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과 A교수는 지난 18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법 개정 취지에 대해선 공감하고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단축 시간을 진료과별로 다르게 나누지 않고 일원화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암환자나 수술환자가 많으면 수술 일정을 맞추기 위해 저녁 늦게까지 수술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공의 근무시간이 지금보다 줄면 교수들을 대신해 당직은 누가 서고 환자는 누가 볼 건지 모르겠다”고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전공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전공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 주 80시간인 전공의 수련시간을 68시간으로 줄이고, 최대 36시간 연속 수련시간도 24시간, 응급 상황 시 36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A교수는 “의사는 수술뿐만 아니라 외래를 보고 병동도 돌면서 챙길 게 한두 가지가 아닐 뿐더러 뚝딱뚝딱 할 수 있는 일들도 아니다”라면서 “정치인들이 의사들의 업무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법을 만드니까 현장 어려움은 더 커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전공의를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 전공의들의 교육 수준을 생각하면 사실 주 80시간도 부족하다”며 “특히 외과의 경우 술기적 능력이 중요한데 교육시간이 줄면 그만큼 의료 질은 떨어지고 그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다른 대학병원 내과 B교수는 “전공의를 피교육자가 아닌 노동자로 보는 시각이 잘못됐다”고 짚었다. 환자를 치료하고 살리는 의료행위에 노동이라는 개념이 들어가면 의사는 자신을 고연봉 노동자로 여기고 환자를 고객으로 보게 된다는 지적이다.
B교수는 “갈수록 젊은 의사들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의사라는 직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의사를 선택하는 풍조가 되고 있다”라며 “최근 5년 전만 해도 다들 기회가 되면 대학병원에 남아서 교수를 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소위 인기과 전문의 간판을 달고 개업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전공의 수련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바람도 나왔다.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C교수는 “예전 수련기간이 4년일 때 1주일에 120~130시간씩 일한 게 정상은 아니었지만 교육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지 않더라도 배워가며 훈련하는 면이 있었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수련시간이 반으로 줄어드는 셈인데 이렇게 되면 지식이나 판단 능력, 술기 능력 등이 부족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수련시간만 줄인다고 다가 아니라 전반적인 전공의 수련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며 “전공의들이 항상 뭐라도 배우겠다는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로 임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