)중국’을 외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K’라는 이름 아래 한국 산업은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중국의 부품·소재·자본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배터리 원료에서 태양광, 통신장비, 드론, 생활 소비재까지, 산업 곳곳에 스며든 중국 의존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쿠키뉴스는 ‘K-산업 구조中심’를 통해 ‘탈중국’의 구호와 ‘종속’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추적했다. 기술 자립을 내세운 산업정책의 그늘을 해부하고, 산업 자립의 구호가 실질적 공급망 독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을 짚는다. <편집자주>

기사승인 2025-12-04 06:00:09 업데이트 2025-12-04 09:42:37
지난해 열린 민·관 협력 위조상품 대응강화 컨퍼런스에 전시된 가품들. 특허청

한류 열풍 속에서 K-브랜드 수요가 급증하자, 이를 노린 중국산 위조·모방 제품이 해외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산업 전반에서 ‘가짜 K-브랜드’가 번지면서 소비자 피해를 넘어 한국 기업의 글로벌 신뢰도와 브랜드 경쟁력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4일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해외 114개국 1604개 플랫폼에서 적발·차단된 K-브랜드 위조상품은 총 87만3754건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20년 16만5460건, 2021년 24만7396건, 2022년 25만2544건으로 증가세를 보이다가 2023년에는 16만1110건으로 조정됐으며, 올해는 6월까지 4만7244건이 적발됐다.

이 가운데 ‘한국산’ 이미지를 앞세워 현지에서 상표를 먼저 등록하는 ‘무단 선점’ 사례는 중국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최근 5년간 모니터링된 무단 선점 건수는 2만891건이며, 이 중 51.7%(1만809건)가 중국에서 발생했다. 인도네시아(3555건), 태국(2919건), 베트남(1953건) 등이 뒤를 이었다.

위조상품이 가장 많이 차단된 플랫폼은 싱가포르의 쇼피(Shopee)로 전체의 59.4%(51만9048건)를 차지했다. 뒤이어 베트남 라자다(Lazada)가 23.2%(20만2549건), 중국 알리바바 그룹 계열 플랫폼이 10.3%(9만47건)를 기록했다. 

가격 경쟁이 치열하고 입점 장벽이 낮은 동남아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중심으로 위조 K-브랜드가 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표면적으로는 동남아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지만, 생산 기반은 여전히 중국에 집중돼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OECD와 EU가 발간한 ‘2025년 위조품 세계 무역 지도’를 보면 ‘위조품 거래 주요 출처 국가’에서 중국 비율은 45%에 달했다.

품목별로는 캐릭터·생활용품이 67.2%(약 58만 6863건)로 가장 많았으며, 뷰티 제품과 유아동용 제품이 각각 11.9%로 집계됐다. 의류는 4.8%였지만, 온라인 기반 위조 유통이 꾸준히 문제로 꼽히고 있다.

K-푸드·뷰티, “가품 한 개가 여러 정품 신뢰도 흔들어”

최근 인기있는 K-푸드도 ‘짝퉁식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식재산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달까지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서 유통된 우리 식품 분야 위조 상품의 차단 건수는 총 1만840건, 차단 금액은 111억원에 달했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차단 건수는 2609건으로 2020년 대비 43.2% 증가했으며, 차단 금액 역시 78억5309만원으로 무려 8712%(약 88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상품 차단은 피해 기업이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 직접 요청해 모방·위조 상품의 판매를 중단시키는 조치를 의미한다.

독일 바이로이트에 거주 중인 안지(24·여)씨는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한국 음식이 유행한다는 건 알지만, 실제로 보면 생소한 메뉴에 ‘코리안’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어 당황한 적이 많다”며 “한국 음식에 익숙해서 이상하다는 걸 느꼈지만, 독일·유럽 소비자 대부분은 이게 정품 K-푸드인지, 가품인지 구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산업협회 산업진흥본부 관계자는 “해외에서 한글 표기나 한국풍 디자인을 활용한 ‘K-스타일’ 제품은 법적으로 제재하기 어렵지만, 실제 문제가 되는 것은 상표·디자인을 무단 사용한 위조·모방 상품”이라며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국가별 상표·디자인권을 세분화해 등록하고, 모니터링·단속·소송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부·플랫폼·협회도 단속을 지원하고 있으나 결국 브랜드 내부의 인력·비용 투입과 적극적 참여가 있어야만 해외에서 권리를 지키고 위조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K-뷰티 기업 피해도 커지고 있다. ‘조선미녀(Beauty of Joseon)’를 운영하는 구다이글로벌은 최근 유사 상표 ‘조선미남’이 제3자에 의해 출원된 사실을 인지하고, 브랜드 혼동을 막기 위한 방어적 차원에서 이의 신청 및 출원을 진행했다.

구다이글로벌은 “최근 K뷰티 브랜드의 글로벌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국내외 일부 시장에서 정품을 모방한 유사품과 상표 도용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구다이글로벌은 주요 브랜드의 상표권과 유통 경로를 철저히 관리하며, 현지 유통 파트너 및 글로벌 플랫폼과 협력해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지난 4월 광저우 소재 화장품 가품 제조 현장을 단속했다. 이곳에서 국내 뷰티 브랜드 메디큐브를 베낀 가품이 다수 발견됐다. 에이피알

업계와 전문가들은 K-브랜드 위조·모방 제품 확산이 소비자 피해를 야기하는 것은 물론 국가 브랜드 신뢰도를 흔들 수 있는 문제라고 우려하고 있다. 모방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진품과 가품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기업은 경제적 손실에 이어 여러 정품의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는 평가다. 특히 위조 K-뷰티와 K-푸드의 경우 성분과 위생 기준이 불분명해 소비자 안전과 직결되는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국내 뷰티업계 관계자는 “위조 화장품은 성분이나 제조 과정이 불분명해 소비자 피해 위험이 크다”며 “개별 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를 넘어 K-뷰티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관계 기관과 협력해 해외 통관 단계에서 위조품 유입을 차단하고 있으며, 생산·유통에 관여한 이들에 대해선 강력히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K-브랜드 위조·모방 제품 문제는 글로벌 소비자들의 품질 인식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와 기업이 단순 적발에 그치지 말고 해당 국가에 대해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요청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국가가 충분한 대응 의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 국제 재판을 통해서라도 K-브랜드의 가치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소비자에게 일정한 마일리지나 보상을 지급하고 위조상품 신고를 독려하는 것도 K-브랜드 보호를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K-브랜드’ 지키기 나선다…예산 편성하고 AI 모니터링 강화

이런 가운데 정부의 대응 예산과 관련 인력은 반대로 줄었다. K-브랜드 위조상품 차단 사업은 지난 2020년 한시사업으로 시작해 지난해 본사업으로 전환됐지만, 관련 국비 예산은 2022년 32억 7400만원에서 2023년 15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쪼그라졌다.

같은 기간 위조상품 차단 건수는 2022년 25만2544건에서 2023년 16만1110건으로 56.8% 감소했다. 보호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대응 역량은 오히려 축소된 셈이다.

정부는 최근 들어 관련 예산을 재확보하며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지식재산처는 K-브랜드 인기에 편승해 한국 기업이나 제품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행위를 ‘한류편승행위’로 진단하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현지 실태조사 및 단속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식재산처는 해외 현지 공관과의 협조체계를 구축하며 경고장 발송, 민사소송, 공동출원 등 피해 맞춤형 대응전략 수립을 위해 94억원을 편성했다. 

또 K-브랜드의 위조상품 제작을 어렵게 하고 소비자가 정품 확인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위조방지기술 도입을 지원하는 예산 16억원과 AI를 활용해 위조상품 여부를 신속히 감정하고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는 감정지원체계 구축 예산 29억원을 편성했다.

박진환 지식재산처 지식재산분쟁대응국장이 25일 정부대전청사 기자실에서 지식재산 분쟁 예방·대응 강화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형 기자

부처 관계자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달 중기부는 ‘중소기업 온라인 수출 활성화 방안’을 놓고 업계 관계자들과 위조·상표도용 관련 현장의 문제점을 공유했다. 이 자리에서 중기부는 모조품과 가품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관세청, 지식재산처 등과 ‘K-브랜드 지식재산 보호 협의체’를 구성해 대응할 것을 약속했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이번 대책은 단순 판로 확대가 아니라 K-브랜드 신뢰를 지키고 중소기업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출발점”이라며 “물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연계되는 구조를 만들고, 세계 시장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위조 문제로 피해를 입은 K-브랜드를 돕기 위한 정책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은 국내에 사업자 등록이 된 개인사업자와 중소·중견·대기업을 대상으로 해외 주요 온라인 플랫폼의 위조상품 유통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식별을 지원하고 있다. 대상 플랫폼은 중국 알리바바 그룹과 징동을 비롯해 큐텐, 아마존, 라자다, 쇼피, 토코피디아 등이다.

위조상품이 적발될 경우 기업의 검증 절차를 거쳐 해당 위조상품 URL에 대해 플랫폼에 지식재산권 침해 신고를 진행하고, 판매자의 이의제기에 대해서도 대응을 지원한다. 기업 부담금 없이 운영되는 ‘해외 온라인 위조상품 유통 사전진단 서비스’의 경우 이달 11회차 모집이 마감됐다.

지식재산처 상표분쟁대응과 관계자는 “기업이 위조 제품을 인지하고 지식재산처에 지원을 요청하면 AI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을 활용하는 업체와 협력해 위조 상품을 선별·차단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진품과 구별이 어려운 경우에는 담당 인력이 직접 확인하는 방식으로 추가 검증을 거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류 인기가 높아지면서 뷰티 제품뿐 아니라 아이돌 굿즈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문제가 확산되며 연예기획사에서도 지원 요청이 들어오고 있으며, 기업이 별도 요청을 하지 않더라도 모니터링을 통해 ‘K-브랜드 사전진단서비스’를 운영, 선제적으로 위조 상품을 적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이다빈 기자 dabin132@kukinews.com


심하연 기자, 이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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