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황금함대’ 속도전…“한화 넘어 K-조선, 뭉쳐야 뚫는다”

트럼프 ‘황금함대’ 속도전…“한화 넘어 K-조선, 뭉쳐야 뚫는다”

기사승인 2025-12-29 17:19:11
'트럼프급' 전함 소개하는 트럼프 대통령.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황금함대(Golden Fleet)’ 재건을 공식화하면서 K-조선과 미국의 협력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화오션이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미국 진출의 포문을 열었지만, 트럼프 측이 요구하는 해군력 증강의 압도적 속도를 맞추기 위해선 단일 기업을 넘어선 ‘K-조선의 생산 역량 결집’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황금함대’는 미 해군의 대규모 함정 현대화 전략을 상징하는 핵심 구상으로, 총 280~300척 규모의 전력 구축을 목표로 한다. 지난 26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 함대는 신형 프리깃함과 소형 함정, 그리고 일명 ‘트럼프급’으로 불릴 차세대 전함 등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조선업 협력 요청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됐다. 중국 해군력의 팽창 속도가 미국의 자체 건조 능력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 조선업을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번 선언은 한국의 기술과 자본을 미국 내로 적극 유입시켜 조선업 생산 기지를 본토에 이식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미국이 보내는 신호는 단순한 러브콜이 아니라 ‘SOS’ 수준의 절박함”이라며 “지난 트럼프 1기가 자국 기업의 회귀에 집중했다면, 2기는 동맹국의 전략 기업들의 생산 기지 전체를 미국 내로 이식시키는 일명 ‘리쇼어링 2.0’ 형태로 진화했다”고 상대적 비교를 통해 진단했다.

문제는 미국이 ‘리쇼어링 2.0’을 실현하는 과정이 상대인 우리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 해군 함정의 선체와 상부 구조물을 반드시 미국 내에서 건조하도록 규정한 ‘번스-톨레프슨 수정안(Byrnes-Tollefson Amendment)’은 걸림돌이다. 이 법안이 건재한 이상, 한국 거제나 울산 조선소에서 군함을 완성해 미국으로 직수출해 제조 경쟁력을 키우는 길은 원천 봉쇄된다.

박진호 전 방위산업추진위원회 위원은 “이번에 트럼프가 특정 기업을 언급한 것은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한화오션처럼 보다 많은 국내 조선소들이 미국 현지 직접 투자에 나서기를 유도 혹은 압박하는 정치적 수사로 봐야한다”며 “법적 한계를 뚫기 위해선 미 의회 설득이 필수적인데, 의회가 자국 산업 보호와 육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정치적 입장은 쉽게 변화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조선소는 유력한 ‘우회로’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필리조선소는 그간 상선과 훈련함 위주로 운영돼 온 탓에, 현재의 설비와 인프라만으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최신 이지스함이나 호위함 건조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군함 건조에 필수적인 보안 등급(Secret Clearance) 시설과 특수선 전용 인프라도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업계는 이러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만 최소 3~5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가 필리조선소를 약 1억 달러(약 1380억 원)에 인수했지만, 이를 본격적인 군함 건조 기지로 전환하려면 인수 금액의 50배에 달하는 약 5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설비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조선소 확보는 미국 시장 선점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라는 점에서 한화로서도 피할 수 없는 선택지로 평가된다.

이처럼 법적 제약과 ‘자국 내 생산’ 원칙이 맞물린 상황에서, 업계에서는 ‘K-조선 생태계의 현지 이식’이라는 대안적 전략이 부상하고 있다. 완성 함정을 수출할 수 없다면, 한국이 보유한 공정 기술과 조선소 운영 시스템, 자동화·생산관리 기술 등을 미국 조선소에 이식해 한국식 생산 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단순한 설비 투자에 그칠 것이 아니라,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들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링 역량과 조선업 공급망 관리(SCM) 노하우까지 미국 현지에 결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황금함대’ 구상은 한국 조선업에 분명한 기회”라며 “다만 기술 유출, 국내 생산 공동화같은 리스크도 공존하기에 우리가 하청기지가 아닌 미국 안보의 핵심 파트너로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K-조선 컨소시엄’과 같은 정교한 셈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
breathming@kukinews.com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