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국민건강보험 재정 당기수지가 적자로 전환된다. 오는 2026년에는 건강보험 적립금이 단 한 달분 남을 것이라는 게 국민건강보험공단 전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적립금은 21조2000억원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는 적립금이 20조1000억원으로 줄어든다. 2026년에는 9.4조원으로 5년 만에 53.5%가 감소할 전망이다. 2026년 적립금 9.4조원은 딱 한 달 (1.0개월) 급여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일 공개한 ‘건강보험 재정전망 및 정부지원 법 개정 필요성’ 자료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올해는 1조원 흑자를 예상했다. 내년부터 1조2000억원 적자를 기록한 뒤 △2024년 2조 △2025년 2.9조 △2026년 5.7조로 적자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건보공단은 △보험료인상률(내년 1.49% 결정 반영) △정부지원율(보험료수입의 14.40% 반영) △수가인상률(2024년 이후 2.09% 유지 가정) 등 세 가지 전제를 기반으로 이 같은 전망을 내놨다.
건보공단은 재정전망 주요 지출 원인으로 고령화와 그에 따른 만성질환 증가를 꼽았다. 건보공단은 “우리나라는 2025년에 고령자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일시적으로 급여비 증가가 둔화되었으나, 고령화 및 만성·중증질환 증가, 의료이용 회복 등으로 급여비는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보재정 누수 원인으로 자동차보험 중복청구와 산업재해 은폐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업무상 재해로 확인된 건강보험 급여액은 308억 2100여만원에 달했다. 산재보험에서 나가야 할 돈이 건강보험에서 지급된 것이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이후 심사와 부당 청구 조사를 통해 90%인 276억원을 환수했지만 여전히 30억원이 넘는 급여를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기관이 자동차보험에 급여를 청구하면서 건강보험에 중복해서 청구한 금액도 최근 5년간(2016년~2020년) 15억원에 달했다.
국민건강보헙법에 따르면 건보 재정 건전성을 위해 정부는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해야 한다. 국고에서 14%,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6%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기준을 지키지 못했다. 내년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액도 법정 지원기준을 채우지 못한다. 지난 13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따르면 건보 재정에 대한 내년 국고지원금은 10조 9702억 4700만원이다. 비율로 따지면 보험료 예상수입의 14.4% 수준으로 20% 상당 금액이라는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이마저도 부칙 일몰 규정에 따라 기한이 올해 연말까지로 정해져 있다.
정부가 현재까지 지급하지 않은 법정 지원금만 30조원에 달한다. 국회에는 ‘건보료 예상 수입액 20%’라고 애매모호하게 규정된 법정 정부 지원기준을 더욱더 명확하게 바꾸고 올해 말로 정해진 정부 지원시한을 삭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건강보험법 개정안 5건(기동민·이정문·정춘숙·이종성·김원이 의원안)이 발의돼 있다.
국정 감사에서도 건보재정 국고지원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3일 강원도 원주 국민건강보험공단 본부에서 진행된 감사에서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일몰제로 운영되는 건강보험 재정 국고지원 규정에 대해 “적당히 책임지려 하는 비겁한 국가 시스템”이라며 “지금까지 일몰제를 둔 것은 기획재정부 통제하에 복지부를 두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당 남인순 의원 역시 “지난 10년간 정부는 국고 지원하기로 했던 20%를 지키지 못했다”면서 “법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일몰제 폐지와 함께 미비한 문제들을 명확하게 명시해서 이러한 문제들의 반복을 끝내야 한다”고 언급했다.
남 의원이 “일몰제 연장을 폐기하고 국고지원을 명확히 하는 방향에 이사장도 동의하나”라고 질의하자 강도태 건보공단 이사장은 “재정관리를 하는 입장에서는 (정부 지원 기준이) 명확히 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