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승률 1% 뚫고 역전승…부광약품 바둑팀, 9년 만의 정상 탈환 [쿠키인터뷰]

AI 승률 1% 뚫고 역전승…부광약품 바둑팀, 9년 만의 정상 탈환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6-02-01 06:00:09
이상훈 서울 부광약품 바둑팀 감독이 지난 30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진행된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승 소회를 밝히고 있다. 김은빈 기자

서울 부광약품 바둑팀이 9년 만에 2025 한국여자바둑리그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인공지능(AI)이 예측한 승률 1%의 열세를 뒤집은 결과다. 쿠키뉴스는 지난 30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이상훈 감독과 주장 김채영 9단, 이나현 2단, 최서비 2단, 백여정 초단을 만나 인터뷰했다.

부광약품은 이번 시즌 전력 보강 없이 선수 구성을 유지했다. 지난 시즌 7위에 머물렀음에도  내린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주장 김채영 9단은 “지난 시즌 우리 팀 전력에 대한 대외적 평가가 좋지는 않았지만,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우리 선수들의 잠재력이 다른 팀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전력 보강보다 우리 팀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그대로 가는 것이 낫다고 감독님께 제안했다”고 밝혔다. 올해 새로 부임한 이상훈 감독은 팀의 중심인 주장의 요청을 믿어줬다. 이 감독은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열세인 상황이었지만, 주장의 제안을 듣고 신예 선수들의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라며 “선수들의 유대감을 믿은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번 챔피언 결정전에서 최대 분수령은 최서비 2단의 역전승이었다. 대국 중반 AI 승률 그래프는 최서비 2단의 승리 가능성을 1% 미만으로 산출했다. 최서비 2단은 “형세가 불리해 다른 생각을 할 여유 없이 이길 수 있는 수를 찾는 데만 집중했다”면서 “그 집중력이 전세를 뒤집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에 대해 이상훈 감독은 “AI는 최선의 수를 가정해 수치를 내놓지만, 사람은 실수를 한다”며 “상대가 초읽기에 몰리는 등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최 선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렵게 판을 짠 것이 상대의 실수를 유도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30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부광약품 바둑팀 이상훈 감독(왼쪽부터)과 백여정 초단, 주장 김채영 9단, 최서비 2단, 이나현 2단을 만나 인터뷰했다. 김은빈 기자

AI가 예견한 1%의 확률을 뒤집은 이면에는 선수들의 직관을 믿는 이 감독의 지도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AI가 정답을 제시하기에 기사들의 개성이나 예술성이 훼손되는 측면도 분명 있다”면서도 “안목과 지평을 넓혀주는 장점도 있는 만큼, AI 분석을 참고하되 결정적 순간엔 본인만의 직관을 섞어 가장 나다운 수를 찾으라고 권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선수들은 AI를 절대적 정답지가 아닌 맞춤형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나현 2단은 “AI가 제시하는 수를 이해한 뒤 자기화하는 방식으로 활용 중”이라고 말했다. 백여정 초단도 “기풍(바둑을 두는 스타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AI는 보조적인 참고서로 활용한다”고 전했다. 최서비 2단은 “AI는 고정관념을 부숴주는 존재로, 인간이 생각지 못한 새로운 수를 제시할 때마다 사고가 확장된다”고 평가했다. 

선수들이 AI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며 개성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으나, 데이터 중심의 학습이 불러온 ‘기풍의 획일화’는 바둑계가 직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김채영 9단은 “바둑을 잘 둔다는 기준이 ‘AI처럼 두는지’ 여부로 고착되면서 과거에 비해 기풍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AI의 등장으로 기사는 단순히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아닌 경기를 통해 승부 서사를 전달하는 존재로 포지션이 바뀐 것 같다”며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스포츠 특유의 변수와 드라마가 있기에 사람들이 여전히 AI가 아닌 사람의 바둑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번 성과는 부광약품의 장기적인 지원이 밑거름이 됐다. 당장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가능성을 믿고 투자하는 제약사의 철학이 바둑팀 운영에도 투영된 결과다. 최서비 2단은 “안정적인 지원 덕분에 선수들이 불필요한 걱정 없이 바둑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채영 9단은 “선수들이 해외 시합에 나갈 때 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것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면서 “또한 부광약품이 신예 선수 발굴에 적극적이었던 점이 우승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