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의 발전은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암 치료 환경을 바꿔놨다. 전체 암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0%를 넘었고, 수많은 이들이 병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청년기에 암을 겪은 이들은 학업, 취업, 인간관계 등 삶의 중요한 국면에서 오랜 기간 깊은 단절을 경험한다. 사회적 시선과 제도의 공백 속에서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치료를 넘어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7편에 걸쳐 함께 고민해 본다. [편집자주] |
암 치료로 중단된 경제활동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암생존자들이 직장 복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암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지 못해 직장에서 내몰릴 위험도 크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암을 이겨낸 청년들을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이 강화돼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다.
20일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매년 약 15만 명의 신규 암생존자가 발생하지만 이들 모두가 일상을 회복하는 것은 아니다. 2022년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에서 만 19세 이상 성인 암생존자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 중 79.9%(1198명)가 ‘암 진단 전의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피로감(61.8%), 우울·불안 등과 같은 정신 문제(36.4%), 통증(27.0%), 식생활의 어려움(24.5%), 기억력·인지기능 저하(21.4%) 등 이유는 다양했다.
암생존자에 대한 편견은 일상 복귀의 장애물이다. 스트레스나 피로가 암 재발에 영향을 주거나 정상적인 업무가 힘들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난해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가 20~64세 일반인 2500명에게 ‘만약 응답자가 고용주라면 암생존자 채용 시 가장 고민되는 부분’을 물었더니 44.4%가 ‘업무로 인한 건강 악화 가능성’을 꼽았다. 뒤이어 △체력 저하 23.2% △재발에 대한 우려 13.3% △업무능력 8.0% △암생존자에 대한 처우 7.2% △직장생활 적응 3.5% 등으로 나타났다.
서지연 부산시의회 의원은 “사회 초년생 시기에 암에 걸려 치료 후 취업하려 해도 경력이 없어서 많은 시간과 품이 든다”며 “시험을 쳐서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한정하거나, 탄력근무제처럼 유연한 근로환경이 보장되는 곳을 선택하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병을 숨기다 커지는 외로움
김희정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는 “실제 직장에서 병을 숨기는 암생존자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암을 겪었단 사실을 알리면 불이익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김 교수는 “암을 숨기는 과정에서 환자 자신은 더 외롭고 힘들어진다”며 “건강 때문에 회사 회식에서 빠져야 할 때 암이었단 사실을 숨기고 변명을 늘어놓을수록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며 어울리지 못하고 외로워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외로움은 고립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자신의 병을 숨기는 과정에서 본인이 어려움을 고스란히 안고 가게 된다”면서 “특히 청년 암생존자들은 아직 젊으니까 지지 기반이 약한데, 누군가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어 주변의 관심과 지지가 절실하다”고 짚었다.
이어 “청년 암생존자들이 자신의 병을 숨기지 않고 사회로 나와 활동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최근 서울아산병원에서 창단한 ‘마이 호프(MY HOPE)’ 운동 크루를 소개했다. 마이 호프 크루는 의료·심리·사회·운동·영양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젊은 암생존자 통합지원 프로그램이다. 암환자·가족·친구 등으로 구성된 팀이 운동과 소통을 통해 암을 극복해 간다. 마이 호프 크루는 내년 4월까지 달리기, 등산 등 정기 운동 활동을 이어가며 젊은 암환자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암 인식 개선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김 교수는 “크루를 만들기 전에는 진료실에서 암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거의 못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많은 대화를 했다”면서 “한 달에 두 번 직접 이들을 상담해서 잘 활동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서로의 활동을 공유해 1년 뒤 새로운 암생존자들에게 이들의 이야기가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지역사회 ‘토탈 암케어 플래닝’ 필요
암생존자들의 빠른 사회 복귀를 위해 지역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장윤정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장은 “지방의 환자가 서울 대형병원에서 암 치료받았다고 했을 때 이 환자가 어떤 암이었고,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알아야 살던 지역에서 적절한 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데, 알 도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영국과 일본의 경우 환자의 암 치료가 끝나면 주치의가 그동안 어떻게 치료했고, 특이점은 무엇인지 등이 담긴 관리계획서를 작성해 암센터, 보건소 등 지역 의료기관들에 공유한다. 장 센터장은 “치료 후 6개월마다, 1년마다 챙겨야 할 것들이 다 정리돼 있으니 지역 병원 의료진은 더 신경 쓰게 된다”며 “암생존자들은 어떤 걸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 자신의 잘못된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실천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영국이나 호주처럼 치료부터 관리까지 한 지역 안에서 연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토탈 암케어 플래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