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패소할 경우 최대 5조원으로 전망되는 '론스타 소송' 배상금과 관련 "'세계잉여금'(거둬들인 세금 중 지출하고 남은 돈)을 활용해 국회를 건너뛰고 배상하려던 검토가 정부에서 있었다"고 주장했다.
2018년 말 정부의 KT&G 사장 교체 시도와 청와대의 적자국채 발행 강요 의혹을 제기한 신 전 사무관은 최근 '왜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가'라는 저서를 발간했다.
이 책에서 신 전 사무관은 “재직 당시인 2018년 상부에서 세계잉여금을 '론스타 배상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라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았다”며 “대통령보고 문건을 위한 경제부총리의 지시였다”고 적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2012년 한국 정부 때문에 외환은행을 제때 팔지 못해 46억7950만 달러(약 5조2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냈다. 이 소송에서 만약 패소할 경우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배상금 재원을 두고 기재부 내부 검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행정부에서 처리하는 세계잉여금을 론스타 배상금에 사용하려는 생각은 행정부의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국회를 우회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판단했고, 검토 과정을 거쳐 '세계잉여금으로 상환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부총리의 지시에 반하는 보고서인 만큼 다시 쓰라는 지시가 내려와 재보고를 준비 중에 추가경정예산(추경)이 결정됐다”며 “세계잉여금이 추경 재원으로 쓰이게 되면서 보고서 자체가 없던 일이 됐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 소동에 대해 "제대로 된 토론은 없었고 지시와 수용만 있던 망가진 정책을 만드는 그 자체였다"고 혹평했다.
신 전 사무관은 350여 페이지 총 여섯 장에 걸쳐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해 청와대·국회·언론·행정부 등 권력기관에 대해 쓴 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갑 중의 갑"이라 불리는 기재부의 뒷얘기라며 "해외 출장 시 사무관에게 비데를 챙기게 한 간부", "출장지에 딸을 데려가고 비용 일부만 낸 간부", "업무 시간 직원을 동원해 이사한 간부", "자신이 나간 테니스 대회에서 직원을 응원단으로 동원한 간부" 등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술자리에서 한 간부가 먹던 얼음을 받아먹은 사무관이 '성은을 입었다'고 했고, 옆자리 사무관이 서운해하자 간부가 입에 머금은 얼음을 옆 사무관에게도 줬다"며 "통제받지 않고 감시받지 않은 행정부는 이렇게 파편화되고 사유화되며, 고위 공무원은 '성은을 내리는 존재'가 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국민은 행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잘못된 결정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사회가 더 투명해지고 우리 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제 행동의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신 전 사무관은 자신의 2018년 말 폭로에 대해선 "소신이 반영되지 않은 불만에서 폭로한 게 아니라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공론화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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