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밴드 넬이 어둠 속에서 발견한 것

[쿠키인터뷰] 밴드 넬이 어둠 속에서 발견한 것

밴드 넬이 어둠 속에서 발견한 것

기사승인 2019-10-15 07:00:00

밴드 넬의 보컬 김종완은 1~2년 전 ‘독’에 차 있었다. 2016년 정규 7집 ‘C’를 낸 뒤, 여러 사건사고와 슬픔을 겪어서다. 울림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와 독립 레이블 스페이스 보헤미안을 만들며 처리해야 했던 일과 밴드 신의 상황, 개인적인 관계 등이 그를 옥죄었다. 김종완은 음악으로 ‘독’을 토해내려 했다. 새 음반에 ‘블랙’(Black)이라는 가제를 붙여두고, 밴드 멤버들에게도 “다음 음반은 굉장히 어두울 거야”라고 일러뒀다.

그런데 태국에서 보낸 한 달이 그의 마음을 돌렸다. 새 음반 작업을 위해 태국으로 ‘송 캠프’를 떠났다가 ‘어두운 감정 안에도 저마다의 이유와 다양한 색깔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김종완은 그때부터 부정적인 생각들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작업 중이던 넬의 여덟 번째 정규음반 제목도 ‘컬러스 인 블랙’(Colors in black)으로 지었다. 최근 서울 성미산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넬이 들려준 신보 작업기다.

“음악하는 사람들에겐 꿈 같은 이야기죠.” 태국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던 이재경의 얼굴엔 꿈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정훈은 “서울에서 작업했다면 나오지 않았을 법한 음악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넬은 태국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 12시간씩 음악을 만들었다. 좋아하는 술도 마다한 채 작업에만 매달렸다. ‘내일은 어떤 음악이 나올까’라는 생각에 매일이 설렜다. 김종완은 “순수하게 음악만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면서 “우리끼리의 낭만도 많이 느끼면서 멤버들과 더욱 돈독해진 계기도 됐다”고 말했다. 

타이틀곡은 흐려 가는 우정을 아쉬워 만든 ‘오분 뒤에 봐’. 학창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낸 김종완이 당시 사귀었던 터키인 친구에게서 자주 듣던 말에 착안해 만든 노래다. 멜로디는 서정적인데, “정말 이러다 죽기 전에 몇 번 못 볼 것 같아”라는 가사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김종완은 “가사를 붙이고 나니, 나쁜 내용이 아닌데도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슬프게 다가왔다”고 했다. 이 외에도 음반엔 김종완이 가사와 멜로디를 쓴 8곡이 더 실렸다. 20개가 넘는 작업 곡 가운데, 각기 다른 색을 가진 노래들만 추렸다고 한다.

데뷔 초 넬은 ‘한국의 라디오헤드’라고 불렸다. 어둡고 우울한 정서와 세련된 음악 스타일 덕분이다. 20대 초반이던 네 청년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노래하곤 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곱씹는다. 김종완은 이런 변화가 2012년 발표한 ‘슬립 어웨이’(Slip Away) 음반을 기점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예전엔 제게 일어난 일을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강했어요. 남 탓, 세상 탓을 많이 했달까요. 물론 지금도 안 그러는 건 아니지만(웃음), 그때에 비하면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일어날 일은 뭐가 됐든 일어난다고 말이죠. 예전엔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노래를 만들고 나서 깨달았는데, 요즘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많이 곱씹은 뒤에 음악에 담는 느낌이에요.” (김종완)

경력이 쌓이면서 소리를 디자인하는 데에도 노하우가 생겼다. 특히 김종완은 사운드에 예민하기로 유명하다. 음향 장비도 워낙 많아 ‘전업 엔지니어를 해도 되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는 “우리가 만드는 음악의 모든 소리를 다 알고 싶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번 음반도 마스터링을 세 번이나 거쳤는데, 마지막 마스터링 수정을 앞두고는 “토가 나올 정도”로 힘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 덕분에 “피똥 쌀 만큼 열심히 만들었다고 자부할 만한 음반”이 나왔다는 게 멤버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넬은 연말쯤 새 음반 발매를 기념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지난 8월엔 서울 홍대 인근의 클럽에서 소규모 공연도 열었다. 작은 클럽에서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공연하는 것은 넬에게도 그립고 애틋한 경험이다. 정재원은 “공연 내내 감사한 마음이 컸다”며 “팬들과 멤버들에게 특히 고마웠고, 계속 음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대 후반쯤으로 기억해요. 어떤 팬 분이 ‘정말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넬의 음악을 듣고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왔다. 위로가 많이 됐다’는 얘기를 해줬어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내 얘기를 담은 음악이 다른 이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노래에 밝은 얘기는 없지만, 어떤 식으로라도 듣는 이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점점 더 커져요.” (김종완)

“음악을 매우 좋아했지만 전혀 모르는 상태로 시작해, 매년 뭔가를 배워갔던 것 같아요. 20대 때, 내가 나이 마흔이 돼서도 배우기만 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마흔 살이 된)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네요. 앞으로의 20년도 계속 배우는, 하나라도 아는 게 더 생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정훈)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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