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IBS)이 양성자와 중성자 수가 같은 대칭 핵에서 원자핵 구조가 뒤집히는 '반전의 섬' 현상을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
이번 성과는 그동안 중성자가 과도하게 많은 불안정한 핵에서만 나타난다고 알려진 현상이 대칭 핵에서도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힌 것으로, 핵 구조이론 확장에 새로운 전기가 될 전망이다.
뒤집힌 원자핵 내부 질서 발
IBS 희귀핵연구단 하정수 YSF(Young Scientist Fellow)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몰리브덴-84 원자핵에서 8개의 입자가 한꺼번에 높은 껍질로 이동하는 대규모 구조 변화를 관측했다.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 핵자가 여러 층의 껍질에 배치된 원자핵은 낮은 층부터 차례로 채워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특정 조건에서는 핵자가 평소보다 높은 층의 껍질에 자리할 때 오히려 더 안정해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반전의 섬'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반전의 섬 현상은 베릴륨-12, 마그네슘-32, 크로뮴-64 같은 중성자가 과도하게 많은 불안정한 핵에서만 관측됐다.
연구팀은 중성자가 적은 몰리브덴-84와 몰리브덴-86을 비교 분석했다.
두 핵은 양성자 수가 42개로 같지만 중성자는 각각 42개, 44개로 2개 차이가 있어 구조변화를 비교하기 용이하다.
중성자 2개 차이로 핵 모양 극적으로 달라진다
연구팀은 미국 미시간주립대 초전도사이클로트론연구소(NSCL)에서 몰리브덴 방사성동위원소 빔을 표적에 충돌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빔이 표적에 부딪치면 원자핵은 잠시 에너지를 머금은 들뜬 상태가 되고, 이후 감마선을 방출하며 다시 에너지가 낮은 바닥상태로 돌아간다.
연구팀은 이때 방출되는 감마선을 정밀 측정했다.
실험에 사용한 빔은 빛의 약 30% 속도로 매우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감마선에 도플러 효과가 생긴다.
이를 보정해 두 핵에서 나온 신호를 구분하면, 원자핵이 바닥상태로 되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원자핵의 실제 구조가 어떤 형태인지를 추정할 수 있다.
실제 핵이 감마선을 방출할 때의 속도 차이를 비교해 들뜬 상태의 수명과 핵 구조 변형 정도를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몰리브덴-84는 바닥상태로 매우 빠르게 복귀했고, 길게 늘어나거나 납작해진 강한 변형을 보였다.
반면 몰리브덴-86은 이 같은 변형이 훨씬 적게 나타났다.
단 2개의 중성자 차이로 원자핵의 모양과 구조가 크게 달라진 것이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여러 핵 형태를 가정한 이론 계산과 비교했다. 몰리브덴-84의 강한 변형은 여러 핵자가 높은 껍질을 차지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날 때만 재현됐다. 즉, 몰리브덴-84는 반전의 섬의 특성과 정확히 부합하는 구조를 갖는다.
특히 몰리브덴-84는 양성자와 중성자 수가 같은 대칭 핵이다. 대칭 핵에서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거의 구분되지 않고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여러 핵자가 한꺼번에 높은 껍질로 이동하는 집단적 껍질 들뜸이 나타나기 유리하다.
이번 연구는 이런 집단적 들뜸이 실제로 강한 변형과 구조 반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확히 확인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1932년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제시한 '아이소스핀' 개념에 따르면 핵력에서는 서로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전자의 스핀이 '위·아래' 두 상태로 구분되듯, 아이소스핀에서는 위 상태가 양성자, 아래 상태가 중성자에 대응한다.
이를 아이소스핀 대칭성이라고 부르는데, 몰리브덴-84는 양성자와 중성자 수가 같아 이 대칭성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핵이다.
반전의 섬 핵심은 삼핵자 힘
원자핵의 구조는 그 모양과 밀접하게 연결돼 핵자들이 껍질에 배치되는 방식에 따라 핵은 구형이거나 길게 늘어난 장형, 납작한 편형, 또는 세 축의 길이가 모두 다른 삼축 변형 등의 같은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연구팀은 이 같은 반전이 원자핵을 구성하는 핵력 중 '삼핵자 힘(three-nucleon force)'과 밀접하게 연관됨을 제시했다.
삼핵자 힘은 세 개의 핵자가 동시에 존재할 때 나타나는 추가 상호작용으로, 두 핵자 간 힘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미세한 구조 차이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이론 계산에서 삼핵자 힘을 제외하면 실험에서 관측된 강한 변형이 재현되지 않았다.
이는 삼핵자 힘이 반전의 섬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임을 의미한다.
하 YSF는 "이번 연구는 대칭 핵에서도 반전의 섬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사례로, 원자핵 구조 변화에 대한 기존 이론을 확장하는 중요한 발견"이라며 "희귀동위원소의 구조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새로운 핵모델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달 2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논문명 : Abrupt structural transition in exotic molybdenum isotopes unveils an isospin-symmetric island of inversion / Nature Communications (2025) / 저자 : J. Ha, F. Recchia, S. M. Lenzi, H. Iwasaki, D. D. Dao, F. Nowacki, A. Revel, P. Aguilera, G. de Angelis, J. Ash, D. Bazin, M. A. Bentley, S. Biswas, S. Carollo, M. L. Cortes, R. Elder, R. Escudeiro, P. Farris, A. Gade, T. Ginter, Grinder, J. Li, D. R. Napoli, S. Noji, J. Pereira, S. Pigliapoco, A. Pompermaier, A. Poves, K. Rezynkina, A. Sanchez, R. Wadsworth & D. Weissha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