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 전 약가의 53.55%까지 받을 수 있는 제네릭(복제약) 최고가가 40%로 인하된다. 매출액의 일정 규모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혁신형 제약기업에는 보상체계를 강화한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신속 도입을 위해선 최대 240일 걸리는 급여 적정성 평가와 약가 협상 기간을 100일 이내로 단축한다.
보건복지부는 28일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제약산업 혁신을 촉진하고, 환자의 치료 접근성은 높이면서도 약제비 부담은 완화하기 위한 약가제도의 종합적인 개선을 추진해왔다.
이번 약가제도 개편으로 제네릭 약가가 대폭 깎인다. 제네릭 약가제도가 전면 개편되는 것은 2020년에 이어 5년 만이다. 제네릭과 특허 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은 현행 53.55%에서 40%대로 조정된다. 이미 건강보험에 등재돼 있는 약제에 대해서도 약제별 등재 시점과 현재 약가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순차적으로 조정된다. 정부는 2012년 일괄약가인하제도 시행 당시 산정률을 68%에서 53.55%로 14.45%p(포인트) 낮춘 바 있다.
약가 가산제도는 ‘혁신성’과 ‘수급 안정 기여’를 중심으로 개편된다. 계단식 인하와 다품목 등재 관리는 보다 엄격하게 강화된다. 계단형 약가제도로 적용되는 품목 수는 현행 20개에서 10개로 줄어들고, 동일 성분 11번째 제제부터 5%p씩 인하된다. 또 최초 제네릭 진입 시 10개 이상 제품이 등재되면 1년 경과 후 11번째 제제 약가로 일괄 조정된다.
계단형 약가제도가 강화되는 배경엔 제네릭 난립이 있다. 제네릭 약가 산정 구조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 이후 제네릭이 등재되면 일정 기간을 거쳐 조건을 충족한 경우 약가가 오리지널 약가 대비 53.55% 수준까지 낮아지는 구조다. 제네릭은 평균 수천억원대의 R&D 비용과 장기간 임상이 필요한 오리지널 신약과 달리 개발 비용과 시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강점이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제약사들은 제네릭 생산에 집중해왔다.
제네릭은 국내 급여의약품의 약 90%를 차지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6월 발표한 ‘2024 급여의약품 청구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급여의약품 등재 품목은 2만1962개로 이 가운데 단독 성분으로 등재된 오리지널 의약품은 2474개(11.3%)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은 동일 성분의 제네릭이 함께 등재된 구조다. 제네릭 처방액은 전체 약품비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복지부가 지난해 공개한 ‘제네릭 의약품 약가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2년 전체 약품비 25조9000억원 중 제네릭 처방액은 53%인 13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품질이 낮은 제네릭의 난립을 막기 위해 산정률을 한 단계 더 낮춰 제약·바이오산업을 제네릭 중심에서 R&D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내년 하반기부터 R&D에 적극 투자한 기업을 대상으로 혁신 창출 노력 정도에 비례해 보상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사후관리제도들은 약가 조정의 예측 가능성과 제도 운영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비된다. 적용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 사회·행정적 비용 부담 지적이 있어왔던 ‘사용 범위 확대’와 ‘사용량-약가 연동’의 약가 조정 시기는 정례화된다. 또 시장경쟁과 연계해 인센티브 기반으로 실거래가가 인하되는 방향으로 재편되며, 오는 2027년부터 시행된다.
급여 적정성 재평가는 선별등재 이후 약제도 대상으로 포함하되 임상 유용성의 재검토 필요성이 확인된 약제 중심으로 평가하는 등 제도 취지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편해 내년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최대 240일 걸리는 신약 등재 기간도 단축된다. 희귀질환 치료제 등재 기간은 100일 이내로 줄어들며, 중증·난치질환 치료제 등 혁신 신약의 가치를 평가·조정하는 비용효과성 평가 체계도 단계적으로 고도화한다.
단기적으로는 ICER(Incremental Cost-Effectiveness Ratio, 점증적 비용-효과비율) 가중치 모델 도입 등 임계값이 적정 수준으로 상향된다. ICER는 새로운 치료법이나 약물이 기존 것에 비해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 추가로 드는 비용은 얼마인지 등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ICER에는 임계값이 정해져 있는데, 보험급여 등재 시 ICER 임계값은 최대 허용치가 5000만원 선이다. ICER가 5000만원을 넘지 않으면 경제성이 인정되고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간 기존 치료제의 비용이 낮을수록, 신약이 연장한 생존 기간이 길수록 ICER 값은 불리하게 산출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중장기적으로는 AI(인공지능) 등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접목해 임상적 성과를 평가·반영하는 신규 모델을 정립한다. 또 혁신 의약품이 국내에 빠르게 도입되고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가칭 ‘약가유연계약제’ 적용 대상을 내년 1분기부터 대폭 확대한다. 이 제도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 간 별도 계약을 체결해 신속한 건강보험 등재를 지원하는 제도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표시 가격과 실제 거래 가격 구조를 국내 약가에도 반영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고시가격이 곧 실제 거래가격이어서 이중가격제도를 운용하는 국가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약값이 상대적으로 낮게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는 종합적 약가 평가·조정 기전을 내년 안에 마련해 2027년부터 3~5년 주기로 적용할 계획이다.
필수의약품 수급을 안정화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됐다. 우선 장기간 개선 없이 운영되던 ‘퇴장방지의약품’은 지정 기준을 상향하고, 원가보전 기준을 현실화한다. 또 국산원료를 사용한 국가필수의약품에 적용하던 가산을 신규 등재 의약품에서 기 등재 의약품까지 확대한다. 수급 불안정 약제에 대해선 선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원인별 맞춤 조치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번 개편안은 추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이형훈 복지부 차관은 “이번 종합적 개선 방안을 통해 우리의 약가 제도를 주요국 수준으로 선진화해 국민들의 치료 접근성은 대폭 높이고, 약품비 부담은 경감될 것”이라며 “혁신 및 보건 안보를 위한 투자 정도에 상응하는 합리적 보상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국내 제약산업계가 보다 진일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