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대도 세대분리 돼요”…청년 자립 가능한 나라로 첫걸음 [세대분리법을 부탁해①]

“이제 20대도 세대분리 돼요”…청년 자립 가능한 나라로 첫걸음 [세대분리법을 부탁해①]

본지 ‘이상한 나라의 세대분리법’ 보도 1년 후, 정부 시범사업 착수
부모 지원 끊긴 30세 미만 청년도 독립 가구 인정
가족관계 단절 입증 절차 정비…지자체, 발굴 위해 고군분투
“복지 아닌 생존권 문제…청년 독립 주체 인정 계기되길”

기사승인 2025-12-29 06:05:04 업데이트 2025-12-30 10:05:05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취업·결혼을 하지 않은 20대 청년을 독립 가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만 30세 이상’만 세대분리가 가능한 기준 탓에, 폭력·단절 등으로 집을 나온 청년 상당수가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려났다. 이 같은 현실을 짚은 쿠키뉴스 보도 이후, 정부가 모의적용 시범사업에 나서며 제도 개선에 첫 발을 뗐다. 사진=박효상 기자

 

아주 작은 변화다. 지난 10월 정부가 ‘청년 가구분리 모의적용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제 가족과 단절된 20대 청년도 자립해 복지 지원을 받을 방법이 생겼다. 지난해 쿠키뉴스의 ‘이상한 나라의 세대분리법’ 보도 이후 생긴 결과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다. 30여 년간 공고했던 ‘가족 중심’ 복지 체계에 균열이 났다. 청년도 독립된 권리 주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금 시범사업은 제대로 가고 있는가, 올바르게 제도화될 수 있는가. 쿠키뉴스가 후속 취재를 통해 변화의 순간을 기록했다. [편집자 주]

‘만 30세 이상’만 가능한 세대분리법의 문제를 지적한 본지 보도 이후, 정부가 제도 개선을 위한 모의적용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청년들이 가족관계 단절을 입증하기 쉽도록 절차를 보완하고,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대상자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고립 청년들을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고, 신청 건수도 적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은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부터 ‘기초생활보장제도 청년 가구분리 모의적용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부모와 따로 사는 19~29세 미혼 청년을 조건에 따라 부모와 분리된 가구로 인정해 수급권을 보장하는 정책이다. 기존 생계급여를 받고 있는 부모와 다른 곳에 거주하는 20대 자녀뿐 아니라 비수급 가구 출신이었어도 부모와 단절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청년들도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지난 26일 발표한 '제2차 청년정책 기본계획'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 가구의 청년이 독립해 거주할 경우, 생계급여를 부모와 분리 지급하는 시범사업 내용을 포함하며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일부 20대 청년이 독립가구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행 세대분리 제도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조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세대분리법)은 부모와 따로 살더라도, 미혼·미취업인 30세 미만  청년은 서류상 부모와 동일 가구로 본다. 결혼하거나, 일정 소득(올해 기준 95만6805원) 이상을 벌어야 독립가구로 인정한다. 과거와 달라진 결혼·노동 현실 속에서 상당수 청년이 각종 복지 지원 정책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1999년 제정돼 시대와 맞지 않는 세대분리법의 허점을 지난해 쿠키뉴스가 단독 보도한 바 있다. (“20대는 안돼요”…30세 미만은 세대분리 불가능, 아셨나요? [이상한 나라의 세대분리법①])

보도 이후 정부는 청년 세대분리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에 나섰다. 지난 4월 복지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청년 가구 기준 개선 간담회’를 열고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에 대한 정책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많은 관심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개선 방안도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적정 보장 범위·수준과 가구 분리 시 파급효과 등을 평가·보완해 현실에 적용하도록 검토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무조정실도 청년 세대분리 문제를 정부에서 직접 다루는 청년 의제로 선정하며 해결 의지를 보였다. 지난 9월 발표한 ‘국민주권 정부 청년 정책 추진 방향’에서 기초생활수급자 부모와 따로 사는 19~29세 독립 청년에게 생계급여를 분리 지급하는 방안을 모의적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 결과가 현재 4개 지자체에서 진행 중인 ‘청년 가구분리 모의적용 시범사업’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 복지부의 움직임에 대해 ‘한 발 나아간 변화’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쿠키뉴스가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답변서에서 인권위는 “복지부가 부모와 주거를 달리하는 20대 미혼 청년 중 취약한 상황에 처한 청년에 대해 보완책을 검토하는 것이 기존 제도에 비해 진전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 2020년 세대분리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도 “개인 단위 복지 체계로의 전환”이라며 이번 제도 개선에 의미를 부여했다. 정용제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연령을 이유로 복지 안전망에서 배제됐던 청년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려는 진전된 시도”라고 정의했다. 이어 “부유층 자녀의 부정수급 우려보다 위기 청년의 구제를 우선하는 전향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기틀이 되길 바란다”며 ‘연령 기준의 전면적인 완화’와 ‘청년 상황을 파악하는 전문적 판정 시스템 보완’을 남은 과제로 지목했다.

20대 청년이 세대분리 신청 시 가족관계 단절 입증을 위해 필요했던 서류들. 사회보장급여 신청(변경)서, 소득·재산 신고서, 금융정보 등(금융·신용·보험정보) 제공 동의서, 가족관계 해체 및 부양 거부·기피 사유서, 가정폭력 쉼터 상담 기록, 청소년 쉼터 상담 기록, 통장거래내역 사본, 실거주 확인서 등을 제출해도 세대분리 신청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박효상 기자

가족관계 단절 입증 쉬워져…지자체도 적극 동참

이번 시범사업의 핵심 개선 사항 중 하나는 가구분리를 신청하는 청년들의 가족관계 단절 입증 서류를 규정했다는 점이다. 그간 청년들은 자신의 가족관계가 단절됐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해 가구분리에 실패하는 일이 많았다. 단절을 증명하는 서류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는 점이 문제였다. 담당자 개인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에 신청자도, 서류를 처리하는 지자체 입장에서도 부담이 컸다.

이에 복지부는 청년단체, 보호기관 등이 발급한 의뢰서를 주요 자료로 활용하도록 지자체에 지침을 내렸다. 해당 의뢰서엔 대상자 인적사항, 의뢰서 작성기관 정보, 청년의 가족 관계 해체 상황 등 개별 상담 내용, 보장 필요성에 대한 시설장 의견 등이 담겼다. 이제 청년들은 관련 단체에 상담을 신청해 가족관계가 단절된 상황과 사유를 설명하고 의뢰서를 받으면 된다. 더 이상 청년이 가족관계 단절을 인정받기 위해 담당자의 눈치를 보거나 행정 창구에서 읍소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가구분리를 담당하는 지자체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시범사업에는 총 4개의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각 지자체들은 “청년 저소득층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계양)”, “적극 행정에 도전하기 위해(철원)”, “사회복지직의 소명(해남)” 등 신청 이유를 설명했다. 대구 달서구청 관계자는 “청년들의 실질적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자 적극 공모했다”면서 “사실상 가족 기능이 상실된 청년을 별도 가구로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더 주는 문제를 떠나 청년이 부모의 부속물이 아닌 ‘독립된 성인’으로 인정하고, 사회 안전망 안으로 포용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전엔 지자체에서도 감사를 의식해 사안을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의뢰서를 주요 자료로 활용하는 지침 덕분에 서류 처리 시간을 줄이고 입증 책임에서 벗어나게 됐다.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 대구 달서구청 관계자는 “공무원이 개별적으로 사실 조사를 하느라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청년의 상황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인천 계양구청 관계자는 “의뢰 사유의 내용이 충실히 작성돼 있다면 입증 어려움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범사업에 맞는 사례 발굴과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을 활용해 대상 가구를 선별하고, 청년들을 직접 만나는 등 대상가구를 직접 찾아 시범사업에 대해 알리고 있다. 전남 해남군은 청년 행사 때 부스를 세워 사업 취지를 알리고, 지역 청년단체를 찾아다니며 시범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대구 달서구는 청년 관련 시설 6개소와 종합사회복지관 7개소에 협조 공문을 발송하고, 구청 SNS와 보도자료로 적극 홍보했다. 인천 계양구는 청년 관련 협력기관 실무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고, 강원 철원군은 대상가구에 여러 번 전화하는 방식으로 시범사업을 알렸다.

다만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홍보에도 시범사업에 사례가 50건에 못 미친다. 시범사업 선정 지역 중 일부가 청년 분포가 적은 농촌 지역이기 때문이다. 모집단이 작으면 제도 개선의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 또 청년단체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청년 중 일부는 통계나 시스템에도 잡히지 않아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10대 청소년들이 시범사업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등 극복하려 했던 나이 기준이 여전히 공고하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전문가들 “복지 아닌 청년 생존권 문제…독립 주체 인정 계기되길”

전문가들은 이번 시범사업이 제도화로 이어져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도 “지금까지 제도 밖에 있던 사각지대 청년들을 찾아낸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면서 “부모와 단절되었거나 폭력·학대 등으로 집을 나온 청년이 제도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을 부모의 종속물이 아닌 독립된 권리 주체로 인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을 맡았던 유재은 스페셜스페이스 대표는 “세대분리 기준 개선이 주는 가장 큰 도움은 ‘재정적 지원’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이 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원이다. 위기 순간에 버틸 수 있는 힘을 보태는 완충 장치가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청년을 독립된 권리 주체로 인정한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번 시범사업을 계기로 한국 사회보장 체계의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현재 제도는 호적상 부모나 자식이 잘 살아도 전혀 지원을 안 해주거나 연락이 안 되는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면서 “공공부조 원칙에 따라 가정의 실질적 환경을 조사해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보장은 사람이 죽지 않게 하는 생존의 문제고, 복지는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 제도는 사회보장의 영역”이라며 “사회보장 체계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를 하는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최은희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최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