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흰 똥을 쌌어요”…기저귀에서 시작된 희귀 간질환 가족의 사투

“애가 흰 똥을 쌌어요”…기저귀에서 시작된 희귀 간질환 가족의 사투

“극단적 공포의 1년”…PFIC 아이 엄마가 세상에 나온 이유
산정특례에도 월 수백만 원 희귀의약품 비용 부담
간 이식에 평생 면역억제제 복용…끝나지 않는 치료의 시간
“환자 적다는 이유로 정책 우선순위 뒤로 밀리지 않길”

기사승인 2026-02-26 06:00:05
김지수 PFIC 환우회 대표(가운데)는 25일 서울 강남구 입센코리아 사무실에서 ‘희귀 간질환 환자 목소리를 잇다’를 주제로 열린 ‘세계 희귀질환의 날’ 기념행사에서 진행성 가족성 간내담즙정체(PFIC)를 앓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를 전했다. 신대현 기자

“작년 한 해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극단적인 공포’라고 말할 것 같아요.”

지난 2024년 12월, 아이를 품에 안고 웃던 평범한 엄마였던 김지수 PFIC 환우회 대표는 해가 바뀌고 ‘희귀 간질환 환아의 보호자’가 됐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아이는 누구보다 사랑스러웠고, 건강하게 자라리라 믿었다. “내 아이가 아플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김 대표는 25일 서울 강남구 입센코리아 사무실에서 ‘희귀 간질환 환자 목소리를 잇다’를 주제로 열린 ‘세계 희귀질환의 날’ 기념행사에서 ‘진행성 가족성 간내담즙정체(PFIC)’를 앓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를 전했다.

모든 시작은 기저귀 한 장이었다. 아이의 기저귀에 묻어나온 대변 색이 분유처럼 하얬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가장 먼저 뜬 단어는 이름조차 생소한 ‘담도폐쇄’였다. 생후 3개월을 넘기면 간 이식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저녁 김 대표는 다음 기저귀를 기다렸다. 일시적이길 바랐다. 하지만 다음 대변 색도 똑같았다. 아이를 안고 곧장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애가 흰 똥을 쌌어요.” 그가 의사에게 할 수 있었던 설명은 그것뿐이었다.

아이의 입원은 길어졌다. 준비한 100일 잔치는 취소됐다. 3주일이 지나도 정확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기다려보자’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치의는 김 대표 부부를 불렀다. 아이가 희귀 간질환이라고 했다. 진단명은 ‘진행성 가족성 간내담즙정체’였다.

PFIC는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담즙이 간에서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고 쌓여 간 손상을 유발하는 병으로, 대부분 영유아기에 발병한다. 국내에선 극희귀질환으로 분류되며, 환자 수는 수십 명대로 추정된다. 환자들은 극심한 소양증(가려움증), 성장 지연, 간 기능 저하에 따른 황달을 겪는다. 치료 이외의 선택지는 간 이식이 유일한 대안이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PFIC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지만, 치료제에 대한 정보는 있었다. 글로벌 제약사 입센의 ‘빌베이’(성분명 오데빅시바트)였다. 하지만 당시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지 못했고, 사용이 제한됐다. 아이는 밤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깼다. 하도 몸을 긁어서 아침이면 손가락에 피가 묻어 있었다.

PFIC이라는 병명은 숨길 수 있었지만, 황달은 감출 수 없었다. 노랗게 변한 피부는 어디서나 시선을 끌었다. 소아 희귀질환이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를 그는 그때 체감했다. 부모가 시선을 피해 먼저 숨게 되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결국 아이는 생후 10개월 무렵 간 이식을 준비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간암까지 발견됐다. “의사에게서 아이 간이 ‘셧다운’ 됐다는 말을 들었어요. 간암까지 생겼다는 말에 많이 울었죠. 청천벽력 같았거든요.”

“약국에서 몇 십만 원을 한 번에 긁어본 적이 있나요? 저는 바코드가 잘못 찍힌 줄 알았어요.” 체중 9㎏ 남짓한 아이가 복용하는 빌베이 비용은 한 달에 수백만 원에 달했다. 산정특례가 적용돼 처방 시 본인부담이 10%로 낮아져도 고가 희귀의약품은 여전히 부담이 컸다. 전신질환 특성상 정기 입원과 고가 검사가 반복된다. 감염에 취약해 상급병실을 쓸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되면 의료비가 수천만 원은 우습다.

처음 빌베이를 손에 쥐던 날을 그는 잊지 못한다. 약병에서 작은 캡슐을 꺼내 아이의 밥 위에 얹었다. “그냥 밥 위에 얹어도 아이가 삼킬 수 있을 만큼 약이 작아요. 그걸 좀 더 일찍 제때 주지 못한 게 화가 났어요.”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빌베이는 담즙산이 간으로 재흡수 되는 양을 줄여 증상 조절 효과를 내는 경구제로, 생후 3개월 이상 영아부터 사용할 수 있다. 장기간 복용하면 간 기능 보존 가능성까지 기대할 수 있다. 간 이식 없이도 질환을 관리할 수 있는 최초의 치료 선택지로 주목받아 보건복지부의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 1호 약제로도 선정됐다. 이 사업은 정부가 신약의 허가·급여 등재 절차를 병행함으로써 신약의 도입 기간을 단축하고자 지난 2023년 마련한 제도다.

이제는 아이의 걸음마가 시작됐다. 작은 발로 집 안을 걷는다. 간 이식 후 아이의 상태는 많이 호전됐다. 그러나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는 삶 그리고 감염에 취약한 일상. 아이가 자라서 어린이집과 학교에 갈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아이는 ‘간 장애’ 등급이 부여됐다. 치료와 동시에 평생 관리가 필요했다.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은 언젠가 아이가 자신의 질환을 알게 될 때다. “부모로서 죄책감이 커요. 아이가 나중에 ‘엄마 탓이야?’라고 묻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빠 탓도, 자기 탓도 아니라고, 그걸 잘 설명해주고 싶어요.”

김 대표는 작은 약 한 알이 희귀질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할 때 제때 닿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같은 질환을 겪는 환우 가족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처럼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진단이 곧 끝은 아니라고, 방법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희귀질환은 ‘희귀하다’라는 이유로 정보 접근성 자체가 낮다. 환자 수가 적다는 건 곧 사회적 관심도, 정책 우선순위도 뒤로 밀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급여가 안 되는 치료제도 수없이 많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탈모약 이슈도 중요하겠죠. 하지만 희귀질환 약제가 더 많이 논의되고, 더 많은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됐으면 좋겠어요. 환자가 적다는 이유로 정책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희귀질환을 진단받았다고 당장 생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치료법은 있고, 삶은 이어진다. 필요한 건 사회의 이해와 삶을 지탱하는 제도의 뒷받침이다. “희귀질환 환자에게 필요한 건 약만이 아니에요. 적기에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 생명을 위협받기 전에 악화를 막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해요. 환자가 적기 때문에 더 많이 지원해 줬으면 좋겠어요.”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