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사태는 이건 사실상 금융회사가 중소기업들에 사기를 친 것이다. 금융당국이 적당히 은행 편을 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고객이 은행에서 상품을 샀고 그 상품 때문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사실 옥시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
“(DLS·DLF) 사태를 두고 사기라고 하는 부분은 표현이 조심스러워야 한다. 한번 신중히 생각해 보겠다”
동일한 사람이 했던 발언임에도 온도 차가 너무나 크다. 위에 언급된 두 발언의 주인공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다. 첫 번째 발언은 윤 원장이 금융행정혁신위원장으로 활동했을 당시 했던 것이고, 두 번째는 최근 DLS(금리연계파생상품) 대규모 손실 사태가 터진 후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했던 발언이다. 물론 키코와 DLS·DLF 손실 사태가 같은 것으로 볼 순 없지만 ‘파생상품’과 관련한 피해 사례라는 점에서 유사한 점도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의 발언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최근 금융감독원의 DLS·DLF 사태와 관련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DLF·DLS 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금융감독원은 중간 조사 발표에서 은행의 사기성을 인정했으나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 등 은행의 방패막이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금감원의 행동에 은행들은 사기를 자인하지 않고 금감원의 뒤에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금융감독원의 중간발표를 보면 관련 문제에 대해 조치하겠다고만 했지 (은행들에 대한) 수사 의뢰나 고발을 한다는 내용은 명시되지 않았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이달부터 열린 국정감사에서 “(DLS와 같은 도박성 짙은) 부분에 대해 금융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을 뿐 실제적인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금융감독원의 부실한 감시도 이 같은 사태를 야기한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쇄신을 위한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소비자원 조남희 대표는 “사모펀드 등 파생상품 손실과 관련해 금융위원회와 금감원도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며 “고위험상품을 무차별적으로 판매 허용하게 하고 리스크(위험고지)를 관리하지 않았다. 금감원·금융위는 사기판매에 대한 검사와 결과를 (불완전판매 보다) 먼저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윤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금융당국이 키코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오늘의 DLS 피해 사례를 초래했다”고 시인했으나 부실 감사에 대한 내부 책임론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실제 이번 국정감사에서 금융감독원이 해외 금리 연계 파생금융상품(DLS) 관련 문제를 늑장 보고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감원에서 DLS 사태를 인지한 뒤 한 달 뒤에서나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과거 키코 사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관련한 파생상품 손실 등의 사태를 경험했음에도 별다른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이 같은 비판에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그동안 정치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 중심으로 사모펀드와 관련해 미스터리쇼핑(암행평가)도 하지 말라는 요구도 있었다”며 “이번 사안을 계기로 최종적으로 규제 완화에 대한 부분, 감독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살피는 부분이 있다”고 해명할 뿐이었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취임 당시 금융권 안팎의 쇄신을 다짐하며 금융소비자 보호에 나서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18년 5월 8일 취임 당시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금융감독원의 소임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흔들림이 없어야 하며 이를 통해 금융감독원은 국가 위험 관리의 중추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다짐이 무색하게 수조원 단위의 대규모 금융사태가 터졌고, 이를 위한 대책 마련도 미온적이라는 평가다.
윤 원장이 취임사에서 “우리가 금융감독원의 이름을 회복하는 일, 이를 통해 국가 위험 관리자로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분명 더디고 아픈 혁신의 과정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윤 원장 말대로 혁신은 분명 여러 가지 충돌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에서 윤 원장이 취임사에서 담대하게 내세웠던 계획이 필요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