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건강한, 젊은 사람들이 먹었을 때에는 ‘이게 뭐야,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음식섭취가 어려운 노인분들은 맛있다고 드셨고요. 우리와 어르신들이 느끼는 그 ‘차이’를 좁히기가 가장 어려웠어요.”
서울 중구 동호로에 위치한 CJ제일제당 사옥 인근에서 만난 안한국 CJ프레시웨이 지원팀 총괄조리실장은 고령친화음식을 개발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말하며 웃었다. 14년간 현장에서 일했던 그는 현재 CJ프레시웨이 본사에서 일하면서 일선 병원 등에서 고령친화음식 레시피 등을 현장에 전수하는 총괄업무를 맡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8월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14.02%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UN은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7%를 넘을 경우 고령화사회, 14% 이상 고령사회, 20% 이상 초고령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현재 속도로는 오는 2020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고령친화음식은 다변화되는 사회에서 고령인구, 어르신들을 위한 음식으로 알려져있다.
◇ ‘음식은 보고 먹는 것’
“사실 고령친화음식이나 실버푸드나 비슷한 맥락의 말이예요. 노인분들이 가장 곤란해 하는게 먹는 걸 어려워하시거나 먹은 다음에 (소화를) 어려워하시거나 거든요. 저장능력이나 식욕이 떨어지시니까요. 일단은 병원이다보니 치료식 개념으로 접근하게 됐어요. 보통 ‘연하곤란식’이라고 해서 대부분의 병원들은 환자식 형태로 있거든요.”
안 총괄실장에 따르면 통상 환자식 개념의 고령친화음식은 섭취 단계에 따라 크게 3단계로 나눠져있다. 삼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에는 액체 형태로 나가고 그 다음을 잘게 간 형태, 그보다 조금 건강이 좋은 경우는 다진 음식 등이다. 섭취에 유효하지만 요리를 갈거나 으깨기 때문에 형태나 식감, 외형 부분에서 만족감을 얻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고민을 하게 됐어요. 먹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큰데, 보통 요리를 으깨거나 갈면 초록색 죽처럼 되거든요. 보는 즐거움은커녕 식감도 사라지게 돼요.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면서 연구 개발을 하게 됐죠.”
안 총괄실장은 함께 일선에서 일했던 인원들과 고민 끝에 하나의 방법을 찾아냈다. 지금 CJ프레시웨이에서 ‘무스식’으로 불리는 그것이다. 통상 연하(嚥下, 음식을 삼키는 것)가 곤란한 경우 죽처럼 갈거나 액체형태로 만드는데, 이를 다시 본래의 음식 형태로 만들어 외형과 식감을 되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볶음이다 하면 당연히 돼지고기가 들어가겠죠. 그 다음에 양파나 당근처럼 야채도 들어가겠고요. 통상 그간의 연하곤란식은 조리를 완료한 음식을 갈아서 제공하기 때문에 모든 음식이 색이 비슷해요. 어떤 음식인지 사실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구별도 안되고요. 그래서 조리한 음식을 갈고, 그 음식을 다시 원형 그대로 복구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개발을 진행했어요. 이게 어떤 음식이다 하는 걸 먹는 사람이 알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식욕에 있어서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간 음식을 다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최적화된 농도를 찾고 다시 형태로 만드는 데에만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죠.”
생각은 쉬웠지만 형태로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단단한 구근채소류의 경우는 무스식으로 재변형이 쉬었지만 질기거나 연한 채소류는 짓이겨져 형태를 되살리기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는 조리자의 능력이라기보다는 도구의 차이가 컸다. 일선 주방에서 사용하는 기계로는 분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었다.
먹는 주체가 다르다는 문제도 있었다. 건강한 사람과 환자, 그리고 어르신들이 느끼는 시감이나 맛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맛있었는데 실제 드시는 분들은 영 반응이 좋지 않기도 했어요. 왜냐면 우리는 평소에 먹는 식단을 기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 분들이 드시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니까요. 반대로 ‘이걸로 될까?” 하는 시제품들이 의외로 호응을 얻기도 했고요. 조리과정에서의 어려움도 있었죠. 청경채나 시금치 같은 경우에는 짓이겨지고 나면 아무리 형태를 만들어도 그 느낌이 살지 않았거든요. 지금에서 드는 생각지미나 아마 (무스식) 전문 도구가 있었으면 훨씬 쉬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전문도구는 없었거든요. 제한된 도구로 개발을 하다보니 고생이 끝나지 않았어요.”
맛괴 외형 다음은 영양이었다. 조리단계와 무스식 단계에서 변형을 가하다보니 영양소의 손실은 불가피했다. 안 총괄실장이 대책으로 떠올린 것은 ‘곤충식’이었다. CJ프레시웨이는 단체급식 사업본부내 병원사업본부에서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식용곤충식단을 개발했다. 고소애(갈색거저리)는 단백질이 풍부해 적은 양으로도 단백질 밀도를 높일 수 있어 환자, 특히 식욕이 적어 식사 섭취 자체가 적은 암환자들에게 큰 효과가 있다.
“일시적으로 몸이 안좋은 분들도 계시지만, 암 투병중이신 분들도 있어요. 나이를 드시거나 병세가 악화되시는 분들은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점점 드시기 어려워하시죠. 필요한 만큼의 영양분을 챙기기는 더 어려워지고요. 그에 비해 고소애의 경우 적은 양으로 충분한 영양소를 채울 수 있어서 환자식으로는 더할나위없어요. 다만 곤충이라는 거부감이 큰 문제였죠.”
안 총괄실장이 곤충식을 환자식으로 개발할 때 중점을 둔 것은 바로 최대한 곤충의 외형을 없애는 것이었다. 형태가 드러나기보다는 최대한 갈거나 혹은 분말형태로 물이나 미숫가루 같은 것에 타서 제공했다. 막연한 두려움에 거부했던 환자들도 상당수 거부감을 지우는 효과가 있었다.
◇ ‘무주공산’ 아직 갈 길 먼 실버푸드
“무스식이나 고령친화음식이 나오기 전에도 ‘연하곤란식’이라고 해서 음식 섭취가 어려운 분들을 위한 음식은 있었어요. 연하곤란식같은 경우에는 단계 기준이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스포이드로 음식을 떨어뜨렸을 때 퍼지는 속도라든지 넓이를 통해 단계를 나누곤 했어요. 묽어서 넓게 퍼지면 몇단계, 질어서 잘 안퍼지면 몇단계 이런 식으로요. 문제는 이런 기준이 각 병원 내부 규정에 따르다보니까 다른 병원과는 다르고 제각각이었죠.”
안 총괄실장은 최종적으로는 센트럴(중앙)키친을 통해 현재 CJ프레시웨이가 환자식을 제공하고 있는 병원들에 고령친화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온 길 보다는 갈 길이 멀다.
“사실 실버푸드 같은 경우는 대부분 환자식 겸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조리나 위생에서 더 꼼꼼하죠. 제가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도 조리 이후 4시간이 넘어가면 무조건 폐기처리거든요. 센트럴키친에서 음식을 조리해서 불출하면 음식의 질이 균일해지겠지만 배송·물류가 사실상 어려워요. 각 병원이 전국에 이곳저곳 퍼져있으니까요. 그래서 일단은 대안으로 가정간편식(HMR) 형태로 만들어서 제품화 하는 쪽도 고민하고 있어요.”
제품개발 등은 일선기업에 의해 진일보하고 있지만 규제 등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다. 2006년 제정된 ‘고령친화산업진흥법’에 따르면 식품 부문은 ‘노인을 위한 건강기능식품 및 급식 서비스’ 외에 규격이나 영양, 기준, 규격, 대상연령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빠진 상태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고령친화식품 한국산업표준을 제정해 각 음식에 따라 치아섭취, 잇몸섭취, 혀로 섭취 등과 경도 등을 구분할 수 있게 됐으나 나머지 세부기준은 여전히 정해지지 않고 있다. 음식 보관을 위한 냉장시설 기준, 현장에 나가는 고령친화음식이 어느 정도의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단계별 기준 등도 여전히 공란이다.
안 총괄실장은 배워야할 롤 모델로 일본을 꼽았다. 일본은 우리보다 초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국가로 관련음식은 물로 음식제작에 필요한 틀 등 다양한 제품·관련기구들이 개발된 상태다.
“고령친화음식이 가장 발달한 곳은 일본이예요.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고 배달도 가능하고요. 간편식 형태로 돼서 간단하게 집에서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을 수도 있죠. 이러한 부분을 많이 벤치마킹해서 배우려고 해요. 사회적인식이나 시스템 구조 등 갈 길이 멀어요.”
최근 CJ프레시웨이 외에 다른 식품기업에서도 연하식 등 다른이름으로 고령친화음식을 상품화한 곳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안 총괄실장은 시장 파이가 커진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며 가볍게 웃었다.
“다른 곳들보다는 CJ프레시웨이가 연하곤란식에 대한 연구를 훨씬 먼저 시작했어요. 최근 뉴스나 기사를 통해서 접하고 있는데 그보다 훨씬 오래됐죠. 그 오랜 기간 동안 쌓인 경험이 가장 많이 축적돼있지 않을까 해요. 여전히 할 일은 많지만요.”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