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종영한 Mnet ‘퀸덤’은 여성 아이돌의 음악과 무대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프로그램이다. 가수 박봄, 그룹 AOA·마마무·러블리즈·오마이걸·(여자)아이들 등 6팀은 기존에 발표했던 노래를 완전히 다른 서사로 풀어내거나 새로운 정서로 해석했고, 그 결과 경쟁에서의 승패와 무관하게 출연자들 모두 각자의 성장을 이뤄냈다. 쿠키뉴스는 최근 서울 상암산로 CJ ENM에서 ‘퀸덤’의 경연 무대들을 직접 연출한 조우리 PD를 만나 뒷얘기를 들어봤다.
Q. ‘퀸덤’의 흥행을 축하한다. 프로그램이 이렇게 화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나?
“이 정도일 줄은 사실 몰랐다. 아티스트들이 경연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은 그간 많았다. 어떻게 해야 이 프로그램을 시청자가 새롭게 받아들일까, 우리 프로그램의 어떤 점을 다른 점으로 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Q. 이 프로그램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나는 공연과 무대 연출을 맡았다. ‘퀸덤’ 전에 Mnet ‘엠카운트다운’을 1년 정도 연출했는데, 그때 여러 아티스트와 그들의 퍼포먼스가 저마다의 매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됐다. 또 ‘마마’(Mnet Asian Music Awards·MAMA) 등 시상식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각 팀이 가장 잘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해 보여주려고 했다.”
Q. ‘퀸덤’엔 음악 감독이 있었나?
“없었다. 음악 감독이 있으면, 아무리 출연 팀의 성향에 맞추기 위한 과정을 둔다고 해도, 음악 감독의 역량에 많이 좌우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음악과 무대가 천편일률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거다. 여섯 팀 모두 색깔이 뚜렷하고 역량이 뛰어난 데다, 그들의 소속사 역시 (무대를 구상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봤다.”
Q. 무대를 연출하는 과정은 어땠나?
“우선 아티스트 쪽에서 노래와 안무의 스케치를 전달받고, 그 뒤론 우리 프러덕션 팀과 같이 무대를 만들어 나갔다. ‘(아티스트 쪽에서 보낸 음악을) 우린 이런 이야기로 받아들였는데, 어떻습니까?’ ‘이런 콘셉트가 나올 것 같은데 이런 색깔로 만들어볼까요?’ 등의 논의를 나눈다. 공연을 준비할 땐 노래를 100번 가까이 듣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하나의 뾰족한 뭔가가 떠오르는 게 있다. 그걸 팀끼리 겹치지 않고 구현하는 게 우리의 몫이었다.”
Q. 직접 의견을 전달한 아티스트도 있었나?
“(여자)아이들의 소연, 러블리즈 예인, 오마이걸 유아… 사실 대부분 그랬다. 다만 서로의 개인번호를 알지 못하니까 매니저님을 통해서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받았다. (무대 준비를) 공평하게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같은 경로로 소통하려 했다.”
Q. 무대를 준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무엇인가?
“모든 무대에 서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시나리오와 시놉시스를 짜고, (아티스트들을) 캐릭터화하려고 했다. 무엇보다, ‘걸그룹’이라고 불리는 이 여성 아티스트들이 정말 멋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 친구들에게 어떤 역량과 어떤 멋짐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잘 나온 것 같아서 기쁘다.”
Q. 팀 대항전이 대부분이었지만, 유닛 경연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퍼포먼스 유닛 ‘식스퍼즐’의 공연은 개인 무대와 합동 무대를 연결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힘들었다.(웃음) 그날 ‘팬도라의 상자’ 경연도 같이해서, 아티스트들도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도 재밌었다. 한 무대 안에서 쭉 이어가는 느낌을 내고 싶어서 마지막 곡까지 음악을 연결했다. 식스퍼즐이 함께 공연했던 마지막 무대의 경우, 노래를 리틀믹스의 ‘파워’(Power)로 하고 싶었다. 여성 아티스트들이 이렇게 모여 멋진 퍼포먼스를,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로 꾸밀 기회가 거의 없을 거다. (식스퍼즐 무대가) 그걸 할 기회라고 생각했고, 거기엔 ‘파워’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Q. ‘퀸덤’을 마친 소회가 궁금하다.
“출연자들도 서로에게 자극을 많이 받았겠지만, 나 또한 그랬다. 이 사람들(출연자들)이 뒤에서 준비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의 무대를 보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노력이 있었으리라’라고 짐작하지 않나. 그래서 무대 위에서의 3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화려한데, 애틋하기도 하다. 에너지를 다 쏟아낸다는 느낌도 들고. 나는 뒤에서의 고통을 대중보다는 조금 더 많이 아니까, 더욱 짜릿하고 멋지다. 이런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Q. 아직 ‘여성 아이돌의 멋짐’을 모르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우리는 아이돌의 ‘이미지’를 사랑하지 않나. 그런데 노래를 열심히 부르거나 춤을 열심히 추다 보면 인상이 찌푸려질 수도 있고, 힘이 들어간 구절을 할 땐 용맹한 표정이 나올 수도 있고, 용감한 노래 속의 캐릭터를 연기할 땐 어깨를 더욱 펼 수도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더 예쁜 표정을 보려고 했을지도 모르고, 더 청순한 옷을 원했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아이돌의 무대에)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이 친구들이 들려주는 노랫말이라는 게 있고,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는 배역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걸 같이 봐주시길 바란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