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이전 중심에 선 中-바이오…“시장 패권 경쟁 본격화” [신약 대전환 시대③]

글로벌 기술이전 중심에 선 中-바이오…“시장 패권 경쟁 본격화” [신약 대전환 시대③]

기사승인 2026-02-21 06:00:11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은 거대한 전환기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이 본격화되고, 희귀질환과 항암제를 중심으로 파이프라인이 재편되면서 플랫폼 기술이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임상 경쟁의 무게추는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임상 점유율 6위로 밀려났고, 도시별 순위에서도 베이징에 선두를 내줬다. 산업 전략, 규제 환경, 인프라 전반의 점검이 필요한 때다. 4편에 걸쳐 글로벌 신약 개발의 최신 흐름을 짚고, K-바이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희귀질환 치료제와 항암제를 축으로 한 파이프라인 재편 속에서 단일 후보물질의 성패를 넘어 플랫폼 기술을 선점한 국가와 기업이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는 구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중국 바이오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추격자’로 인식되던 중국은 이제 글로벌 기술이전과 임상의 ‘핵심 허브’로 부상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풍부한 인적 자본, 공격적인 임상 전략, 규제 유연성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신약 개발 무게추가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정보분석기관 클라리베이트는 ‘2026 블록버스터 신약 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제조 기반 국가에서 혁신 강국으로 변모하는 전환점에 들어선 시장으로 평가했다. 중국의 비만·암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빅파마들은 일찌감치 세계 최대 규모 의약품 수요처로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한국은 글로벌 임상 점유율 순위가 2023년 4위(4.04%)에서 2024년 6위(3.46%)로 밀려났고, 도시별 임상 경쟁력에서도 베이징(1.40%)이 서울(1.32%)을 앞질렀다. 임상시험 진행에선 중국이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2024년 중국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임상시험 등록 데이터베이스에 7100건 이상의 임상시험을 등록해 약 6000건을 기록한 미국을 앞섰다.

이종혁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는 “CRO(임상시험수탁)·병원의 임상시험 운영 역량이 산업 인프라로 자리 잡아 신속한 임상시험이 가능하게 됐다”며 “이에 따라 중국이 빅파마가 초기 임상시험을 저비용으로 신속히 수행하기에 매우 적합한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빅파마, 中바이오텍과 신약 개발 협력

중국 바이오는 기술이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며 개발 파트너이자 경쟁자로 동시에 부상하고 있다. 이는 지난달 12~15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26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에서도 입증됐다. JPMHC 개막과 동시에 중국 바이오텍들이 글로벌 빅파마와 대규모 계약을 성사한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는 JPMHC 첫날 중국 바이오 기업 레미젠과 56억달러(한화 약 8조원) 규모의 이중항체 고형암 신약 물질 ‘RC148’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선급금(업프런트)만 6억5000만달러(약 1조원)에 달한다. RC148은 PD-1 및 혈관내피성장인자(VEGF) 이중항체 신약으로, 중국에서 고형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노바티스도 같은 날 중국 바이오 기업 사이뉴로파마슈티컬스와 17억달러(약 2조5000억원) 규모의 뇌혈관장벽(BBB) 셔틀(약물전달기술) 기술이전 계약을 발표했다. 선급금 규모는 1억6500만달러(약 2400억원)다. 노바티스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뇌로 전달하는 사이뉴로의 항체 기술을 토대로 신약 개발과 상용화 단계를 주도할 계획이다.

1월12일부터 15일(현지 시각)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2026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가 개최됐다. 연합뉴스

빅파마와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협력은 잇따르고 있다. 최근 아스트라제네카가 중국 CSPC제약과 최대 185억달러(약 27조원) 규모의 비만 치료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선급금만 12억달러(약 1조7500억원)로 중국 외 지역에 대한 권리까지 확보했다. 이미 약 30년 전 중국에 진출한 아스트라제네카는 베이징과 상하이에 대규모 R&D센터를 운영하며 500여개 병원과 협력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다수의 글로벌 임상시험을 주도해 왔는데, 제조 부문에도 투자해 기존 생산 거점의 역량을 강화하고 신규 생산시설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비만 및 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성분명 터제파타이드)로 유명한 일라이 릴리도 면역 질환 및 암 치료제 개발을 위해 중국 바이오 기업 이노벤트 바이오로직스와 협력하기로 했다. 이노벤트는 앞서 지난해 로슈 홀딩, 다케다약품공업과도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신흥 바이오기술 국가안보위원회’(NSCEB)는 보고서를 통해 2022년 중국 기업이 선불금 5000만달러 이상을 받은 글로벌 라이선스 계약 비중이 5%에 불과했으나, 2025년 1분기에 42%까지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중국은 과거의 제네릭(복제약) 중심에서 혁신 신약 R&D(연구개발)로 국가 역량을 집중했으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규제 심사 체계도 개선됐다”며 “그 결과 중국 기업이 전 세계 개발 파이프라인에서 점차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고, 이것이 임상시험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부 투자, 규제 완화 힘 입은 中-바이오

글로벌 신약 개발 시장에서 중국의 약진은 이어질 전망이다. 오는 2040년에는 중국 의약품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의 35%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중국 제약시장 규모가 2024년 2641억달러(약 372조원)에서 2028년 3454억달러(약 487조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4년 새 31% 성장하는 셈이다. 중국 기업과의 글로벌 기술이전 트렌드는 2020년 이후 뚜렷하게 나타난다. 2020년 중국 기업과의 기술이전 계약은 전체의 4%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32%까지 비중이 증가했다.

2024~2028년 중국 제약시장 규모 전망.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중국이 단기간 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지속적인 정부 투자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규제 체계 △대규모이면서 숙련도가 빠르게 향상되고 있는 인재 풀 △첨단 디지털·데이터 인프라 구축 등이 꼽힌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관계자는 “중국이 단기간에 글로벌 신약 개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임상시험 규제 환경이 빠르게 개선된 것이 작용했다”며 “비교적 낮은 비용 구조와 대규모 환자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병철 법무법인 세종 고문은 “중국과 한국은 신약 발견과 개발, 첨단 바이오의약품 제조 역량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며 “특히 두 국가는 밀집된 CRO·CDMO(위택개발생산) 생태계를 기반으로 신속한 임상시험 수행이 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전했다.

최 고문은 중국의 무서운 성장세가 한국에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장기 자본 조달의 한계, 전문 인력 부족, 규제의 예측성 문제, 글로벌 네트워크의 상대적 취약성 등 구조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며 “이러한 요소들은 임상시험, 기술이전, 제조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다만 한국 역시 세계적 수준의 의료 인프라와 높은 임상 수행 역량을 갖춘 만큼, 글로벌 규제 흐름과의 국제적 조화를 바탕으로 제도와 환경을 얼마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에 따라 이러한 변화는 위협에 머물지 않고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며 “향후엔 이러한 강점을 중심으로 고부가가치 전략을 보다 명확히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뿐 아니라 일본, 싱가포르, 인도 등 주요 아시아 국가들의 기술 발전과 산업 확장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