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습으로 죽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웰다잉의 시작

‘어떤 모습으로 죽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웰다잉의 시작

기사승인 2015-08-08 06:49:55
[쿠키뉴스=김단비 기자]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병원에서 많은 사람이 생을 마감한다. 병실 바로 옆 병원 장례식장은 생의 마침표를 찍는 곳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연구소(EIU)가 전 세계 40개국을 대상으로 죽음의 질 지수를 평가했다. 한국은 40개 나라 중 32번째다. 꼴찌는 면했지만 불행한 수치다. 죽음의 질은 개인이 얼마나 평안하게 생을 마감하느냐에 달려 있다. 신체적 고통 없이 편안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답게 이별할 때 죽음의 질은 높아진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질병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고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런 이별을 고해야 할 때도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는 어떤 경우든 평소에 죽음을 준비한 상태라면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윤 교수는 영화 한 편을 소개했다. 영화는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납치된 비행기 안의 승객들은 다가올 죽음을 직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보낸다. “사랑해, 고마워, 잘 지내.” 길지 않은 대화에서 승객들은 죽음의 순간을 덤덤히 받아들인다.

영화 속 하나의 장면에서 이상적인 죽음을 정의한 윤 교수는 “비행기 추락이 예상되자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한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테러범에 의해 억울하게 죽는 이 순간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삶을 마감하는 사람도, 그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들에게도 전화 한 통은 슬픔을 이기는 경험이 된다. 전화가 없었다면 남은 가족들은 허망한 사고 소식을 듣고 한동안 실의에 빠졌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윤 교수는 말기 암환자에게는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진다고 강조한다. 윤 교수는 “어떠한 의학적 처치도 병을 낫게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삶에 집착하는 동안엔 죽음을 준비하는 기회조차 잃어버린다. 나 스스로 삶을 정리해 나갈 때 가족들도 나를 떠나보낼 시간을 갖게 된다.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은 남겨질 가족들에게 슬픔을 경감시켜 주는 일이 된다”고 설명했다.

평소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라고 말하는 윤영호 교수에게 죽음을 위해 스스로는 어떤 준비를 했는지 물었다. 윤 교수는 “거창할 게 없다.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이 어렵다면 편지나 영상이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는 주말에 가족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의 마지막 가는 길은 어땠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하는 편이다. 또 사전의료의향서도 작성해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완화의료를 통해 고통 없이 삶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사진 찍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영상을 촬영하자고 하면 당연히 안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떠난 자가 남겨놓은 편지나 영상은 가족에게는 그리움을 조용히 삭힐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 된다”고 답했다.

윤 교수는 임종 장소로 병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상당수가 치료에 의존하다 병원에서 눈 감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윤 교수는 “병원은 전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곳이 돼야 한다. 병원이 장례사업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일은 굉장히 모순적인 현실이다. 현재의 수가체계로는 운영이 불가능해 장례사업을 해야만 하는 비이상적인 구조지만 병원이 삶의 마지막 장소가 되선 안 된다. 바람직한 죽음의 장소가 어딘지 고민한다면 답은 쉽게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곳에서 죽길 바란다. 차디찬 병원이란 공간에서 눈을 감기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가정에서의 호스피스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예로 아파트와 같은 거주환경에서 죽은 뒤 시체를 옮기는 작업도 많은 노력과 인력이 필요하다. 집에서 임종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렇다면 집이 임종하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해서 병원이 임종의 장소가 돼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병원과 집의 중간 모습이 있다. 바로 호스피스”라고 제시했다.

가정과 병원의 중간 형태인 호스피스. 한국의 호스피스 병상은 올 7월 1000개를 겨우 넘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연구소(EIU)가 실시한 죽음의 질 조사에서 한국이 낮은 순위를 기록한 까닭도 인구수에 한참 못 미치는 호스피스 병상 수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호스피스는 집과 같은 공간에서 전문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호스피스가 저 멀리 산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 많은 사람이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다면 죽음이 곧 고통스런 삶의 끝자락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편안히 삶을 마감하는 시간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적 죽음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이뤄진 인터뷰의 결론은 평소 자신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계획해 두는 일과 편안히 죽을 수 있는 공간을 국가적 차원에서 준비하는 것이었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kubee08@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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