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R&D 투자 늘리라는데…허리띠 졸라매는 제약사들

정부는 R&D 투자 늘리라는데…허리띠 졸라매는 제약사들

기사승인 2026-04-04 06:00:08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국내 주요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 신약 개발을 위해 R&D 투자 확대를 강조하는 정부 정책 방향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대형 제약사 8곳 중 5곳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전년 대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유한양행은 2025년 R&D 비용으로 약 2424억원을 투자했다. 다만 이는 전년 대비 264억원 줄어든 금액이다. 매출 대비 투자 비중도 13%에서 11.%로 낮아졌다. 지난해 폐암 신약 ‘렉라자’가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대규모 후기 임상 비용 부담이 완화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대웅제약도 전년 대비 147억원 줄인 2177억원을 R&D 비용으로 투입했다. 매출액 대비 투자 비중은 18.5%에서 15.8%로 낮아졌다. 위식도 역류질환 ‘펙수클루’와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의 글로벌 시장 확장을 본격화하면서 상업화 단계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출이 전년 대비 19% 증가한 GC녹십자도 R&D 투자 비중이 줄었다. 2024년 1747억원에서 2025년 1719억원으로 투자 비중이 10.4%에서 8.6% 하락했다. 혈액제제 ‘알리글로’, 백신 등 기존 사업 경쟁력 유지에 집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HK이노엔은 R&D 비용이 814억원에서 859억원으로 늘었다. 다만 매출 성장 속도가 빨라 매출 대비 투자 비중은 9.1%에서 8.1%로 하락했다.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 주력하면서도 차기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을 위한 초기 임상 투자를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밖에 광동제약은 매출 규모에 비해 R&D 투자는 1%대를 유지하며 보수적인 기조를 보이고 있다. 투자 비용도 157억원에서 146억원으로 줄어 매출액 대비 투자 비중은 1.6%에서 1.4%로 감소했다. 기능성 음료와 일반의약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이어나가는 영향으로 보인다.

반면 한미약품과 종근당, HK이노엔, 보령은 R&D 투자를 확대하며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섰다. 

한미약품은 R&D 비용을 2024년 2098억원에서 2025년 2290억원으로 늘리고, 투자 비중도 14%에서 14.8%로 끌어올렸다.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개발을 통해 고부가가치 영역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특히 종근당은 가장 큰 폭으로 투자를 늘렸다. R&D 투자 비용을 같은 기간 1574억원에서 1858억원으로 284억원 더 투입했다. 투자 비중도 9.9%에서 11%로 올랐다. 연구개발 체질 전환에 나선 모습이다. ADC(항체약물접합체), 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기술 확보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령은 항암제와 희귀질환 중심 포트폴리오 확대에 나서면서 R&D 투자 비용도 558억원에서 689억원으로, 전년 대비 131억원 늘었다. 매출액 대비 투자 비중은 5.5%에서 6.8%로 증가했다.

전반적으로 상업화에 성공한 신약의 글로벌 확장과 수익화에 역량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제약사들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후기 임상 단계에서 발생하던 대규모 임상 투자 비용이 감소했고, 제품 경쟁력을 시장에서 증명하는 단계로 넘어가면서 속도 조절을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업계에선 R&D 투자가 전반적으로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가 복제약(제네릭)의 약가 인하 방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신약의 53.55%인 복제약 약가를 45%로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업계 충격이 클 것을 대비해 R&D 투자 비중이 높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특례를 부여하는 ‘혁신형‧준혁신형 기업 인증’ 제도를 마련했다. 신약 개발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에 적극적인 제약사를 적극 지원하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현장에선 R&D에 적극 투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토로가 나온다. 한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고물가와 고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인 데다 약가 인하 정책으로 인해 수익성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분간 매출 감소 리스크를 무릅쓰고 R&D 투자 비중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