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지영의 기자 = 일부 증권사 채용면접 과정에서 취업준비생들에게 ‘차렷, 경례’ 등 군대식 인사 방식을 요구하는 관행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면접장에서 이같은 인사 방식을 요구받은 취업준비생들은 강요된 인사가 인권침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투자증권 채용면접에 참석했던 A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면접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인사팀 관계자가 다가와 면접 입장 후 면접관들에게 해야 할 ‘인사 양식’을 정해 지시했다는 것이다. 지시사항은 “입장 후 대표자가 ‘차렷, 경례’ 구호를 외친 후 90도 인사를 할 것”이었다. A씨와 함께 면접에 들어갈 같은 조원들은 인사팀의 이같은 요구에 따라 인사를 해야 했다.
취업준비생들은 DB금융투자, 유진투자증권, 교보증권 등 다른 증권사에서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소위 ‘군대식으로 각 잡힌’ 인사를 요구받았다는 것이다.
제보자 A씨는 쿠키뉴스에 “내가 갔던 증권사 면접 시마다 번번이 이같은 인사 요구를 받았다. 하라고 하니 ‘을 중의 을’인 취업준비생 처지에서는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서 따랐다”며 “이런 인사 방식은 일제의 잔재 아닌가. 증권사들은 왜 이런 악습을 유지하고 있는 건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권사 면접 현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또 다른 취업준비생 B씨도 “면접에서부터 이런 요구를 하는 것 보니 입사해서도 회사생활이 어떨지 감이 왔다. 증권사가 유독 다른 금융권보다도 딱딱하고, 군대식 수직적 문화가 있다는 것은 들었지만 이건 정말 심한 것 같다”며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증권사 면접관들, 관계자들에게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시대가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일부 증권사가 '강하게 요구'하니 습관이 되어 다른 면접장에서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군대식 인사를 먼저 요구하지 않는 증권사 면접 현장에서도 이같은 방식으로 인사를 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평이다. 다른 면접 참가자들이 모두 90도 인사를 할 때 하지 않았다가 '날카로운 눈초리'를 받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차렷’, ‘경례’ 등의 인사 구호는 군대식 인사다. 일왕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의미로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군대식 학교문화인 것. 과거에는 초·중·고교 등 일선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전체 일어서’, ‘차렷, 경례’ 등 강압적인 명령어가 사용됐다. 학생들은 이 구호에 따라서 움직이고, 교사와 교장 등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이같은 강압적인 지시가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는 지적이 무수히 제기되면서 대다수의 교육현장에서는 이같은 문화가 사라진지 오래다. 지난해에는 구치소에서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차렷, 경례” 구호를 외치고 단체로 “안녕하십니까” 등의 인사를 하는 관행이 폭로돼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적에 나서기도 했다. 인권위는 이같은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계기관에 사례를 전파하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증권사 측에서는 이런 논란에 대해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강요가 없으며, 취업준비생의 대다수가 면접 시 행동 양식을 몰라 혼선을 겪기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전혀 강요하는 분위기가 없다. 회사에서는 불필요한 격식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취업준비생들이 깍듯이 인사하면 면접관도 같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분위기"라며 "군대식 인사를 요구하는 인사팀 지침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취업 준비생들이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문의가 많이 온다. 그래서 인사팀 실무자가 도움을 주려는 차원에서 했던 안내가 일부 지원자에게 오해를 산 것 같다”고 해명했다.
다만 이같은 인사가 증권사 업무에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사실상 증권사는 영업이 메인이고, 영업 지점에 가는 합격자들은 고객을 대할 때 깍듯이 인사를 해야 한다”며 “면접장에서부터 그런 인사가 불편하다면, 증권사에 어울리지 않는 인재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ysyu1015@kukinews.com / 그래픽=윤기만 에디터 adrees@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