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진호의 AI, 사람을 향하다] 금요일 오후의 해방, AI는 우리에게 '시간'을 돌려줄 수 있는가!

[금진호의 AI, 사람을 향하다] 금요일 오후의 해방, AI는 우리에게 '시간'을 돌려줄 수 있는가!

금진호 목원대학교 겸임교수/인간 중심 AI 저자 

기사승인 2025-12-10 09:48:27
금진호 목원대학교 겸임교수/인간 중심 AI 저자 

금요일 점심시간이 지나면 직장인들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 주말을 향한 설렘과 일요일 저녁에 찾아올 우울함의 사이클. 우리는 이 반복되는 굴레를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따르고 있는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제'는 태초부터 존재했던 법칙이 아니다. 1926년,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노동자가 충분히 쉬어야 자동차를 살 소비력도 생긴다고 도입한, 이제 막 100년이 되어가는 낡은 발명품일 뿐이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에 쓴 칼럼에서 흥미로운 예언을 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성이 높아지면 100년 뒤 인류는 '주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2026년을 코앞에 둔 지금, 우리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인터넷, 고성능 컴퓨터가 등장해 업무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니 어쩌면 더 바쁘게 일하고 있다.

왜 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시간에서 해방시키지 못했는가? 기술이 시간을 아껴주면, 우리는 그 남는 시간에 '더 많은 일'을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이메일이 편지를 대체하자 소통은 빨라졌지만, 그만큼 처리해야 할 메시지의 양이 폭증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기술을 '휴식의 도구'가 아니라 '착취의 도구'로 써왔다. 그런데 지금, 이 오래된 시간표를 뒤흔들 강력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바로 AI라는 보지 못했던 기술이다.  

과거의 산업혁명이 인간의 '근육'을 기계로 대체했다면, AI 혁명은 인간의 '두뇌', 그중에서도 지루하고 반복적인 인지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이것은 질적으로 다른 변화다. 엑셀은 계산을 빨리 했지만, 수식은 인간이 짜야 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맥락을 이해하고, 초안을 작성하고, 데이터를 요약한다. 우리가 업무 시간에 쏟는 창의적이고 결정적인 판단을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해 준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회의록을 다듬고, 이메일 문구를 고민하는 '중간 과정의 노동'을 대체한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는 '소외된 노동'이다. 내 영혼이나 창의성이 들어가지 않는, 기계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고역(Toil)들 말이다. 

AI가 4.5일제의 열쇠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는 인간을 직장에서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지 않게 일해야 했던 시간'을 삭제해 줄 수 있다. 4시간 걸리던 보고서 초안 작성을 AI가 10분 만에 끝낸다면, 남은 3시간 50분은 인간의 몫이다. 이 시간을 더 많은 보고서를 쓰는 데 쓸 것인가, 아니면 동료와 대화하고, 깊이 사색하고, 혹은 일찍 퇴근하여 가족과 보낼 것인가?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선택의 문제다.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로 구분했다. 생존을 위해 땀 흘리는 것이 '노동'이라면, AI는 우리를 이 고통스러운 노동의 영역에서 구원할 잠재력이 있다.

최근 국내외 기업들이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주 4일제 혹은 4.5일제의 성공 사례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근무 시간만 줄인 게 아니라, 업무 방식을 혁신했다는 점이다. 불필요한 회의를 없애고, AI 툴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업무 밀도를 높였다. 결과적으로 생산성은 유지되거나 오히려 올랐고, 직원들의 삶의 질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물론 낙관론만 펼치기엔 현실의 벽이 높다. 기업은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시간 단축'이 아닌 '인원 감축'이나 '이윤 극대화'로 연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AI가 다 해주니 3명이 할 일을 1명이 하고, 나머지는 해고하는 식의 접근이다. 이렇게 되면 AI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AI 시대의 주 4.5일제는 '덜 일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다르게 일하는 것'이 핵심이다. AI라는 압도적인 효율성의 도구를 손에 쥐고도 여전히 주 40시간, 50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술에 대한 모독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직무유기다.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AI가 내 일자리를 뺏을까?"라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AI를 통해 확보된 시간을 나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주 4.5일제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 '시간'이라는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배당하자는 사회적 합의다. 금요일 오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서며 느끼는 햇살. 그 여유 속에서 읽는 책 한 권, 아이와 나누는 대화, 혹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그 창조적 게으름 속에서 인간은 다시 인간다워진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