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구현화 기자]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백화점 입점업체 대표 A씨는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 바람에 상품 납품이 지연됐다. 저조한 매출을 내고 있던 입점업체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백화점은 이를 빌미로 계약을 해지했다. 이에 대해 A씨는 매장인테리어 비용도 회수하지 못하고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비용을 보상해달라고 했으나, 백화점은 공급자 귀책사유이기 때문에 보상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약관을 토대로 보상을 거부했다.
백화점이 입점업체에 대해 약관으로 규정해 두었던 ‘갑질’이 드러났다. 백화점이 입점업체의 매장을 마음대로 변경하고, 계약도 마음대로 해지할 수 있었을뿐더러 판매촉진수수료를 떠넘기는 등 부담도 가중시켰다. 그럼에도 사고가 났을 때 백화점이 져야 할 책임은 회피해 버렸다.
8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전국 13개 백화점업체에 35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다. 이 같은 행태는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 3대 업체는 물론 갤러리아, AK백화점, NC백화점 등 대부분의 백화점에서 폭넓게 나타났다.
백화점은 입점업체의 매장위치와 면적 등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었고, 고객 불만을 이유로 상품 수령을 거부하거나 파견종업원의 교체를 요구할 수 있었다. 백화점은 자의적인 판단을 통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2기의 차임연체만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항도 있었다. 계약갱신을 요구하더라도 중도해지를 할 수 있었다. 이 약관들은 구체적인 사유가 없을 시 백화점이 입점매장을 마음대로 변경하지 못하고, 부득이할 경우 사전 통지를 함으로써 절차적 적법성을 갖추도록 시정됐다.
지금껏 백화점은 입점업체가 점포를 조성한 뒤 인테리어 비용을 청구하지 못하게 하고, 만들어 놓은 조형물 등에 대해서도 회수하지 못하게 했다. 입점업체가 상품납품 지연 등으로 철수하는 경우에도 매장 설비비용을 내주지 않았다. 기간 만료된 경우 채무를 당장 갚아내야 하는 기한 이익 상실 조항도 있어 채무 변제 날짜에 갚을 수 있도록 시정됐다. 입점업체는 백화점의 사전 동의 없이는 권리 양도나 담보제공도 할 수 없었다. 이 경우도 시정됐다.
백화점은 입점업체에게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임대료 미납 등 채무 불이행 시에 연 24%라는 고리의 이자를 부담시켰다. 공정위 고시이율인 15.5%나 시중은행의 평균 연체금리인 15.37%를 훌쩍 뛰어넘은 고금리다. 손해배상예정액이 실제 손해액보다 적은 경우에도 그 차액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해당 조항은 고시이율을 지키도록 시정됐다.
이럼에도 사고가 나면 백화점은 책임을 회피했다. 백화점 내 사고가 났을 때 백화점 면책조항을 사용한 것이다. 백화점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경우에만 책임을 진다고 규정했다. 이는 백화점의 경과실이나 건물 자체의 하자로 인한 사고의 경우에도 백화점이 책임을 지도록 시정했다. 리모델링 등 백화점의 귀책사유로 매장을 사용하지 못한 경우에도 입점업체에게 임대료나 관리비를 부담시키기도 했다. 과실 정도에 따라 감면을 해야 함에도 백화점이 책임은 나몰라라 한 것이다. 이 경우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면해주도록 시정됐다.
이 외에도 적법하지 않은 방법이 버젓이 약관에 들어 있기도 했다. 계약 종료 후 입점업체가 설비 등 자기 소유물을 반출하지 않는 경우 백화점이 일방적으로 이를 반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은 삭제되거나 민사집행법상 적법절차를 거쳐 반출되도록 시정됐다. 입점업체에게 구체적인 요건이나 한계 설정 없이 예상이익의 비율에 따라 판매촉진비용도 부담하게 했다. 이조항은 판매촉진 분담비율이 50%를 초과하지 않도록 시정됐다. ku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