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출연하지 않는 배우가 매일 촬영 현장을 찾았다. 촬영을 지켜보며 다른 배우들의 준비 과정과 연기하는 모습을 제3자의 시선으로 지켜봤다. 직접 빗자루를 들고 달 표면으로 표현되는 모래를 쓸기도 했다. 작품이 공개되기 전날부터 마음을 졸였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를 제작한 정우성 이야기다.
2014년 최항용 감독의 단편영화 ‘고요의 바다’가 공개됐을 때부터 정우성은 관심을 가졌다. 원작을 장편영화로 만드는 제작자로 나섰고,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공개하게 됐다. 자신이 출연할 뻔했던 한윤재 대장 역할을 공유가 나서는 순간도, 작품이 공개된 후 전 세계 시청자들의 반응이 쏟아지는 순간도 지켜봤다. 지난 5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정우성은 제작자로서 작품과 함께하는 시간이 “책임감의 연속”이었다고 설명했다.
“제작을 맡은 첫 영화인 ‘나를 잊지 말아요’는 우연히 하게 된 작품이에요. 세상에 작품을 내놓으려는 후배 영화인의 갈망을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즉흥적인 도발이었죠. ‘고요의 바다’는 작품이 좋아서 스스로 의지를 갖고 제작에 참여한 첫 작품입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엔 제작이면서 배우로도 참여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보는 역할에 미숙한 점이 많았어요. 하지만 ‘고요의 바다’는 제3자 입장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돌발적인 움직임을 해결하는 과정에 충실히 임했어요. 촬영 전체를 모두 책임지는 입장에서 즐길 시간은 없었어요.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자극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우성은 단편 ‘고요의 바다’가 가진 설정에 매력을 느꼈다. 우리에게 당연한 물이 사라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흥미가 동했다. 달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작업도 궁금했다.
“지구에 물이 부족해 달에 가는 역설적인 설정이에요. 우리에겐 물이 당연하잖아요. 너무 당연한 건 절실한 것이기도 하죠. 당연한 게 부족할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요.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달에서 물을 발견하는 설정이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단편에선 구현하지 못하는 장면을 인물들이 바라보는 상상의 영역에 맡겼어요. 장편은 단편에서 다루지 못한 세계관 이면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했죠. 단편에서 다루지 않은 서사와 관계를 얼마나 타당하게 집어넣을지 고민하는 작업의 연속이었어요.”
제작자로 촬영 현장을 가는 건 배우로 가는 것과 달랐다. 정우성은 그 순간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실현하는 역할을 했다. 달 지면을 촬영할 때 스태프의 발자국을 직접 지우는 작업을 자처한 것도 중요한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연기하는 배우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전과 달랐다.
“배우로 작품에 참여하면 캐릭터에 몰입된 상태로 상대 배우를 바라봐요. 정우성이 아닌 캐릭터로 보기 때문에 관점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죠. ‘고요의 바다’를 제3자로 지켜보면서 재밌었어요. 배우가 캐릭터를 구현하는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을 운반하는 에너지를 느꼈어요. 캐릭터에서 벗어나 배우로서 현장 사람들과 교감하는 모습도 봤고요. 배우가 멋진 동시에 고된 직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우성은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영화계 이야기도 전했다. ‘고요의 바다’를 공개한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가 지금 빠르게 자리를 잡는 상황이지만, 영화는 다시 제작될 거라 내다봤다.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어요. 코로나19로 빨리 도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영화 업계가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많은 영화 제작사들이 스트리밍 제작으로 넘어가는 건 지금 상황에 맞는 생존 법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는 언젠가 극복할 것이고 그 이후엔 극장 문화도 (OTT 서비스와) 같이 나아가는 상황이 올 거라 생각해요. 저 역시도 극장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오래 이어진 가치를 우리도, 전 세계 사람들도 놓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