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이방인’서 ‘안보 파트너’로… 한화, 폴란드에 ‘천무’ 생산기지 심는다

EU ‘이방인’서 ‘안보 파트너’로… 한화, 폴란드에 ‘천무’ 생산기지 심는다

기사승인 2026-01-04 06:00:09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군사 박물관에서 열린 '천무 3차 실행계약 체결식'에서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코시니악 카미슈 폴란드 부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 군비청과 5조6000억원 규모의 천무 유도미사일(CGR-080)을 공급하는 3차 이행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단순한 대규모 무기 수출을 넘어, 정부의 적극적 외교 지원과 기업의 치밀한 현지화 전략이 맞물려 유럽의 보호무역 장벽을 뚫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군사박물관에서 5조6000억원 규모의 천무 유도미사일 추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체결식에는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를 비롯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코시니악 카미슈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장관 등 양국 정부 및 방산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번 3차 계약 성사의 배경으로는 정부 차원의 ‘방산 특사 외교’가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해 10월 특사 자격으로 폴란드를 방문해 안제이 두다 대통령 및 코시니악 카미슈 국방장관을 예방하고 양국 간 방산 협력 의지를 재확인했다. 계약 막바지 단계에서 이뤄진 특사 파견은 폴란드 정부에 한국이 단순한 판매자가 아닌 강력한 안보 동반자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협상 타결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다.

기업 차원의 전략도 주효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0월 폴란드 최대 민간 방산기업인 WB일렉트로닉스와 공동 출자해 합작법인(JV)을 설립했다. 유럽연합(EU)이 역내 무기 구매를 사실상 강제하는 기조를 강화하자, 한화는 이미 2024년 10월 ‘KADEX 2024’에서 WB그룹과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현지 생산 전략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후 꾸준한 협의를 거쳐 이번 대규모 계약을 성사시켰다.

3차 실행계약의 구체적인 이행 방식은 철저히 이 합작법인인 ‘한화-WB 어드밴스드 시스템(HWB)’을 중심으로 추진된다. 단순히 완제품을 수출하는 과거 방식이 아니라 향후 폴란드 현지에 구축될 HWB 전용 공장에서 유도무기 핵심인 CGR-080 미사일을 직접 생산해 폴란드 군에 인도하는 구조다. 

이같은 생산 방식의 전환은 EU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방산 블록화’를 무력화하기 위한 핵심 열쇠다. EU는 현재 ‘유럽방위기금(EDF)’과 ‘EU 세이프(SAFE)’ 기금 등을 조성해 회원국들이 역내에서 생산된 무기를 구매할 때만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비유럽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무역 장벽으로 작용해 왔다.

합작법인 HWB는 폴란드에 실질적인 ‘생산 주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보호주의 기조를 공략할 수 있는 지렛대로 평가된다. 폴란드는 독자적인 방산 생태계를 구축하고, 한화는 핵심 지식재산권(IP)을 유지하는 ‘관리된 기술이전’ 구조를 통해 장기적인 부품 공급 및 성능 개량 수익을 확보하는 모델을 구축했다는 분석이다. 

현지 생산 체제는 나아가 폴란드를 유럽 방산 시장 진출의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EU의 역외 기업 견제를 우회하고 인접 국가로의 수출 확대를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는 향후 유럽방위산업프로그램(EDIP)이나 SAFE 기금 등 EU 차원의 방산 지원을 확보할 수 있는 정치적·제도적 명분도 제공한다. 다만, EU 기금 수령을 위한 역내 부품 비중(65%) 충족 요건이나 외국인직접투자(FDI) 스크리닝 등 법적·제도적 장벽이 잠재적 변수로 남아 있어, 이에 대한 전략적 관리가 장기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을 중심으로 지역별 블록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방산 수출을 위한 현지화 전략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단순한 ‘거래 대상’이 아닌 ‘안보 파트너’로서 입지를 다져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방산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해석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글로벌 보호무역 환경 변화로 인해 방위산업이 ‘비용 효율성 중심의 완제품 수출’에서 ‘내부화(현지화) 전략’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며 “이는 시장 거래 비용을 줄이고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무기 체계와 생산 시스템 공유를 통해 향후 수입국 전환 비용(Switching costs)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그렇게 폴란드가 다른 경쟁사로 이탈하기 어렵게 만들면서 관계특정자산을 통해 후속 매출을 안정화하는 전략으로, 유럽 시장 장기화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수민 기자
breathming@kukinews.com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