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과학] "천문연구데이터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우주망원경 '스피어엑스' 연구 주역

[쿠키과학] "천문연구데이터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우주망원경 '스피어엑스' 연구 주역

천문연 정웅섭·양유진 박사, 나사-천문연 스피어엑스 프로젝트 핵심
초기우주 비밀, 은하 형성과 진화, 우주 얼음 추적 등 수행
스피어엑스 전송 자료 연구, 국내 천문학자 세계의 25% 차지

기사승인 2025-04-07 08:04:27 업데이트 2025-04-07 13:57:58
우주망원경 스피이엑스(SPHEREx) 개발에 참여한 한국천문연구원 양유진 책임연구원(왼쪽)과 정웅섭 책임연구원. 사진=이재형 기자

“첫 사진이 예상보다 아주 잘 나왔어요. 앞으로 기대가 더욱 큽니다.”

지난 2일 우주망원경 스피이엑스(SPHEREx) 첫 촬영본 공개에 한국천문연구원(이하 천문연) 연구진이 한껏 고무됐다.

스피어엑스 개발에 참여한 천문연 정웅섭·양유진 박사는 “가깝고 먼 은하의 거리가 명확히 구분되고, 특히 어두운 은하도 이상현상 없이 굉장히 잘 나왔다”며 “스피어엑스로 우리가 원하는 연구목표를 더욱 잘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스피어엑스 원본 이미지에서 관측한 적외선 파장에 가시광선 영역의 색상을 부여한 이미지. 파장이 짧을수록 보라색-파랑색으로 표현됐고, 파장이 길수록 초록색-붉은색으로 나타냈다. 스피어엑스는 망원경 자체를 움직여 촬영한다. 위 그림은 4장 연속촬영을 합성한 것으로, 각 이미지의 노출 시간은 2분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스피어엑스 개발 유일한 국제 협력기관

스피어엑스는 미국항공우주국(나사, NASA)과 천문연이 공동 개발한 적외선 우주망원경으로, 지난달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밴덴버그 우주군기지에서 발사 성공 후 37일간의 초기운영 단계를 거치고 있다.

성능점검을 마친 스피어엑스는 25개월 동안 지구극궤도를 98분 주기로 공전하며 우주를 600회 이상 촬영, 이 자료를 바탕으로 적외선 3차원 우주지도 제작, 은하의 형성과 진화 연구, 우리은하의 얼음탐사 등을 수행한다.

스피어엑스가 수행할 전천 영상분광기술. 한국천문연구원

스피어엑스는 2019년 시작한 나사의 중형 탐사미션으로, 캘리포니아공과대(Caltech, 칼텍) 주관으로 천문연, 나사 제트추진연구소(NASA JPL) 등 12개 기관이 참여했다. 이중 천문연은 스피어엑스 공동개발에 참여한 유일의 국제 협력기관이다.

이는 그동안 천문연이 선형분광필터 관측기술 등 스피어엑스에 필요한 연구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실제 스피어엑스 프로젝트에서 우리나라 총괄책임을 맡은 정 박사는 국내 주도 소형 우주망원경인 광시야 적외선영상기 ‘MIRIS’와 우주망원경 ‘NISS’ 개발을 주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특히 스피어엑스가 영하 220℃ 극한 우주환경을 지상에서 시험하는 ‘극저온 진공챔버’ 개발을 이끌어 성능과 납기시간 모두 한 치 오차 없이 완료했다.

아울러 양 박사는 그동안 지상 대형망원경 활용 외부은하 연구를 진행한 경력을 바탕으로 이번 프로젝트에서 스피어엑스가 획득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도했고, 향후 실제 전송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천문연구를 이끌 예정이다.

천문연 나사로부터 역제안 받은 이유

스피어엑스 임무의 핵심 기술은 세계 최초 102개의 적외선 파장으로 전체 우주를 탐색하는 분광관측이다. 

빅뱅 이후 우주가 가속 팽창하면서 방출된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적색편이가 일어나는데, 스피어엑스의 분광관측은 이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열쇠다.

특히 스피어엑스는 필터 위치에 따라 투과 파장이 달라지는 특수 선형분광필터를 장착, 넓은 영역을 관측하는 영상관측과 개별 천체 파장에 따른 밝기 변화를 측정하는 분광관측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선형분광필터를 우주연구에 최초로 적용한 것이 바로 천문연이다.

스피어엑스가 사용하는 분광필터 및 분광 이미지. 한국천문연구원

나사와의 최초 협업 시도는 2014년 나사의 공모과제에 참여하면서다. 그리고 최종 선정에서 탈락했다.

이는 천문연의 기술이나 계획에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닌, 오히려 1000억 원 규모 소형미션으로 진행되는 공모과제로는 천문연 제안 내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대신 나사는 천문연에 ‘3000억 원 규모 중형 미션으로 제안하라’고 역제안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천문연은 2016년 중형 미션 공모 때 이를 다시 제안, 검토와 수정을 거쳐 2019년 최종 선정되며 본격적인 공동연구에 돌입했다.

천문연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 등 우여곡절을 딛고 주요 과제로 맡은 극저온 진공챔버를 국내 업체와 성공적으로 제작, 제시간에 나사로 보내며 프로젝트 전체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아울러 원본 데이터 자체가 복잡한 분광필터 자료처리 파이프라인도 개발을 주도하며 스피어엑스 프로젝트에서 핵심을 담당했다.

이달 중 본격적인 탐사임무를 시작할 스피어엑스는 방대한 관측자료를 지구로 보낸다. 이를 연구할 세계협업 연구인력은 80명, 이중 우리나라 천문학자가 20명으로 전체의 25%나 차지한다.

양 박사는 “그동안 다른 나라의 자료를 사용하던 우리나라가 이제 스피어엑스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나아가 우수한 기술·인력으로도 기여하게 됐다”며 “천문과학데이터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역할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정 박사는 “기획연구부터 10년을 넘게 쏟아부은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고 있어 기쁘다”며 “이전에 없던 우수한 데이터로 훌륭한 연구성과를 도출해 천문우주과학 발전에 한 획을 긋겠다”고 강조했다.

우주망원경 스피이엑스(SPHEREx) 개발에 참여한 한국천문연구원 양유진 책임연구원(왼쪽)과 정웅섭 책임연구원. 사진=이재형 기자


다음은 스피어엑스의 주요 기술적 내용에 대한 연구진과 1문 1답.

▷앞으로 스피어엑스가 수행할 임무는? 
- 스피어엑스의 임무는 크게 3가지다. 큰 범주에서는 적외선으로 3차원 우주지도를 제작한다. 또 우주의 딥필드를 관측해 은하의 형성과정과 진화를 탐구하는 자료를 수집한다. 아울러 생명 유지에 필수인 물의 기원이 되는 우리은하 안에 있는 우주얼음을 추적하여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탐색하는 임무도 있다.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임무를 가진 프로젝트와 어떤 차이가 있나? 
- 가장 큰 차이는 모든 하늘을 102개 적외선 파장으로 얻는 최초의 미션이다. 현재 우주배경복사로 알려진 그림은 적외선보다 훨씬 긴 파장의 마이크로파로 측정한 결과다. 반면 스피어엑스는 가시광선이나 마이크로파로 볼 수 없는 영역까지 적외선으로 탐색하기 때문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적외선으로 관측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적외선은 파장이 길어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투과력이 좋아 가시광선으로 볼 수 없는 영역까지 관측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은 우주가 팽창하면서 은하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파장이 길어지는 적색편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포착하기 용이하다. 

▷현재 활동 중인 제임스웹 우주망원경도 적외선으로 관측하지 않나?
- 스피어엑스가 단체사진이라면 제임스웹은 개인 여권사진이다. 숲을 찍느냐 나무를 찍느냐와 같다. 장착된 망원경의 구경과 해상도에 큰 차이가 있다. 달 관측을 예로 들면 제임스웹은 보름달의 약 1/75 영역을 한 번에 관측한다. 반면 스피어엑스는 보름달 150개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약 36평방 각도의 광각 관측 능력을 갖췄다.

적외선우주망원경 스피어엑스와 제임스웹의 기능 차이. 한국천문연구원 

▷제임스웹과 차별되는 스피어엑스의 적외선 탐지기술을 설명하면?
- 스피어엑스는 적외선을 무려 102개 파장으로 동시 관측하는 영상분광기술을 탑재했다. 만약 이 기술이 없다고 가정하면 각 파장별 필터 102장을 장착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스피어엑스의 특수 선형 분광필터는 보는 방향 또는 위치에 따라 색상을 분리할 수 있어 102개 파장대를 스펙트럼으로 볼 수 있다.

▷3차원 우주지도 제작은 어떤 의미를 갖나?
- 태초 우주가 빅뱅으로 급격히 팽창하면서 별이 만들어지고, 별이 모여 은하가 됐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은하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스피어엑스는 개별 은하의 위치와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하기 때문에 3차원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면 은하가 얼마나 균일하게 퍼졌는지를 추정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우주 초기 인플레이션 이론을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은하의 형성 및 진화에 대한 연구는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나?     
- 일반적인 은하 연구는 주로 볼 수 있는 영역에서 주로 이뤄졌다. 반면 스피어엑스는 기존 보이는 은하는 제거하고 오히려 어두운 딥필드 영역에 집중한다. 그러면 그 어두운 부분에서도 덜 어둡고 더 어두운 차이가 있다. 이 우주의 적외선 파장의 모든 희미한 빛이 합쳐진 부분을 통계적으로 측정하면 최초 생성된 별이나 은하에서 왔는지, 더 가까운 우주에서 형성됐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우주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도 흥미롭다.
- 물을 기반으로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우주공간의 얼음 분포를 탐사하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스피어엑스는 성운이나 성단 태양계 스케일의 큰 범위를 관측해 얼음이 포함된 분자운을 찾는다. 우리은하의 별을 관측해 그 스펙트럼에서 3마이크론 주변 대역의 얼음 흡수 흔적을 탐색하는 방식이다. 제임스웹의 경우 수백 개 방향에 대해 우주얼음을 찾을 수 있지만, 스피어엑스는 광시야 덕택에 약 1000만 개의 장소에서 얼음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광범위한 탐색으로 흥미로운 얼음 스펙트럼을 찾아내면, 제임스웹을 이용해 더 자세하게 관측하는 방식이다.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얼음의 의미는?
- 우주공간에 흩어져 있는 물질이 중력으로 모여 별이 생성될 때 주변물질이 모여 원반을 만들고, 여기에서 행성도 만들어진다. 이때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얼음(물, 이산화탄소 등 분자)이 행성 형성에 포함돼 물의 기원이 된다.
이재형 기자
jh@kukinews.com
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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