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천안 문화계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몇해 전 광덕면 한 산자락에 윤동주문학산촌을 연 박해환씨가 요즘 “윤동주 시인이 천안인이 됐다”는 주장의 특강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천안시민 대상으로 ‘천안인이 된 시인 윤동주’ 제목의 강의를 중앙도서관에서 했다. 이 강의는 천안학연구소의 ‘2025 찾아가는 천안학’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또 박씨는 10월 22일 천안지역사전시관에서 ‘천안인이 된 윤동주’ 제목의 특강을 했다. 천안문화재단이 마련한 시민 교육프로그램 10강좌 중 맨 처음 진행됐다. 주최 측이 박씨 강의를 가장 중요한 주제로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 여름 천안학 홍보포스터도 박씨 강의를 정가운데 배치해, 천안 문화계 핫이슈로 만들려는 모양새를 취했다.
‘윤동주=천안인’은 어처구니없는 논리에서 시작됐다. 2022년 10월 국가보훈부는 윤동주·홍범도 등 만주 등 국외서 활동하다 순국해 대한민국 호적에 오르지 못한 독립영웅 200여 명을 독립기념관 주소지로 입적시켰다. 그런데 이 조치가 예상 못한 곳으로 확대됐다.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있으니 독립영웅들 호적지가 천안”이란 주장이다. 독립영웅 중에서도 유독 시인 윤동주만 내세워 천안인으로 만들었다. ‘천안인이 된 홍범도’ 주장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독립기념관은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애국심 본산이다. 또 윤동주는 전 국민이 사랑하는 시인이자 애국지사다.
‘윤동주=천안인’ 논리는 독립기념관을 천안의 일개 기관쯤으로 착각해 출발한 듯하다. 이어 윤동주를 천안인이란 억지 속에 가둬 그를 향한 국민적 사랑을 왜곡시키고 있다.
‘윤동주=독립기념관 → 독립기념관=천안 → 윤동주=천안’은 1차원적 논리다. 어릴 적 부르던 노래를 떠오르게 한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이 노래의 비약은 원숭이 똥구멍에서 태극기로까지 이어진다. 도대체 원숭이가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문제는 이런 전국민이 웃을 법한 ‘윤동주 천안인론’을 천안의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기관들이 나서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안학연구소, 천안중앙도서관, 천안문화재단이 박씨에게 멍석을 깔아주고 있다.
지난 10월 천안문화재단 교육프로그램에서 그의 강연이 천안의 역사인물 김시민, 왕건, 홍대용, 박문수에 앞서 배치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이 최근 재개장한 천안삼거리공원에서 기어코 큰 일을 내고야 말았다. 윤동주의 ‘서시’ 시비를 공원에 세운 것이다.
천안출신 문학인이 아무리 없다고 천안흥타령 본산지에 ‘억지 천안인’ 시비를 세우나? 나태주 시인은 이를 두고 ‘이제 천안은 윤동주 선생의 고장’이라고 읊었고, 이에 이 시비도 세웠다. 또 김소월 시에 천안삼거리가 등장한다고, 엄연히 서울 왕십리가 주된 소재인 ‘왕십리’ 시비도 세웠다. 이렇듯 논리 비약 ‘3부작’ 시비가 천안 역사성을 상징하는 공원 한 복판에 선 것이다. 이제 윤동주를 천안 시인으로 완전히 규정해, 조만간 개관할 천안시립문학관에까지 들이밀 태세다.
박해환씨는 지난해 가천대에서 ‘윤동주 문학의 장소성과 문화 자원화 방안’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윤동주 기념물은 북간도(만주), 서울, 일본 등지에 여럿 있다. 길림성 명동촌 생가와 묘소에 표지석, 서울에는 기념관·문학관, 일본에도 시비가 세워져 있다. 그가 논문서 밝혔듯 윤동주의 시를 이해하는 데 뗄래야 뗄 수 없는 곳들이다.
그런데 박씨는 천안에 윤동주문학산촌을 열었다. 생뚱맞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천안의 가볼만한 곳’ 한 군데가 늘었다고 여겼다. 전국민이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의 기념사업을 천안서도 펴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윤동주를 천안인으로 만드는 일에는 반대한다. 천안시민뿐 아니라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씨만이 아니라 천안이 전국민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