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자녀들이 가장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 중 하나가 부모님의 인지 건강이다. 흔히 기억력이 감퇴한 부모님을 보고 치매를 의심하기 쉽지만, 노인 우울증의 가능성도 놓쳐서는 안 된다. 치매와 유사한 증상을 보여 ‘가성치매(우울성 인지장애)’라고도 불리는 이 질환은 적절한 시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충분히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65세 이상 노인은 2020년 25만여명에서 지난해 28만여명으로, 약 12% 증가했다. 노인 우울증은 다른 신체 질환처럼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실제 환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르겠다”는 치매 아닌 우울증…방치 시 치매로 이어질 위험도
치매와 노인 우울증은 노년기에 흔히 발생하는 대표적인 정신건강 질환이다. 노인 우울증은 청년 환자들과 달리 인지기능 저하를 동반할 수 있다. 이러한 탓에 환자와 가족이 느끼는 초기 증상이 비슷해 노인 우울증을 치매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
노인 우울증과 치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지기능 저하의 경과다. 치매는 신경 퇴행성 질환으로, 기억력이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서서히 저하된다. 반면 우울증 환자는 기억력이 갑자기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인지기능의 기복이 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우울증 환자들은 치매와 달리 기분이 가라앉는 것 이외에도 의욕이 떨어지거나 불안, 식이습관 변화 등 다양한 증상을 함께 보인다.
증상을 대하는 부모님의 태도를 유심히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치매 환자들은 자신의 기억력 결함을 감추려 하거나, 어떻게든 엉뚱한 대답을 지어내 답변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우울증 환자는 인지기능 저하에 대한 자각이 뚜렷하며 기억력이 나빠진 것에 대한 걱정도 크다. 질문 자체를 귀찮아하며 “모르겠다”, “왜 자꾸 물어보느냐” “귀찮다”며 대답을 포기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상범 서울신내의원 원장(신경과)은 본지에 “임상적으로 보면 치매 환자는 질문에 관심이 없거나 틀린 답이라도 하려 노력하는 반면, 우울증 환자는 본인의 상태를 과장해서 힘들다고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노인 우울증을 ‘나이가 들면 누구나 겪는 일’로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울증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치매와 만성질환 악화 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아라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치매 위험성이 2~3배 정도 높아진다”며 “정신과 약이 치매를 유발한다는 오해와 달리, 오히려 우울증을 방치한 환자들의 치매 발병률이 치료를 받은 이들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짚었다.
설 명절 대화로 확인하는 ‘마음 검진’ 필요
명절 기간 자녀들의 태도는 진단과 치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노인성 우울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외로움과 고립감이기 때문이다. 명절 동안 자녀들이 부모님과 충분히 대화하고 공감했을 때 인지 기능이 눈에 띄게 회복된다면, 이는 치매보다 우울증에 의한 증상일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노인성 우울증은 적절한 약물 치료와 환경 개선만으로도 인지 기능이 크게 좋아질 수 있는 만큼, 자녀들의 세심한 관찰과 정서적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설 명절 기간 동안 부모님과 살갑게 대화하고 공감해드렸을 때 상태가 호전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 끝 무렵까지 인지 상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병원을 찾아 치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어르신들의 우울증 증상은 무기력증과 은연중에 ‘갈 때가 됐지,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등의 표현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명절에 부모님 댁에 들렸는데, 정리정돈이 안 되어 있거나 본인 관리가 소홀해졌다면 치료가 필요한 경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검사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데도 머리, 어깨, 다리 등 전신 통증을 호소하거나 어지럼증을 느낀다면 이는 우울증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이때 자녀가 ‘검사 결과는 멀쩡한데 왜 꾀병을 부리느냐’며 다그쳐선 안 되며, 병원 방문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검사 결과상 문제가 없는데, 부모님이 계속 아프다고 하니 자녀가 화를 내는 경우도 많다”며 “어르신이 잠을 못 자거나 밥맛이 없는 불편함에 대해 자녀가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어르신들의 경우 정신과 진료를 설득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치료하면 지금 느끼는 불편함이 훨씬 편해질 수 있으니 같이 상담 받아보자’고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