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과학] '에너지 고속도로 국산화 초석'… KRISS, 초고압 측정표준 확립

[쿠키과학] '에너지 고속도로 국산화 초석'… KRISS, 초고압 측정표준 확립

600~800㎸급 HVDC 측정표준 개발
전력설비 신뢰도, 수출 경쟁력 강화 기대
낙뢰·개폐 전압 실험실서 정밀 재현

기사승인 2025-11-12 11:12:50
초고압 직류 고전압 표준기의 평가와 현장 HVDC 발생기의 교정과정. KRISS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초고압 직류 송전(HVDC) 설비의 성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초고압 측정표준’을 국내 최초로 확립했다.

이 기술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먼 거리로 효율적으로 보내는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의 핵심이다.

HVDC는 발전소에서 만든 교류(AC)를 초고압 직류(DC)로 바꿔 송전하는 기술로, 교류보다 전력 손실이 적고 송전 거리나 방향 조절이 쉬워 전기를 멀리 보내는 데 효율적이다.

때문에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빠르고 안정적으로 보내는 전력망의 고속도로가 돼 재생에너지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KRISS가 확보한 표준은 600㎸급 초고압 직류 표준 800㎸급 낙뢰 임펄스 표준 700㎸급 개폐 임펄스 표준 등 세 가지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은 해외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고압 전력 설비를 자체 시험·교정할 수 있게 됐다.

KRISS는 한국전력 고창전력시험센터와 일진전기에 시험장비 교정 서비스를 시작하며, 전력산업계의 기술 자립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는 200㎸ 수준의 시험장비밖에 없어 고압 설비 시험을 하려면 해외 기관의 교정을 받아야 했다.

이번에 800㎸급까지 측정할 수 있는 표준이 마련되면서, 초고압 환경에서도 전력설비의 안정성과 절연 성능을 국내에서 직접 검증할 수 있게 됐다.

연구팀은 고전압에서 열로 인해 생기는 측정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진 스텝업 방식의 정밀 측정 기술을 개발했다.

이 방식은 전압을 단계별로 높여가며 오차를 보정하는 기술로, 오차율이 백만분의 0.35 수준에 불과해 세계 최고 수준의 측정 정확도를 확보했다.

초고압 전력설비는 낙뢰나 스위치 작동 시 갑작스러운 전압 변동이 생겨 고장이 날 위험이 있다.

이를 시험하기 위해 KRISS는 낙뢰 임펄스와 개폐 임펄스 표준도 함께 개발했다.

낙뢰 임펄스는 벼락이 칠 때 생기는 순간적인 고전압을, 개폐 임펄스는 발전소 스위치를 켜거나 끌 때 발생하는 전압 변화를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기술이다.

이 표준을 이용하면 낙뢰나 전기 스파크 같은 실제 상황을 실험실에서 그대로 구현해 설비가 안전하게 견디는지를 미리 확인할 수 있어 폭우나 번개, 순간적인 전류 변동에도 전력망이 끊기지 않는 안정성을 확보했다.

초고압 직류 송전 전압(HVDC)을 측정하기 위해 직류 초고압 분압기를 조작하는 KRISS 이상화 책임연구기술원(위)과 이형규 양자전기자기측정그룹장(아래). KRISS

또 연구팀은 고전압 측정 장비의 핵심 부품인 직류 초고압 분압기를 자체 제작해 정확도를 검증했다.

이 장치는 초고압 전류를 안전하게 낮춰 실제 값을 측정할 수 있게 하는 ‘전기저울’ 역할을 한다.

KRISS는 4개의 모듈을 직렬로 연결해 600㎸급 분압기를 구성하고, 고창전력시험센터에서 실증 시험을 완료했다.

시험 결과 오차율은 0.3% 이하로, 국제 최고 수준의 정밀도를 입증했다.

이번 성과로 우리나라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기준에 부합하는 자체 시험체계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장비를 해외로 보내지 않고 국내에서 빠르게 인증을 받을 수 있어 개발기간을 단축하고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번 성과는 정부가 HVDC 산업을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의 핵심 분야로 추진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KRISS는 향후 1000㎸ 초초고압(UHV) 표준도 확립할 방침이다.

이형규 KRISS 양자전기자기측정그룹장은 “이번 표준은 국내 전력산업의 기반을 한 단계 끌어올린 중요한 이정표”라며 “전력망의 안정성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초고압 측정표준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이형규 양자전기자기측정그룹장, 이상화 책임연구기술원. KRISS
이재형 기자
jh@kukinews.com
이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