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맹증인 줄 알았는데…유전성 망막질환” 실명 두려움 안고 산다

“야맹증인 줄 알았는데…유전성 망막질환” 실명 두려움 안고 산다

망막 세포 돌연변이로 시각 손실
밤눈 어둡고 시야 좁아져…시력 완전 상실하기도
“정기 검진으로 조기 발견 중요”
“희귀 질환 사회적 관심과 치료 접근성 높여야”

기사승인 2022-10-13 06:11:01
박태관 순천향대 부속 부천병원 안과 교수.

“젊은 남성분이 병원에 오셨어요. 시야가 얼마나 좁냐면 (둥글게 말아 쥔 손바닥을 망원경처럼 두 눈에 갖다 대며) 이 정도만 보이는 수준이에요. 밤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셨을 거에요. 그런데 군대를 다 마치셨대요. ‘안 불편하셨어요?’라고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보이는 줄 알았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참 안타까웠습니다. 특정 증상이 나타나서가 아니고, 뭔가 조금이라도 평소와 다르고 이상하다 싶으면 빨리 병원에 가야 합니다”

13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세계 눈의 날(World Sight Day)’이다. 실명과 안질환 예방을 위해 매년 10월 둘째 주 목요일로 정했다. 눈은 신체 기관 중 노화가 가장 먼저 진행된다. 한 번 악화하면 원래 상태로 회복하기도 어렵다. 3대 실명 질환인 황반변성, 녹내장, 당뇨망막병증의 국내 환자 수는 증가 추세다. 

유전성 망막질환 같은 희귀질환도 주목받고 있다. 유전성 망막 질환 환자들은 유소년 시기부터 야맹증, 터널 시야(Tunnel Vision·터널처럼 오직 가운데만 보이는 상태) 등 증상을 겪는다. 일부는 실명으로 이어진다. 순천향대 부속 부천병원 안과 박태관 교수와 지난 11일 만나 유전성 망막 질환 환자들이 겪는 증상, 어려움과 치료 접근성 개선 방향을 들었다. 

정상안과 시야 협착 비교.   사단법인 한국망막변성협회

돌연변이 유전자로 시각 손실…국내 약 1만명 추산

유전성 망막 질환은 유전자 이상으로 시각 정보를 신경 신호로 바꾸는 망막 내 세포(막대세포, 원뿔세포, 망막색소상피세포) 등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을 통틀어 지칭한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갔을 때 어두운 조도에 적응하는 암순응 능력과 색상을 구분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시기능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다.

유전성 망막 질환의 원인 유전자는 250여개 이상이다. 이 중 시각 회로(눈에 들어온 빛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 뇌로 전달하는 과정)에 필수적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는 RPE65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망막색소변성증과 레베르 선천성 흑암시 등 질환을 초래한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유전성 망막 질환 중 가장 흔하다.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점차 파괴되면서 결국 시력을 완전 상실한다. 전세계적으로 인구 3000~5000명당 1명의 비율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약 1만5000명~2만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박태관 순천향대 부속 부천병원 안과 교수.

자꾸 넘어지고 부딪혀요…유전성 망막질환 의심을

유전성 망막 질환 환자는 출생 직후 또는 유소년기부터 증상이 나타난다. 절반 이상이 청소년기인 약 16~18세 사이 법적 실명 상태에 이른다. 

원인 유전자가 많아 증상도 다양하지만 야맹증과 터널시야가 대표적이다. 박 교수는 “병원에 엄마가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방문했다. 아이가 엄마가 건네준 인형을 떨어트렸는데 찾지를 못하는 거다. 시야가 좁아서 잘 안 보이는 것”이라며 “밤에 앞이 안 보이거나, 낮에 길을 가는데 자꾸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다리에 멍이 들고 자주 넘어지는 분들은 유전성 망막 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은 진단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희귀질환이라 정보가 적은 탓이다. 지난 2018년 미국안과학회 소식지 ‘아이넷(Eyenet)’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유전성 망막 질환 환자들은 정확한 진단을 받기 전까지 약 5~7년 동안 최대 8명의 의료진을 거치는 ‘진단 방랑(Diagnostic Odyssey)’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서적 어려움도 크다. 환자들은 학교나 직장 등 사회활동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높은 수준의 우울증, 불안감, 고립감을 호소한다. 영영 앞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상당하다.

대한안과학회.

치료 못 할거라 체념하고 내원 꺼리기도…“사회적 관심을”

이전까지는 유전성 망막 질환 진단을 받아도 근본 치료법이 없었다. 증상에 따라 질환의 악화를 늦추는 보존적인 치료만 진행됐다. 다행히 RPE65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성 망막 질환을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제 ‘럭스터나(성분명 보레티진네파보벡)’가 지난해 9월 국내 허가를 받았다. 럭스터나는 눈에 정상 유전자를 삽입, 환자의 유전체 구성에 변화를 줘 결함을 교정한다. 1회 치료로 완치가 가능한 ‘원샷(One-shot)’ 치료제다. 지난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신청한 상태다.

유전자 치료제 효과 지속성에 대해서 박 교수는 “눈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유전자 치료 효과는 거의 반영구적”이라고 말했다. 만약 세포가 분열하면 눈에 주입된 정상 유전자가 없어질 수 있는데, 눈의 경우 광수용체 같은 중요한 세포들이 분열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희귀 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언급도 나왔다. 유전성 망막 질환 환자는 일상 생활 어려움과 실명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산다. 사회 취약계층인 셈이다. 유전성 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내원을 망설이거나 치료가 어려울 거라고 지레 포기하기도 한다. 환자 수가 적어 사회적 관심도 부족한 상황이다. 박 교수는 “정확한 지식과 병증 예후를 환자에게 전달해 정서적 지지를 주고 치료법을 찾아 나가는 게 의사의 역할이라면,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 지원 등 국가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환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박 교수는 “환자의 예후는 매우 다양하다. 학령기 시력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 85세까지 양안 모두 시력 0.4를 유지한 환자도 있다”면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면 해결 가능한 합병증이 발견돼 시력 보존 기간을 연장하는 사례가 많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본인의 질병 관련 유전자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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