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원금, 아빠가 다 써요”…청소년 울리는 세대분리법 [세대분리법을 부탁해③]

“내 지원금, 아빠가 다 써요”…청소년 울리는 세대분리법 [세대분리법을 부탁해③]

가정폭력 피해 집 나온 청소년들, 시범사업 대상서 제외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반해야”…입증 서류 내도 거절
부모도 국가도 보호 않는 탈가정 청소년들…음지로 내몰려

기사승인 2025-12-30 06:05:04 업데이트 2025-12-30 09:45:46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나온 청소년들은 세대분리를 하지 못해 제도권 밖으로 떠밀린다. 타포린백,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고시원, 쉼터 등 취약주거를 전전한다. 박효상 기자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흉기를 집어든 날이었다. 집을 나가야 했다. 당시 열한 살이었다. 옷 한 벌도 못 챙기고 집을 뛰쳐나왔다. 인천을 벗어나 서울로, 다시 지방 도시로 떠돌았다. 아는 형의 원룸 바닥에서 자고, 청소년 쉼터에 눕고, 정부 위탁 그룹홈에 짐을 풀었다. 잠자리가 바뀔 때마다 계절도 달라졌다. 그렇게 7년을 버텼다.

집에서 돈을 송금 받은 기억은 없다. 식비와 교통비를 스스로 벌었다. 행정과 복지제도는 여전히 그를 부모와 함께 사는 미성년으로 기록했다. 서류엔 ‘한부모 가정 기초생활수급 3인 가구의 자녀’로 적혀 있었고, 주소지는 부모님의 집이었다. 지난 12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율(19)군은 “세대분리를 신청하려 했더니, 미성년자라 보호자를 데려오라고 했다”면서 “성인이 되면 세대분리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도, 앞으로도 세대분리를 하지 못하면 그가 받을 지원금은 모두 보호자에게 돌아간다. 그는 “자녀를 제대로 키울 마음도 없으면서 혜택만 챙기려고 세대분리를 반대하는 부모들도 많다”고 말했다. 

현재 10대 청소년과 미혼인 20대는 부모와 따로 살아도 1인가구로 세대분리를 하지 못한다. 부모와의 단절을 증명하는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세대를 분리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현행법상 ‘미혼 자녀 중 30세 미만인 사람’을 부모와 같은 가구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 10월부터 부모와 따로 사는 20대 청년이 세대분리를 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문제는 시범사업에 10대 청소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범사업이 본 사업으로 전환돼도 10대 자녀는 단절된 부모가 자신에게 제공된 복지 지원금을 쓰는 걸 막을 수 없다. 저소득층 아동에게 지원하는 문화누리카드(문화예술체육생활 지원)는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자녀 카드 잔액을 부모 카드로 옮기는 ‘세대별 합산’ 기능이 있어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3년 전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온 박유선(가명·19)양은  “문화누리카드를 재발급받으려 구청에 갔는데, 아빠가 이미 쓰고 있다고 해서 거절당했다”면서 “내 몫으로 나온 카드인데, 내가 쓸 수 없다고 해서 많이 울었다”고 토로했다. 

현재 한국 복지 체계는 가구 단위로 지원하는 것이 기본 틀이다. 특히 미성년자에겐 부모 부양 원칙이 더 강하게 적용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미성년자는 부양 의무 원칙에 따라 부모의 보호와 부양을 받아야 한다”면서 “시설에 거주하지 않는 청소년에게 생계급여를 직접 지급하는 것은 법적·행정적으로 고민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가족과 단절되어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건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 모두 같은 상황이다. 이번 시범사업이 20대 청년에 주목한 건 연령이 낮다는 이유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보완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10대 청소년은 연령이 낮다는 이유로 또 배제된 것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가장 취약한 시기의 청소년들이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제도 설계에서 배제됐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고,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명백한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에게만큼은 연령과 무관하게 예외 규정을 두고, 제도적 지원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여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쿠키뉴스가 만난 30세 미만 청년 대다수는 이미 10대 시절부터 탈가정을 결심했다.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나와 당장 생계를 위해 학업, 대인관계 등을 포기하며 버틴다. 청소년 때부터 처한 위기 상황은 20대가 돼도 바뀌지 않는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10대 청소년의 세대분리 “서류 있어도 불허”

10대 청소년은 20대와 마찬가지로 ‘가족관계 단절’을 증명하면 세대분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탈가정 청소년에게 그 과정은 20대 청년보다 더 험난하다. 미성년자가 전입신고, 세대분리 등을 신청하러 주민센터에 찾아가면 “보호자를 동반하라”는 이유로 서류도 내기 전에 대부분 거절당한다. 유선 양은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때문에 집에 돌아갈 수 없어서 신청하는 건데, 그 아버지를 데려오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청소년증밖에 없는 미성년자가 혼자 각종 서류를 발급 받고 복잡한 행정 절차를 밟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절차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청소년 복지 활동가들이 동행해 집요하게 사유 소명 과정을 도와주지 않으면, 서류 발급과 처리 과정에서 거절당하는 일이 많다. 또 전입신고를 하거나 가해 부모가 찾는 것을 막기 위한 등본 열람 제한을 신청할 때마다 집을 나온 이유와 부모와 있었던 일 등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매번 새로 진술해야 하는 점도 버겁다. 정찬송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온 활동가는 “모르는 공무원 앞에서 아픈 기억을 반복 진술하게 하는 행정 구조 자체가 아이들에게 2차 가해”라고 증언했다. 

청소년 단체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전입신고에 성공해도, 청소년에게 세대분리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유선 양은 가족관계 단절을 입증하기 위해 가정폭력 경찰 신고 내역과 재판 서류, 쉼터 입소 확인서 등 필요한 서류를 모두 제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유선 양은 “처음엔 ‘보호자를 동반하라’며 거절하더니, 그 다음엔 ‘기록이 오래됐다’, ‘처분 결과가 안 나왔다’ 등 온갖 이유로 세대분리를 불허했다”라며 “어떤 서류를 제출해도 결과는 똑같았다”고 말했다. 

부모 피해 점점 음지로…‘가출 팸’ 아니면 범죄까지

부모의 보호도, 국가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10대 청소년들의 환경은 20대보다 더 열악하다. 일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려 해도, 미성년자라는 신분이 가로막는다. 만 15~18세 청소년은 부모나 후견인의 동의가 있어야 일할 수 있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때문이다.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보호자 동의서’ 제도지만, 부모와 연락할 수 없는 이들은 동의서가 없어도 되는 더 열악한 일자리로 밀려난다. 최저임금 위반, 근로계약서 미작성, 산재 불인정 등 고용주가 청소년을 착취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모가 실종신고를 하면, 청소년들은 붙잡히지 않으려고 더 깊은 음지로 숨는다. 민법상 미성년자인 만 18세에 집을 나온 양지혜(28)씨는 한동안 휴대전화를 끈 상태로 지냈다. 부모가 실종신고를 하자, 경찰이 휴대전화로 위치를 추적해 머물고 있는 곳까지 찾아왔기 때문이다. 지혜씨는 “법적으로 여전히 부모에게 종속된 ‘청소년’이란 걸 그때 실감했다”면서 “주소지가 공개될까 두려워 성인이 된 뒤에도 5년간 전입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음지로 숨어든 청소년들은 생계를 위해 불법적인 일에도 뛰어든다. 여성 청소년은 성매매·성폭력에, 남성 청소년은 마약 배달 같은 일에 노출되기 쉽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청소년들이 손을 대는 마지막 선택지인 것이다. 하율 군은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도, 일할 수도 없으니 살려고 ‘가출 팸’에 들어가거나 범죄를 하는 애들까지 생기는 것”이라면서 “도와달라고 외쳐도 선택지가 없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이라고 했다.

쿠키뉴스가 만난 탈가정 청소년들은 만약 과거에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면,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하율 군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일만 하며 살았다”며 “미성년자 때 세대분리 신청이 가능했으면, 공부를 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유선 양은 “중학생 때 가정폭력 때문에 경찰서에 가느라, 학교 졸업 기준도 맞추지 못했다”며 “그때 세대분리가 돼서 지원을 받았다면, 학교도 다니고 친구들과 평범하게 어울려 놀았을 것 같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 10월 ‘기초생활보장제도 청년 가구분리 모의적용 시범사업’을 시행했지만, 10대 청소년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족관계 단절을 입증하는 특례조항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적용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최소한의 탈출구 있었으면” “원칙만 있고 플랜B 없어”

가정폭력 등을 피해 집을 나온 탈가정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건 성인과 똑같은 권리가 아니다. 청소년기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최소한의 탈출구다. 하율 군은 “현재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기회를 주지 않고 있어, 엇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미성년자도 쉼터 기록 등을 통해 가족관계가 단절됐다는 점을 증명하면 가구분리를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난 내년에 성인이 되지만, 탈가정한 주변 동생들은 여전히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라면서 “지금보다 나아진 제도 안에서 덜 헤매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청소년들이 원가정 우선 보호 원칙을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아동 최상의 이익’을 위한다면 선택지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혜씨는 “아동이 원가정에서 살아갈 권리, 가족 회복이나 복귀를 전제로 한 정책이 무용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원칙만 있고 플랜B가 없는 게 문제”라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청소년이 취약 거주지·불법 노동·노숙으로 내몰리지 않고, 다른 삶을 선택할 권리도 함께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접 새로운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생계급여 등 청소년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어려우면, ‘공공 신탁’ 같은 제도를 검토하자는 제안이다. 지혜씨는 “청소년이 혼자 의사결정을 하는 게 불안하다면, 곁에서 도와줄 공공 후견인 같은 조력인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 신탁이나 공공 후견인 제도를 통해 청소년에게 주어진 지원금의 운용을 함께 점검·조력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아주 작은 변화다. 지난 10월 정부가 ‘청년 가구분리 모의적용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제 가족과 단절된 20대 청년도 자립해 복지 지원을 받을 방법이 생겼다. 지난해 쿠키뉴스의 ‘이상한 나라의 세대분리법’ 보도 이후 생긴 결과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다. 30여 년간 공고했던 ‘가족 중심’ 복지 체계에 균열이 났다. 청년도 독립된 권리 주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금 시범사업은 제대로 가고 있는가, 올바르게 제도화될 수 있는가. 쿠키뉴스가 후속 취재를 통해 변화의 순간을 기록했다. [편집자 주]
최은희 기자, 김은빈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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