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로 뻗는 K-콘텐츠…그 배경지로 가는 길은 ‘로컬’ [지방관광 실태 보고서①]

‘글로벌’로 뻗는 K-콘텐츠…그 배경지로 가는 길은 ‘로컬’ [지방관광 실태 보고서①]

기사승인 2026-02-16 06:00:12 업데이트 2026-02-17 19:21:47
하회세계탈 박물관에서 관람 중인 외국인 관광객. 이예솔 기자 

“그래미 수상한 그 노래,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한국을 찾은 한 외국인 여행객이 웃으며 건넨 말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열풍은 현재 진행형이다. OST ‘골든’은 최근 그래미를 수상했고, 빌보드 ‘핫100’ 차트에 30주 넘게 이름을 올리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금도 ‘케데헌 성지순례 지도’가 공유되고 있다.

그 지도에 표시된 곳 중 하나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이다. 콘텐츠는 사람을 움직인다. 관심은 이미 한국에 도착했고, 늘어난 외국인 관광객 수가 이를 방증한다. 쿠키뉴스는 그 관심이 실제 여행이 되는 순간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언어가 낯설고, 교통 체계가 다르며, 지도 앱조차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여행객의 시선으로 안동행 KTX에 올랐다.

지난 10일 오후 3시11분, 안동에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안동역까지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열차는 정시에 도착했고, 승강장 안내도 비교적 명확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제공하는 편의는 이 구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문제는 역을 나선 뒤였다. 케데헌 오프닝에 등장하는 하회마을을 찾기 위해 익숙한 구글맵을 켰다. ‘Hahoe Village’를 입력했지만 버스 노선이나 실시간 배차 정보는 충분히 표시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네이버지도나 카카오맵 등 국내 지도 앱이 대중교통 정보에 더 최적화돼 있다. 외국인 여행객이라면, 도착 직후 지도 앱부터 바꿔야 하는 셈이다.

하회마을행 버스를 타는 일도 쉽지 않았다. 정류장 전광판에는 ‘47분 후’, ‘1시간 55분 후’라는 문구가 번갈아 표시됐다. 배차 간격은 1시간 안팎이었다. 오후 6시까지 운영되는 하회마을 일정을 고려하면, 기자들에게 남은 시간은 세 시간 남짓이다. 버스를 기다리면 도착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만큼 관광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아진다. 선택지가 없었다. 택시에 올랐다. 목적지까지 25분, 2만6900원.

안동하회마을. 안동시 제공

화면 속 마을, 현실이 되다

어렵게 도착한 하회마을의 풍경은 낯설기보다 익숙했다. 기와지붕과 돌담, 굽이진 골목길은 애니메이션 속 장면과 겹쳐 보였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전통 가옥을 배경으로 가족 단위 여행객이 발걸음을 늦추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왔다는 아덴소피아(33)는 도포 차림이었다. 그는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 다녀온 뒤, 전통 마을을 더 보고 싶어 안동 하회마을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발렌티나(27)는 딸과 함께 한국을 여행 중이었다. 그는 “K-팝 팬이라 한국 문화를 더 깊이 알고 싶었다”며 “부산과 경주, 안동, 평창, 속초를 12일 일정으로 여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딸 사라(9)는 “스트레이 키즈를 좋아한다”며 한국 아이돌 멤버가 그려진 휴대전화 케이스를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프랑스에서 가족 여행을 왔다는 세드릭(43)씨 역시 “K-팝에 관심이 많아 하회마을을 일정에 넣었다”고 했다.

왜 안동이냐는 질문에 이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K-콘텐츠로 시작된 관심이 전통문화로 이어진 여정이었다. 다만 이동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가이드 차량을 이용하거나, 렌터카를 빌리거나, 한국인 친구와 동행했다는 답이 이어졌다. 대중교통만으로 이동했다는 답은 들리지 않았다.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면 이들은 안동을 찾았을까. 세드릭씨는 “서울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지만, 지방에 오니 결국 차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교통만으로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 관광객이 월영교 전경을 촬영하고 있다. 심하연 기자 

같은 도시, 다른 거리

해가 기울 무렵 월영교로 향했다. 낙동강 위를 가로지르는 목조 인도교로, 하회마을과 함께 안동을 대표하는 야간 명소다.

지도 앱에 표시된 대중교통 소요 시간은 1시간57분. 같은 도시 안 이동이라고 보기엔 긴 시간이었다. 반면 택시로는 28분이 걸린다고 안내됐다. 서울에선 비교적 쉽게 매칭됐던 카카오택시 호출이 안동에선 쉽지 않았다. 개인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15분을 기다린 끝에 차에 올랐다. 요금은 3만6700원.

택시기사 A씨는 “안동은 땅이 넓다. 24개 읍면동이 있는데, 면에서 면으로 가면 거리가 훌쩍 멀어진다”며 “요즘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많이 태운다”고 말했다. 여행객의 이동이 택시로 수렴되는 구조를 현장에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월영교에 도착하자 다리 위 조명이 켜졌다. 강물 위로 빛이 번지며 산책로가 은은하게 밝아졌다.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휴대전화 셔터 소리가 이어졌다. 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관광지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오후 7시가 지나 숙소로 돌아가려 하자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동대교 방면으로 나가는 막차는 이미 끊긴 뒤였다. 다음 배차를 기다리려면 꼬박 밤을 새워야 하는 상황. 우리는 또다시 택시를 선택했다.

지난 10일 오후 7시쯤 안동대교 방면 막차 운행이 이미 종료됐다. 이예솔 기자

만 하루 동안 안동역과 하회마을, 월영교, 찜닭골목을 오가며 지출한 택시비는 약 10만원에 달했다. 짧다면 짧은 여행 일정 속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었던 버스는 이동에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됐고, 택시를 타기에는 비용 부담이 컸다.

서울과 다른 낭만의 도시, 그리고 이동의 비용

하회마을 외국인 방문객 수는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늘고 있다. 하회마을 방문객 수는 지난 2024년 2만9375명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3만2439명을 기록했다. 케데헌 공개 이후 증가세는 더 뚜렷해졌다. 지난해 10월에는 5619명이 찾아 최근 3년간 가장 많은 월간 방문객을 기록했다. 올 초 이재명 대통령이 차기 한일 정상 셔틀 외교 장소로 고향 안동을 언급하며 지역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진 상황이다.

세계 무대에서 K-콘텐츠는 연일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화면 속 한국은 세련되고, 빠르고, 연결돼 있다. 하지만 안동에서 보낸 하루는 달랐다. 길을 찾기 위해 지도 앱을 새로 설치했고, 버스 시간을 계산했고, 택시 호출을 반복했고, 요금을 거듭 확인했다. 여행의 설렘보다 ‘이동 가능 여부’를 먼저 따져야 하는 일정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되어 보낸 하루. 한국을 좋아해서, 콘텐츠를 보고 찾아왔지만, 이 여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화면 속 한국과 발로 딛는 한국 사이의 간극. 안동에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이예솔 기자, 심하연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
심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