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개혁 완수를 위해 국가 재정투자를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의료 분야에 지원할 때 건강보험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탈피해 국가 재정과 건강보험을 양대 축으로 두고 과감하게 지원하는 체계로 전환할 방침이다.
노연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6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브리핑을 열고 “필수·지역의료의 붕괴 위기 속에 초고령사회 전환을 목전에 둔 지금은 의료 정상화와 질적 성숙을 견인할 마지막 기회”라며 “절박한 위기의식 아래 오랫동안 해결을 미뤄 온 우리 의료체계의 근본적 난제들을 치열하게 논의해 (해법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개혁 완수를 위해 5년간 20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방침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개혁 실행방안의 차질 없는 이행을 위해 과감한 재정 투자와 법·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향후 5년간 의료개혁 추진에 국가 재정 10조원, 건강보험 10조원 총 20조원 이상의 재정이 집중적으로 지원된다”고 전했다.
의료인력 양성, 지역의료 격차 해소에 연간 2조원 규모의 국가 지원이 본격화된다. 현재는 8000억 수준을 투자하고 있는데, 이에 투입되는 예산 규모를 2배 이상 늘린 것이다. 건강보험의 안정적 수입 확보를 위해 약 12조6000억원 수준의 국고 지원과는 별개로 편성된 예산이다.
전공의 수련 예산 90배 높였다…의사 교육 환경 개선에 6조원 투자
정부는 의학교육과 전공의 수련에 5년간 4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의대 교육 선진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교육 환경 개선에는 5년간 2조원 이상을 편성했다.
구체적으로 전공의 수련의 질을 높이기 위해 2조원가량의 재정을 투입한다. 올해 35억원 편성에 그쳤던 전공의 수련 예산은 내년 3130억원으로, 90배 높였다. 또 소아청소년과, 외과 등 8개 필수과목을 전공하는 약 5000명에 대해 연 1200만원의 수련 수당을 지급한다.
내년 예산에는 지도전문의 지도 수당 신설, 맞춤형 밀착 지도 강화, 다기관 협력 수련 등 수련체계 전면 혁신 지원도 포함됐다. 노 위원장은 “수련의 질 개선에 지도전문의 역할이 핵심적이라고 판단했다. 수련다운 수련이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2025년도에는 지도전문의 지원 예산 약 3000억원을 포함해 수련 관련 예산을 약 4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전공의가 제대로 수련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러한 재정 투자가 전공의 복귀로 이어지길 기대했다. 노 위원장은 “이번 실행방안에는 그간 전공의들이 요구해왔던 수급추계기구 설치,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대응,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전문의 인력 증원 등 내용이 적극 반영돼 있다”며 “가능하면 정부의 지원 확대가 전공의 복귀로 이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복귀하면 개선된 환경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필수의료 재정 투자 강화…지역필수의사제 병행
지역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예산 지원도 확대한다. 지역의료 기반 강화에 2조5000억원 이상의 재정을 쏟기로 했다. 중증·응급 최종치료를 지역에서 받을 수 있게 지역 국립대병원에 1836억원을 지원한다. 필수진료를 골든아워 내 수행할 수 있도록 민간병원에도 1200억원 규모의 지원을 최초로 도입한다. 공공병원에도 1000억원 규모의 시설 투자, 인건비 등 620억원의 운영비를 신설해 지원한다.
이와 함께 지역필수의사제도 내년 시범사업을 통해 제도화한다. 정경실 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은 “이번에 의대 정원 배정을 하면서 지역 의대에 상당 정원을 배정했고, 각 대학마다 지역인재 전형으로 60% 이상 선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면서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된 학생들이 전공의 수련까지 지역에서 하게 되면, 지역 정착 비율이 82% 정도라는 통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서 수련 받을 때 투자를 대폭 강화하는 등 여건이 갖춰지면, 지역 의대 학생들이 서울에 수련 받으러 올라가지 않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필수의료 기능 강화에는 2조원 이상을 편성했다. 내년에는 2152억원을 지원해 중증외상 치료 인프라를 확대하고 중증응급 환자 이송 지원체계를 강화한다. 암·심뇌혈관 질환 및 중환자 치료 역량 강화, 달빛어린이병원 등 야간 소아진료 공백 해소를 위한 지원도 확대한다.
필수의료 기피요인 중 하나인 의료사고 분쟁 해결을 위한 재정투자도 늘린다. 정부가 의료분쟁조정 초기 단계부터 환자·피해자를 돕는 ‘환자 대변인제’를 시범운영하는 등 의료분쟁제도 혁신을 지원한다. 불가항력 분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금도 최대 3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10배 인상한다. 필수의료 전공의·전문의 대상 의료사고배상 보험료 지원은 50억원 규모로 시작한다.
아울러 진료·연구 선순환을 위한 필수의료 연구개발(R&D) 예산도 5년간 1조5000억원 규모로 투입한다. 지역 국립대병원에 대한 R&D 사업엔 110억원을 신규로 투자한다.
건강보험 수가 손질해 ‘정상화’…“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 9월 시작”
건강보험 수가도 단계적으로 정상화할 계획이다. 현재 종합병원 이상의 의료기관에서 주로 하는 수술, 처치 행위 중 3000여개는 보상이 적은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이에 저보상된 전체 의료행위를 원가 수준으로 인상하는 수가 전면 조정안을 내년까지 마련하고, 2027년까진 공정한 보상체계안을 완성할 방침이다. 또 내년 상반기까지 연간 50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두경부암, 소화기암 등 생명과 직결된 1000여 개의 중증수술과 마취 등 수술에 꼭 필요한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대폭 인상하기로 했다.
수술 위험도, 인력의 숙련도, 응급 진료대기,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4대 공공정책수가도 올해부터 본격 도입한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중증 중심 수가 인상에 연간 약 3조원을 투입한다. 전문인력 중심 병원으로의 단계적 전환을 위해 시행하는 지원사업으로, 참여 의료기관은 중증환자 비중을 3년 내 70%까지 상향하거나 현행 비중의 50% 이상 높이고, 지역과 병상 규모에 따라 일반 병상을 5~15% 감축해야 한다.
노 위원장은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사업은 정부가 방향을 정해 의무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를 원하는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가능하면 9월부터 시범사업을 시작해 구조 전환 준비가 된 병원부터 조속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충분한 신청기간을 둬서 여건에 맞춰 준비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