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띵곡(명곡) 한 번만 들어 봐줘.’ 지난 1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밴드 엔플라잉의 일상을 바꿔 놨다. 같은 달 2일 발매됐으나 실시간 차트 순위권 밖으로 밀린 이들의 노래 ‘옥탑방’을 추천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노래가 온라인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음원 순위도 점차 올랐다. 2월17일 97위로 실시간 차트에 진입한 이 노래는 역주행 8일 만에 정상을 차지했다.
“일정이 많아지긴 했지만 저희 자신은 그대로에요.” 최근 서울 아차산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엔플라잉의 리더 이승협은 이렇게 말했다. 곁에 있던 차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달라지지 말자’는 다짐이 더욱 굳어진 것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거들었다. ‘1위 가수’라는 타이틀에 마음이 요동칠 법도 한데, 이들은 묵묵히 다가오는 단독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했다.
이번 공연엔 특별한 손님이 온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옥탑방’ 추천글을 올려 ‘역주행’을 이끈 누리꾼이다. 엔플라잉이 지난달 한 음악 방송에서 “추천글을 올려주신 분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하자, 이 글을 작성한 누리꾼이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로 메일을 보내와 연락이 닿았다. 이승협은 “식사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우리를 직접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 하신다고 들었다”며 아쉬워했다.
멤버들은 ‘옥탑방’ 인기 비결을 ‘공감’에서 찾았다. 이승협은 “‘서울하늘’ ‘옥탑방’ 같은 소재가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가지 일을 하려면 다른 뭔가를 하나 포기해야 하는 우리 세대”를 떠올리며 가사를 써내려갔다. 김재현은 “공감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을 상상할 여지도 많아서 팬들은 ‘기억 조작송’이라고도 부른다”며 웃었다. 팬클럽 엔피아(N.Pia)의 지원도 힘이 됐다. 이들은 음악방송 녹화장 앞에 줄을 선 다른 가수들의 팬들에게 ‘옥탑방 많이 사랑해주세요’라고 적힌 손난로를 나눠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많은 분들이 ‘옥탑방’이 잘 돼서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멤버들도 저를 걱정해 ‘옥탑방’ 순위가 올라도 좋아하는 티를 못 냈다고 하고요.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자꾸 들으니 ‘내가 진짜 부담을 느끼고 있나’ 싶더라고요. 그래도 작업할 땐 부담을 버리려고 했어요. 그것 때문에 다음 작업이 방해 받으면 안 되니까요.” (이승협)
엔플라잉은 지난해 ‘멤버 탈퇴’라는 어려움을 겪었다. 베이스 기타를 치던 권광진이 팬과 교제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팀을 떠났다. 이후 음반 녹음이나 공연에선 외부 베이시스트를 섭외해 빈자리를 메워왔다. 김재현은 “5명의 에너지를 4명이서 내야 해서 더 많이 노력하고 연습했다”고 말했다. 차훈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대에서의 자리가 오른쪽에서 왼쪽인 된 것 뿐”이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떠들썩했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엔플라잉은 이제 ‘정주행’에 도전한다. 지난 24일 낸 새 음반 ‘봄이 부시게’를 통해서다. 음반엔 타이틀곡 ‘봄이 부시게’를 비롯해 ‘놔’, ‘불놀이’, ‘프리뷰’(Preview), ‘꽃’ 등 모두 6곡이 실렸다. 멤버들은 앞서 음반 작업을 위해 경기 양평군 양수리에 다녀왔다. 멤버들이 사비를 모아 떠난, 1박2일 ‘송 캠프’(Song Camp)였다. 김재현은 “무척 즐거웠다”며 “기회가 된다면 다음엔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음반과 동명인 타이틀곡은 ‘봄’을 테마로 하지만, 봄을 겨냥한 시즌송은 아니다. 가사에 등장하는 ‘봄’은 인생 가장 찬란한 순간에 대한 비유다. 유회승은 “차 안에서 ‘봄이 부시게’를 듣는데, 매일 지나던 영동대교가 다르게 보였다”면서 “이 노래엔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바꿔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새 음반을 내던 모든 순간이 저희에겐 찬란했어요. 가수라는 직업은 우리를 기다려주는 누군가를 갖는 거잖아요. (새 음반을 낸다는 건) 우리를 빛나게 해주시는 팬들 앞에 다시 서게 된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저희의 모든 음반과 그 음반을 내던 모든 순간이 찬란했던 것 같아요.” (김재현)
“저도 비슷해요. 팬들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찬란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차훈)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