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의 視線] 천안시의회의 ‘역사의식 빈곤’

[조한필의 視線] 천안시의회의 ‘역사의식 빈곤’

기사승인 2025-11-27 13:00:06 업데이트 2025-11-29 12:49:36
천안 병천면의 아우내만세운동기념비. 정인보가 글을 짓고 김충현이 글씨를 쓴 한글비다. 사진=조한필 기자

천안 병천면은 1919년 4월 1일 아우내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당시 만세운동현장에서 유관순 열사 부모를 포함한 19명이 순국했다. 해방직후 병천주민들은 순국자 이웃을 추념하는 ‘아우내만세운동기념비’를 세웠다. 이 기념비는 충남도 기념물 58호로 지정돼 있다.

최근 천안시의회서 “(이 기념비가) 현 위치에서는 상징성과 역사성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유관순 열사 사적지 인근으로 이전·재배치해 역사적 연계성을 강화하자”는 청원이 제기됐다.

이어 복지문화위원회는 지난 21일 류제국 의원이 발의한 ‘충남도 기념물 제58호 문화재 이전 청원’을 심사해 통과시켰다. 이 청원은 제284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예정이다.

천안시의회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깊은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3년 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관련 논문을 게재한 인연이 있어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필자가 『역사와 담론』에 투고한 글 제목은  ‘1947년 아우내 만세운동기념비 건립의 역사적 의의’였다. 기념비가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만세운동현장과 가까운 구미산에 세워졌는지를 적었다. 

78년 전 건립된 이 기념비는 그 자체가 역사적 산물이다. 그해 2월 말 유관순 열사의 순국 사실이 28년 만에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그러자 일제치하서 ‘찍 소리 못하고 숨 죽이고 있던’ 병천주민들이 그제서야 만세운동과 순국자를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바로 유관순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추모사업들을 펼쳤다. 유 열사의 고흥 유씨 종친인 유제한·제만 형제가 앞장섰고, 김리호 병천면장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합세했다. 첫 사업은 기념비 건립이었다. 유제만씨는 당시 추모사업 내용을 상세히 기록한 『순국처녀 류관순 실기(實記)』를 남겼다.

실기에 따르면 추모사업에는 병천면뿐 아니라 천안 동부 6개면 주민이 참여했다. 우선 주민들은 사업비 충당을 위해 성금을 모았다. 주민·기관 등 총 221곳이 해방직후 어려운 시기인데도 십시일반 돈을 냈다. 그 명단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기념비 부지는 지역유지였던 송기영씨가 기증했다. 부지 조성 및 진입로 공사에 많은 주민이 나서 땀 흘리는 정성을 쏟았다. 당시 상황을 유씨는 이렇게 전했다.

“기념비 건립공사를 착공함에 있어 동부 6개 면민이 자진 동원하였는데 터를 닦고, 길을 내며, 석재를 운반하는 등 여러가지 힘든 일에 종사하던 수천의 군중들이 원기왕성하고 즐겁게 일하는 광경은 오로지 선열의 거룩한 정신을 추모함이 아니고 무엇이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루(感淚)을 금치 못하였다.”

1947년 11월 17일 구미산에서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다음은 당시 동아일보 기사 내용이다. “이날 하오 유관순기념사업회 관계자, 유족을 비롯하야 지방과 중앙의 각계 명사와 유관순 처녀의 모교 이화여중 학생들 등 무려 수만여명의 참렬로 엄숙하게 열리었다. ‘기미독립운동때 아우내서 일어난 장렬한 자최라’한 정인보씨의 지은 글을 궁체로 새긴 여섯 자의 돌비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 모두 삼십 년의 옛일을 아득하게 회상하며 명일을 바라보는 듯 묵념에 잠겼다 … 이어 김구, 이시영 양씨 대리와 중앙청 대표, 지방유지들의 애절 정중한 추념사가 있고 유족을 대표하야 경무부장 조병옥씨의 감사의 인사가 있고 … 우렁찬 만세 소리를 아우내장터 멀리 남겨주고 역사적인 이 제전은 5시경 끝마쳤다.”

기념비가 이같은 역사 현장을 떠나면 온전한 생명력을 잃는다. 기념비 이전 청원을 본회의서 의결하더라도 충남도 문화재위원회가 인정하긴 힘들 듯하다. 

3년전 기념비 관련 논문이 발표된 후 동아일보, 대전일보, 연합뉴스, 충청타임즈 등이 잇따라 기사를 보도했다. 근데 시의원들은 논문을 놔두더라도, 기사도 읽지 않은 모양이다.

기념비 이전에 앞서 유열사 사적지, 아우내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구미산 기념비로 관람객 동선을 이끌까 고민했으면 좋겠다. 기념비 때문에 건축행위 제한을 받는 주민에겐 죄송할 따름이다.

조한필 천안·아산 선임기자


 

 

조한필 기자
chohp11@kukinews.com
조한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