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평창올림픽)이 25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전 세계는 스포츠를 매개로 하나가 됐죠. 다만, 이날 여야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남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김 부위원장은 같은 날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남했습니다. 자유한국당(한국당) 의원·보좌진·당원 등 100여명은 이를 저지하려고 김 부위원장의 이동 경로인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에서 점거농성을 벌였습니다. 점거농성은 지난 24일 오후 7시에 시작해 다음 날 오전 11시가 돼서야 종료됐습니다. 결국, 김 부위원장은 통일대교가 아닌 전진교로 우회했습니다.
한국당은 왜 이토록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반대할까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김 부위원장이 정찰총국의 수장이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국민감정이 상할 수 있다는 겁니다. 농성 현장에서는 ‘김영철 즉시 사살’ ‘철천지원수’ ‘살인마’ 등 원색적 표현이 난무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김 부위원장을 빼돌려 초호화 호텔에 모셨다”며 “5000만 애국국민은 김 부위원장을 반드시 체포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장제원 같은 당 수석대변인은 “결국 살인마 전범 김 부위원장이 대한민국을 범했다”면서 “김 부위원장에게 샛문을 열어준 것은 권력남용·국정농단·반역행위”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한국당의 주장이 힘을 얻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앞서 한국당 역시 김 부위원장과의 대화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인데요. 이에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2014년 10월 남북 군사 회담을 위해 한 차례 방남했습니다.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논평에서 “남북 관계가 대화와 도발을 오가는 상황”이라면서도 “(남북 간) 대화의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당시에도 김 부위원장은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서 주목되던 상황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이 북한 고위급 인사를 환영한 것은 이때뿐만이 아닙니다. 새누리당은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 고(故) 김양건 전 통일전선부장, 황병서 북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등을 환영하며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최 비서는 김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북한 권력 2인자로 불렸습니다. 황 국장은 인민군 2인자였습니다. 계급과 서열로 따지자면 이들 ‘3인방’ 모두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 연루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 부위원장의 방남은 한반도 평화 조성을 위해 필요한 과정입니다. 김 부위원장은 북한의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으로 재임 중이기 때문이죠. 앞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자신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남한에 보내는 등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습니다. 김 부부장은 지난 10일 '평양을 방문해 달라'는 김 위원장의 친서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라고 답했습니다. 북한이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에서 통일전선부장인 김 부위원장의 방남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한국당의 행동에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오는 6월13일 시행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당이 ‘김영철 방남’을 통해 무너진 보수층을 결집하고 구심력을 높이려 한다는 주장입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기-승-전-색깔론’으로 중무장한 채 오로지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고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된 한국당의 작태는 자기부정이고 모순 그 자체”라면서 “남·북 대화는 물론 북·미 대화 없이 한반도 비핵화는 요원하다. 한반도 평화 노력에 동참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와 북한은 지난 9년간 대화가 단절돼 있었습니다. 남북 고위급 대화를 통해 꽁꽁 얼어붙은 한반도에 훈풍이 불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한국당으로 인해 이 소중한 기회가 무산됐다면 어땠을까요. 대화 여건을 다시 조성하기 위해 또다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밤샘 농성까지 불사한 한국당의 김 부위원장 방남 철회 요구. 정말 국익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심유철 기자 tladbcjf@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