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포그(Brain fog, 머리가 멍한 느낌이 드는 것), 발기부전, 안구건조증, 피로. 제가 겪은 탈모 치료제 부작용입니다.”
8일 기자와 만난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하주원(32) 씨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탈모를 겪은 탓에 예방 차원에서 3년간 탈모약을 복용했다. 문제는 약에 의한 부작용이었다. 처음 복용할 땐 괜찮았지만 피로 등 작은 부작용이 생기더니 올해 들어 여러 부작용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현재는 약을 끊은 상태다.
“탈모약을 꾸준히 복용한 이후 애완동물 밥은 줬는지, 오늘 약속이 있었는지 등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기억 안 나더니 급기야 사무실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때 여길 왜 온 건지 모르는 경우가 있었어요. 약 복용 이전엔 야간근무를 해도 쌩쌩했는데 요즘은 너무 힘들고 쉽게 지쳐요.”
약을 끊어도 문제는 이어졌다. 단약 이후 빠지는 머리카락이 부쩍 늘었다. 어느새 정수리가 휑해져 조명이 밝은 곳에 가거나 바람이 부는 날엔 두피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다. 하 씨는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약을 먹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탈모도 탈모지만 이대로 스트레스 받으며 평생 살아야 하는 건지,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요즘 온갖 걱정으로 우울해요. 부작용 없이 탈모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다면 좋겠어요.”
탈모 환자들이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치료제에 기대고 있다. 제약사들이 혁신적인 탈모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아직 임상시험 초기 단계라 허가를 받아 환자들이 사용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탈모 치료 전문가들은 적기에 치료제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크면 오히려 탈모를 키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더불어 영양 있는 식사와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불붙은 탈모치료제 개발 경쟁…‘부작용 해소’ 관건
탈모는 더 이상 중장년층 남성들의 고민이 아니다. 보통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부터 안드로겐성 탈모(남성형 탈모)가 시작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탈모로 병원에 방문한 환자 수는 24만3000여명으로 2016년 이후 연평균 2.4%씩 증가하고 있다. 환자들 중 43%는 2030세대 젊은 환자였다.
탈모 환자가 늘면서 치료제 시장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탈모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약 8조원에 달한다. 매년 8%의 성장을 보이고 있어 오는 2028년에는 지금의 약 두 배 가까이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은 탈모치료제는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로 만들어진 프로페시아 계열(성분명 피나스테리드)과 아보다트 계열(두타스테리드)이다. 고혈압 치료를 위해 혈관 확장제로 개발된 미녹시딜 성분도 피부의 혈류량을 증가시켜 모낭세포의 분열을 촉진하면서 발모를 유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돼 대표적인 탈모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 발목을 잡는다. 피나스테리드와 두타스테리드는 남성의 경우 성욕 감소 등 성 기능을 둔화시키며, 임신이 가능한 여성(가임기 여성)은 태아의 생식기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녹시딜은 투약 중단 후 탈모가 재발하거나 피부가 자극받아 가렵고 붉어질 수 있으며, 과다 사용하면 엉뚱한 부위에 털이 자라는 다모증과 저혈압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발모 작용 기전이 명확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탈모치료제에 대한 수요가 큰 만큼 제약사들의 탈모치료제 개발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국내 탈모치료제 시장 규모는 약 1300억 원 규모로 국내 제약사 중에선 종근당(치료제명 CKD-843), JW중외제약(JW0061), 대웅제약(IVL3001) 등이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 10여개국에 탈모치료제 혁신 신약 후보물질 특허를 출원한 JW중외제약의 경우 내년 상반기 임상시험 개시를 목표로 두고 있다. 독성평가는 비임상시험규정(GLP)에 따라 세계 각 기관에서 수행하고 있다. 더불어 임상용 약물 생산과 경피용(도장용) 제제 최적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JW중외제약은 JW0061이 안드로겐성 탈모증, 원형 탈모증 같은 탈모 증상에 효과적이고 예방효과도 우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8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JW0061이 세계 각지 특허로 확보했다는 것은 곧 혁신적인 원천 기술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라며 “기존 탈모치료제를 대체하는 신약이 될 수 있도록 개발부터 상용화 단계까지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탈모, 심리적 요인 커…객관적 진단 필요”
탈모 치료 전문가들은 새로운 탈모치료제 개발이 기대된다면서도 치료제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동현 분당차병원 피부과 교수(대한피부과학회 홍보이사)는 “탈모치료제 사용 시 어떤 성분이 내 몸에 해로운지 정확히 알고 써야 한다”며 “탈모는 조기에 치료하는 게 중요한데, 만약 치료제 사용 전이라면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검사를 받고 전문의의 객관적 진단을 받길 권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탈모를 부르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심리적 상태가 중요하다”며 “탈모 때문에 크게 우울해하지 말고 1~2년 정도 꾸준히 의사의 상담을 받고 치료하면서 영양을 챙기면 분명 좋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