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있는 그대로 현상을 보지 않고 특정 방향으로 상황을 왜곡시켜 '빨간 딱지'를 붙이는 행위를 '주홍글씨'라고 표현한다. 원래 주홍글씨의 어원은 19세기 미국 작품인 'The Scarlet Letter'라는 책에서 유례 됐다. 내용은 17세기 청교도 사회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청교도 정신을 비판한 작품이다. 미국 보스턴의 청교도 사회는 간음한 여자 헤스터 프린의 가슴에 붉은색의 "A"자를 새겨놓고 다니도록 규정했고, 이 낙인이 찍힌 여성은 얼굴을 함부로 들고 다닐 수 없도록 했다. 이때부터 주홍글씨는 수치나 낙인의 상징이 됐다.
빗대어 표현을 하면, 최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도 이와 흡사하다. 김 장관이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지역을 '청약위축지역'으로 지정하겠다는 발언도 특정 지역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행위와 흡사하다.
앞서 김 장관은 청약조정대상지역에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지역을 '청약위축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청약조정대상지역에 급등지역이 있는 것처럼 과도하게 침체된 지역에 대해선 위축지역을 지정할 수 있게 됐다"며 "지방 주택시장의 변화를 보면서 조정지역 문제에 대해서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위축지역은 최근 6개월간 월평균 주택가격 상승률이 1.0% 이상 하락한 곳 중에서 주택거래량, 미분양 주택수, 주택보급률 등 정부가 정한 일부 요건 중 하나에 해당하면 지정할 수 있다. 위축지역으로 지정되면 지방의 경우 1순위 자격이 청약통장 가입 6개월 이후에서 통장 가입 후 1개월로 줄어든다. 또 해당 지역 우선 청약 요건도 사라져 전국 어느 지역 거주자라도 1순위 청약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정부의 이 발언 이후 지방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규제에도 강남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지방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 들고 있는 상황에서 위축지역 지정은 주홍글씨가 새겨져 침체를 더욱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위축지역 지정만으로 특정 지역의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반전시키기 어렵다. 자칫 정부에서 별도로 위축지역이라고 선포해 관리하는 지역인 만큼 투자를 더욱 기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결국 지방 부동산 시장을 침체의 늪에 빠뜨린 것도 모자라 슬럼화 현상을 가속시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강남 집값을 잡는 데만 집중하면서 지방 부동산시장을 살리기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정책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특정 지역에 '주홍글씨'부터 씌워서는 안 된다. 정부는 당장 시장을 움직이려고 불안정 요소를 제공해 시장을 왜곡시키기보다는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진 기자 lyj@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