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조나단’이 된 것 같은데 하차하게 돼서 아쉬워요. 동료들과 같이 현장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쿠키뉴스=민수미 기자] 배우 김민수(31)는 무려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MBC 드라마 ‘압구정 백야’ 조나단 역할을 맡았다. 미팅도 수차례, 처음엔 캐릭터도 정해지지 않았다. 끝없는 불안함을 견뎌낸 중고신인의 결말은 극 중 허망한 죽음이었다.
최근 진행된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민수는 드라마 하차에 관해 시원섭섭한 마음을 내비쳤다. “중간에 하차한다는 이야기는 임성한(55) 작가에게 미리 들었어요.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얻은 게 많아요. 연기도 많이 배웠고, 선배님들이나 감독님, 동료 등 사람을 많이 얻었어요.”
김민수는 ‘압구정 백야’서 잘 나가는 유학파 건축가 조나단으로 분했다. 조나단은 엄마가 만나지 말라는 여자는 군소리 없이 헤어질 정도로 부모님의 뜻을 존중하는 성격이지만 사랑하는 ‘백야’(박하나 분)를 만나 부모의 반대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해내고야 마는 강단은 김민수도 다르지 않다.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나 경찰의 꿈을 키우며 자랐던 학창시절, 우연히 모델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무작정 인천서 서울로 상경했다.
“모델 생활 이후 대학교 진학할 때쯤 연기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모델 출신 배우 차승원 선배님이 연기하시는 걸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았죠. 연극과에 가서 재밌게 연기를 배웠어요. 처음에는 힘든 것도 몰랐어요. 하지만 알면 알수록 연기는 어렵더라고요.”
‘압구정 백야’로 이제야 얼굴을 알리게 된 김민수를 신인 배우라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는 2007년 이명세 감독의 영화 ‘M’로 데뷔해 드라마 ‘애정만만세’ ‘나도, 꽃!’ ‘굿바이 마눌’ ‘오자룡이 간다’ ‘천상여자’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해왔다. 오랜 기간 무명생활을 한 김민수는 당시 느꼈던 설움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며 고된 시절을 이겨냈다. 어찌 보면 중고신인들의 꿈의 무대라는 임성한 드라마는 그의 희망이었을지 모른다.
“사실 MBC 드라마 ‘오로라 공주’ 때도 오디션을 봤어요. 전에도 임 작가님 드라마를 많이 챙겨 봤거든요. 신인 연기자라면 임 작가님 드라마를 다들 하고 싶어 할 거예요.”
“그렇게 ‘압구정 백야’에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운도 좋았죠. 오디션 보러 온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그렇게 임성한 드라마에 입성한 김민수는 총 149부작 중 79회 만에 죽음을 맞았다. 죽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결혼식 당일, 백야와 어머니의 병문안을 가다 폭력배들과 시비가 붙었고 벽과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며 사망했다. 그렇게 조나단이란 캐릭터는 끝이 났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두고 ‘압구정 백야’에는 시청자들의 분노와 야유가 빗발쳤다. 직접 연기한 그는 어땠을까?
“일단 아쉬웠죠. 그리고 ‘이렇게 황당하게 죽을 수도 있구나’하고 생각했어요. 부모님께도 보시지 말라고 말해 뒀을 정도니까요. 120회쯤 죽을 거라 예상했는데 놀랐어요. 내심 조나단과 장화엄(강은탁 분)의 깊은 갈등을 기대했거든요. 나단이와 부모님의 대립구도도 아직 남아있다고 봤는데 허무했어요.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야 백야가 혼자 남게 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들이 힘을 얻겠구나 싶었죠. 또 충격적인 죽음만큼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 주신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전개로 당혹스러운 시청자들과는 달리 ‘압구정 백야’ 촬영 현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고 알려졌다. 배우들 간의 호흡도 마찬가지다.
“동료 연기자들 화엄이나 백야, 무엄(송원근 분), 선지(백옥담 분) 간의 호흡은 정말 좋아요. 아쉽게도 은탁이형이나 옥담이랑은 부딪히는 부분이 많지 않았지만요. 하나랑도 편한 분위기가 있어요. 최근 하나가 한 인터뷰에서 장화엄이나 조나단 보다 장무엄이 이상형에 가깝다고 했더라고요. 문자 보냈어요.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웃음) 모두 좋은 사람들이에요. 특히 은탁이 형은 같은 학교 동아리 선배기도 해요. 막상 학교 다닐 때는 잘 몰랐지만 드라마를 같이 하게 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연기에 대한 주변 반응도 대단하다. 김민수는 극 중에서 조나단이 세상을 떠났을 당시 ‘정말 죽은 게 맞느냐’는 주변의 전화를 끊임없이 받아야 했다.
“방송이 나간 후 감독님과 선생님들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해 주시기도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아들이 나오다 보니 모니터를 항상 해주셨어요. 중요한 신이 나간 후에는 반응이 많이 왔어요. 특히 수영장에서 난투극이 일었던 장면에서는 ‘조나단 가운데서 뭐 하고 있느냐, 싸우는데 왜 못 말리나’라는 반응도 있었죠. 지문에 ‘아줌마 힘에 못 이겨’라고 되어 있어서 어떻게 표현을 해아 하나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압구정 백야’ 속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 본다면 어떤 역할을 고르고 싶냐는 질문에 김민수는 약간의 고민도 없이 “그래도 조나단”이라고 답했다.
“만약 화엄 역을 맡았다면 지금의 화엄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요? 저는 제 역할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실제 성격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고요. 애정표현에 적극적이고 다정다감한 조나단처럼 실제 연애 할 때도 그런 스타일이에요. 극 중 재벌가 자제 도미솔(강태경 분)보다 독립적인 백야를 선택하는 것도 제 성격과 비슷해요. 나단이처럼 느끼한 대사를 스스럼없이 하는 건 다르지만요.(웃음) 드라마에서 백야에게 ‘우리 그동안 먹은 것들. 짜장면, 군만두, 칼국수, 수제비 다 밀가루 음식이야. 글루텐. 글루텐 중독되듯이 우리 그렇게 중독된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던 장면이 있어요. 그때는 좀 간지러워서 힘들었죠.”
‘압구정 백야’는 김민수에게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품이다. 화제성과 인지도, 두 마리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작보다 중요한 것이 후작이다. 본인도 다음 작품이 그의 연기 생활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음 작품이 중요하겠죠. 바람이 있다면 다음 작품은 정상적이지 않은 역할을 해 보고 싶어요. 가령 사이코패스나 헌신적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역할인데 알고 보니 반대 성향을 갖고 있거나 하는 역할 말이죠. 동시에 너무 이미지 변신 폭이 크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요. 배우 박신양 선배님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느낌이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강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배우 보다는 여러 역할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연기자가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