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지난해 12월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 척결’을 목표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민은 적극 반대하며 계엄을 막아섰다.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되고 정권은 교체됐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이어지는 정치권 공방에 국민 피로도는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국민이 준 ‘민주주의 바톤’을 잘 받아 달리고 있을까. 비상계엄 이후 정치권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짚어본다. |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1년 전 이날 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때 아닌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들끓던 갈등의 타개책은 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민주주의적 해결이 아닌 병력을 동원한 극단적 수단이었다. 비상계엄은 꼬인 정국을 무력으로 끊어내려던 윤석열식 해법이었다. 군용 헬기는 국회 위로 떠올랐고 무장한 계엄군은 국회 본청 창문을 깨고 들이쳤다.
◇ 대통령 끌어 내린 ‘명분 없는 계엄’
계엄령은 금새 막을 내렸다. 선포 직후 군경의 포위를 뚫고 국회에 모인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비상계엄 해체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재석 190명 중 190명의 찬성, 계엄 선포 약 155분 만이다.
집권당인 국민의힘 외 6개 야당(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개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12월14일 국회에서 의결됐다. 헌법상 계엄 요건인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는 부재했고, 국회 통고 절차를 무시했으며, 정당 활동마저 금지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형법상 ‘내란죄’로 규정했다. 요컨대, 계엄의 명분이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최종 선고했다. 문형배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통해 “피청구인(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중대하게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라는 헌법의 핵심 가치를 훼손한 것으로 파면을 정당화할 중대한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 ‘혼돈 과도기’ 속 국민주권정부 출범
정권은 교체됐다. 탄핵으로 지난 6월3일 치러진 조기 대선에선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됐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국민주권정부’의 핵심 기조는 ‘회복과 성장’이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1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3년간 무너진 물가 안정과 민생 회복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컸다. 사회적 혼란을 틈타 지난 1월 한 매체는 ‘계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의 중국인 간첩(해커부대) 99명이 체포된 뒤,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이송됐다. 심문 과정에서 이들이 선거 개입 혐의를 자백했다’는 허위 조작 정보를 유포하며 여론을 호도했다.
비상계엄 주도자·가담자 수사 과정도 난항을 겪었다. 정권교체 전 대통령실 압수수색은 경호처의 저지로 무산되기도 했고, 극우 성향 친윤 단체들은 서울중앙지법에 몰려들어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사법적 단죄도 속도를 냈지만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 등을 들어 특검 조사와 재판 출석을 거부하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이 같은 모습에 보수 진영의 지형도 바뀌었다. 쿠키뉴스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지난달 8~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38.7%인 반면, 국민의힘은 26%에 그쳤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같은 기관의 지난해 1월 조사(민주 37.0% vs 국힘 36.3%)와 비교하면 국민의힘 지지도는 10%p 이상 하락했다.
◇ 입법 과제 산적했지만…여의도 정쟁 지속
새 정부와 여당 지도부가 출범했지만 비상계엄의 잔흔은 여전하다.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 전국당원대회에서 당권을 거머쥔 정청래 당 대표는 검찰·언론·사법 등 ‘3대 개혁’ 완수를 천명했다. ‘당·정·대(여당, 정부, 대통령실) 원팀’ 구호도 외쳤다. 그러나 정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대립 의혹, 지선 출마에 대한 당 지도부와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 간 이견, 1인1표제로 인한 당원들의 지도부 불신 등으로 속도를 내야 할 개혁법안들이 정작 내부 동력 상실로 지체되고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국민의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같은 달 당대표에 오른 장동혁 당 대표는 계엄 사태 정리가 아닌 ‘야당탄압’ 프레임을 띄웠다. 당내 반탄(탄핵 반대)파도 주를 이루고 있다. 계속된 우경화에 검찰·사법개혁을 들이미는 여당의 입법 독주를 견제할 명분과 논리적 동력마저 상실했다는 평가다.
12·3 비상계엄은 위헌 판결이 났지만 형법에 따른 내란죄 재판은 이어지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우두머리 혐의를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는 내년 1월 심리를 마무리하고 2월 중순쯤 1심 선고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이 내년 1월18일 만료되는 가운데, 개혁 관련 입법 속도를 늦추는 갈등 요소 등을 풀어나가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