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의 당시 대표였던 존 리 현 구글코리아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를 두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사실상 처벌받거나 책임지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7일 존 리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표시 광고의 공정화에 대한 법률(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리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리 전 대표는 구속 기소된 신현우 전 대표가 물러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옥시코리아 대표직을 맡았다. 검찰은 당초 리 전 대표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의 소비자 피해신고가 들어왔는데도 제품을 수거하지 않았고 인체에 무해하다며 거짓광고를 했다고 봤다.
그러나 이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 자료에 의한 범죄 혐의의 소명 정도와 구체적 사실 관계에 대한 다툼에 비취볼 때 구속의 사유,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했다. 법원은 전 대표의 강제 송환을 추진할 정도의 충분한 증거 마련에 어려움이 있다고 봤다.
검찰은 리 전 대표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결국 옥시의 외국계 임원 사법처리에 난항을 겪게 됐다. 검찰이 이번에 존 리 대표에게 영장청구를 한 것은 외국인 임원에게도 이 사태의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법원의 판결이 이 같이 나오면서 '외국인에게 약한' 한국 법정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옥시 사건의 책임을 영국 본사가 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
당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면서 최종 권한이 있던 CEO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 대체 어디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인지 소비자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배 모(34)씨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이렇게 유야무야 묻어지는 느낌이다"며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샅샅이 수사해서 문제점을 지적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부천에 사는 장 모(33)씨도 "역시 외국계에게 약한 한국 법정을 보여준다"며 "구글코리아에도 실망했고 우리 법원에도 실망감이 든다"고 말했다.
게다가 법원의 판단에는 존 리가 현재 구글코리아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도 무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구글과의 주요 협력사인 삼성전자 등과의 관련성 등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네티즌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존 리 사장은 미국 칼튼칼리지 컴퓨터공학 학사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가정용품업체인 클로락스에서 일하며 클로락스 코리아 대표를 역임한 뒤 2005년부터 옥시 한국법인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2013년 11월 구글에 합류해 2014년부터 구글코리아 사장을 맡고 있다.
리 대표는 구글코리아 합류 때 비IT 출신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구글코리아는 2013년에도 염동훈 전 대표가 갑작스레 퇴사한 뒤 존 리 대표 취임 전까지 3개월 동안 공백기를 겪었다. 존 리를 발탁한 이후 적합한 인물이 아니면 뽑지 않아 공백기를 둔다는 구글코리아의 인사원칙도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구현화 기자 ku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