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로 소환하는 흙에 대한 기억

현재로 소환하는 흙에 대한 기억

기사승인 2017-02-17 15:02:04

 

[쿠키뉴스 구미=김희정 기자] 여기 한 도예가가 있다.
생활과 철학을 담은 작품을 선보이는 도예가 조동일.
그는 도예가 이지만 자신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 흙에 대한 끈임 없는 물음
“저는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그 답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흙이 갖고 있는 본질과 특성을 찾아내 드러나게 하는 조력자죠.”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산에 가서 흙을 채취하다보면 흙 속에 있던 무생물과 생물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흔적에서 ‘생의 순환’에 대한 의미를 찾게 됩니다.”

“또 자연의 모든 것은 흙으로 돌아가게 되죠. 그러니까 흙은 생명의 모체이며 수용과 포용의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의 원재료가 되는 흙, 그 흙에 대한 도예가의 생각이 자연의 이치와 하나가 됐다.

어떤 분야의 예술도 마찬가지겠지만 도예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과 철학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의 작품에도 생활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그는 어린 시절 보고 느꼈던 흙에 대한 기억을 현재로 소환해 작품으로 만든다.

대표작 중 하나인 ‘흔적의 길’은 어린 시절 흙에서 놀던 기억에 뿌리를 둔다. 그 시절 재미를 찾아 노는 것은 순수한 본능이었다. 그 본능을 가둘 틀 자체가 없었던 그 시절의 유희는 그의 기억에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흙과 흙에 남은 곡선 하나, 그리고 멈춰선 구슬과 점 하나. 그의 기억은 그렇게 현재에 표현돼 사람들의 마음을 순수하게 울리게 된다.

‘현상’은 그의 시각으로 흙이 가지고 있는 물성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작품이다. 물 빠진 겨울 저수지 옆을 지나던 어린 조동일의 눈에 들어온 건 갈라진 저수지 바닥이었다.

물이 조금 남아 고인 곳에 돌이 하나 박혀 있었다. 그 위로 하얀 눈이 내려 저수지 바닥의 갈라진 선이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움켜쥔 그 기억을 풀어낸 작품이 ‘현상’이다.

◆ 흙에서 찾은 함께함의 행복
조동일 도예가의 작업실 한쪽에 넓은 방이 있다. 벽에는 상패와 기념패들이 진열돼 있다. 그 중 네덜란드 하멜기념관 개관기념 전시회 작품출품 인증서가 눈에 띈다. 그는 당시(2015년 6월) ‘자라병’이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네덜란드 사람 하멜과 그 일행이 조선에 표류했을 때 도자기 가마터에서 노비의 신분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일본을 통해 네덜란드로 돌아가 도자기를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현재 네덜란드 델프트 도자기의 시작이었지요.”

그가 기증한 작품 ‘자라병’에 도자기로 맺은 양국의 인연을 담은 것처럼 그는 일반인들과의 소통에서도 나눌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담으려고 한다. 바로 ‘행복’이다.

그는 2000년부터 2011년까지 구미예술창작스튜디오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예술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연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자기를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도자기를 통해 저도 즐겁고 사람들도 즐거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도자기를 손수 빚어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과정 자체가 주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작은 즐거움이 되기도 합니다. 인생이 즐거우면 좀 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또 간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도자기를 가르치기도 한다.

“간호는 돌봄입니다.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부드럽고 편안해야 환자들에게까지 그 온기가 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간호학과에서 도자기를?”이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그의 명쾌한 대답이다. 

그는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도 한다.

“엄마와 딸이 손을 잡고 지나가는 시장골목, 엄마의 얼굴에는 화상자국이 역력합니다. 불 속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엄마, 그 희생의 대가가 얼굴에 남은 화상자국이지요. 자, 어머니의 얼굴은 아름답습니까? 그렇다면 참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예비 간호사들에게 도자기를 빚는 마음으로 참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환자와 그 가족을 대하라는 그는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또 도자기를 매개로 참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하며 사람들과 행복을 나눈다. 

흙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그것을 최대한 드러내는 게 자신의 일이라는 도예가 조동일.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품은 흙으로 만든 도자기를 통해 자신을 비롯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일이다.

shine@kukinews.com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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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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