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이오, 정부 전폭 지원에 고공행진…K바이오는 숨고르기 [K바이오 수출 30조원 시대③]

중국 바이오, 정부 전폭 지원에 고공행진…K바이오는 숨고르기 [K바이오 수출 30조원 시대③]

기사승인 2026-04-03 06:00:06
정부가 반도체를 이어갈 제2의 먹거리 산업으로 ‘제약‧바이오’를 낙점했다. 2030년까지 기술수출 3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K-바이오는 지난해 기술수출 20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글로벌 빅파마를 배출해낸 제약산업 선도 국가와 비교하면 자금력, 임상 경험 등도 적은 데다 글로벌 규제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이 있는지 3편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지난해 기술수출 20조원 돌파라는 신기록을 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올해 1분기엔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 사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바이오는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며 한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벌려 앞서 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2030년 수출 30조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한국 정부도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K바이오 1분기 계약 반토막…중국은 역대 성적 기록 

3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이전 건수는 4건으로 집계됐다. 알테오젠은 피하주사(SC) 제형 변경 기술인 ‘ALT-B4’에 대해 글로벌 제약사 바이오젠과 GSK 자회사 테사로와 각각 계약을 맺었다. SK플라즈마는 튀르키예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 합작회사 프로투루크에 혈장분획제제 기술을 이전했다. 희귀질환 치료제 기업 피알지에스앤텍은 미국 센티넬 테라퓨틱스에 소아조로증 치료물질인 ‘프로제리닌’을 수출했다.

지난해 기술수출 21조원을 돌파하며 최대 성적을 냈으나, 올해는 다소 주춤한 모습이다. 국내사의 올해 1분기 기술수출 총 계약금 규모는 약 1조3966억원(비공개 제외)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 올릭스(6억3000만 달러), 알테오젠(13억5000만 달러)의 기술수출 총 계약금액인 19억8000만 달러(약 2조8755억원)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반면 중국의 기술수출 계약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 보고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1분기 제약바이오 해외 기술수출 계약은 역대 최대인 600억 달러(약 90조8580억원)를 기록했다. 중국의 CSPC제약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에 비만치료제 기술이전 계약을 최대 185억 달러(약 28조원) 규모로 체결했다. △중국 시노 바이오제약은 글로벌 빅파마 사노피와 15억3000만 달러 △중국 이노벤트 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일라이 릴리와 최대 85억 달러 △중국 안텐진 코퍼레이션은 벨기에 제약사 UCB와 11억8000만 달러 계약을 각각 체결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한국과 중국의 기술수출 성과는 불과 5년 새 큰 격차로 벌어졌다. 지난 2021년만 하더라도 한국(110억 달러)과 중국(134억 달러)의 연간 기술수출 규모는 1.2배 차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중국(1357억 달러) 기술수출 규모가 한국(150억 달러)의 9배에 달한다.  

중국의 기술수출 규모가 빠르게 커진 배경으로는 정부의 전폭적인 정책 지원이 꼽힌다. 중국 정부는 바이오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지난 2016년 ‘건강중국 2030’ 계획을 발표하며 헬스케어 투자 규모를 2030년 16조 위안(한화 약 3000조원)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바이오산업에 투입한 자금은 300억위안(약 5조8000억원)에 달한다. 또한 혁신 신약에 대한 조건부 승인‧우선심사 제도를 법제화하고, 임상시험 검토 대기기간을 현행 60일에서 30일로 줄이는 등 허가 절차 간소화에 나섰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중국 바이오가 무서운 성과를 내는 핵심 원인은 정부가 인허가 단계를 파격적으로 단축했기 때문”이라며 “기술수출의 핵심인 임상 1·2상 데이터를 확보하는 속도가 우리보다 빠르다 보니 글로벌 빅파마들이 중국 기술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민영 법무법인 세종 선임외국변호사는 “중국은 지난 10년간 바이오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며 특히 ADC(항체약물 접합체) 등 특정 분야에 연구개발(R&D)을 집중했다”라며 “임상시험 개시 건수가 세계 최상위권에 도달하면서 데이터 축적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진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의 수출 폭증이 역설적으로 중국 내 자금난이 부른 결과라고도 해석했다. 박 변호사는 “2020년 전후 중국 벤처캐피털 시장이 위축되자, 기업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글로벌 빅파마를 대상으로 적극 기술수출에 나선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글로벌 규제 환경 급변…“한국 정부도 당장 정책 지원 나서야”

이러한 가운데 최근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가 국내 기업들에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최근 생물보안법 시행에 이어 중국 정부의 자국 바이오기업에 대한 지원·가격 관행을 조사한다고 밝혔다. 생물보안법은 ‘우려 바이오 기업’이 생산하거나 제공하는 바이오 장비 및 서비스를 조달하거나 획득, 계약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다. 

이보형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글로벌 파이프라인에서 중국 기업의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흐름인 가운데 미국의 규제 강화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한국 기업이 기술 신뢰도와 규제 대응 역량을 입증한다면 전략적 파트너로서 기회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박 변호사는 “국내 바이오벤처 입장에서는 기존에 비용이나 속도 측면에서 활용해 왔던 중국 CRO(임상시험수탁기관)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비용 증가나 임상 지연 등 부담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자본력과 속도를 앞세운 중국의 독주를 막고 미국의 공급망 재편 기회를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바이오 벤처 기업들은 생존이 위태한 상황이다. 현장에서는 기다리다 목말라 죽을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면서 “정부 정책이 업계에서 체감되는 영향이 적다는 것이 문제다. 산업계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이 신속하게 실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서동철 럿거스 뉴저지주립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는 “신약 개발은 10~15년 이상의 장기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정부 지원이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기보다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실행돼야 한다”라며 “특히 유망 후보물질이 상용화되기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할 때, 정책적 일관성과 연속적인 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 주도로 국제 행사를 개최해 기술수출의 장을 열거나 글로벌 규제 환경에 대한 정보 제공, 신약 개발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한편 정부는 제약‧바이오벤처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최근 내놨다. 보건복지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24일 ‘제약바이오벤처 육성 전주기 협업방안’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제약바이오벤처 기술수출 규모 30조원 달성을 목표로 전주기 지원체계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특히 해외 진출과 기술이전 확대를 위한 대책도 제시했다. 기술이전 협업 탐색부터 계약 체결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을 신설하고, 보스턴 CIC와 일본 쇼난 아이파크 등 해외 거점과 연계해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