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하도 흉흉한 사건이 많아서 그런가, 이젠 무섭지도 않아요. 면역이 됐달까?”
8일 계속됐던 먹구름이 걷힌 날씨만큼이나 경기 시흥시 정왕동에 위치한 오이도 선착장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줄지어 있는 음식점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단체 관광을 와 선착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가족, 친구 단위로 갈매기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선착장 부근에서 여성 토막 시신이 발견된 일은 마치 다른 지역 이야기 같았다.
지난 5일 시화방조제 오이선착장(대부도 방면 4분의 1지점) 부근에서 예리한 흉기에 의해 훼손된 토막시신이 발견됐다. 이후 머리, 양쪽 손과 발 등을 추가 발견, 피해자 신원이 40대 중국 동포 한모(42·여)씨로 확인됐고 이날 오전 용의자로 그의 남편 김하일(47·중국 국적)이 긴급체포 됐다.
시신 발견 이후, 매스컴에서는 연일 이른바 ‘시화방조제 토막살인’ 사건을 보도했다. 계속되는 흉악범죄에 불안감은 전국으로 확대됐다. 특히 장소가 시화호 부근이라는 점에서 걱정은 배가 됐다.
시화호는 경기도 안산시, 시흥시, 화성시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로 1994년 1월 완공됐다. 방조제 길이만 12.6km에 달한다. 면적이 넓고 인적이 매우 드물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지리적 특성 탓인지 시화호 부근에서는 과거부터 시신 유기 사건이 빈번했다.
지난해 3월 시화호의 한 인공 섬에서 머리 없는 40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하지만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현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이외에도 2011년 7월 안산시 상록구 사동 시화호 갈대 습지 공원에서 가출 신고되었던 5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됐으며 2008년에는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안양 초등생 살인사건 당시 범인이 시신 일부를 시화호 인근 군자천에 유기해 일대를 혼돈에 빠트렸다.
뿐만 아니다. 강화 모녀 살인사건 용의자들이 2006년 납치,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10대 여성 사체가 2008년 시화호 인근 하천변에서 발견됐으며 2005년에는 현역 군인이 아내를 살해한 후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시화호에 사체를 유기했다.
이랬던 시화호에서 또 한 번 시신이 발견됐다. 용의자 검거가 보도된 직후, 오이도 선착장을 찾은 관광객들과 외지인들의 이야기 주제는 대부분 시신 유기 사건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오이도 선착장으로 바람을 쐬러 나왔다는 김모(28·여)씨는 “범인이 잡혀서 다행인데 불안감은 여전하다.”며 “이쪽에 사시는 분들은 더 초조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시화 쪽에서 자꾸 무서운 사건들이 발생하는데 지자체에서 나서서라도 사건을 방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김모(61·남)씨 또한 “오이도 쪽에 자주 오는 편이다. 낮에는 그래도 다니겠는데 밤에는 정말 무섭더라. 외국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또 “곳곳에 CCTV가 많으면 사람들 인식이 달라져서 좀 덜할 것 같긴 하다. 이렇게 쭉 다녀보면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곳인데도 경찰을 한 번 못 봤다. 자주 순찰을 돌아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취재하며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 강력 사건 발생에 불안감과 공포심을 호소한 사람들은 거의 외지인들이었으며 오이도 인근 주민들은 태연한 기세였다는 것이다.
시흥시 정왕동을 일대로 택시를 몰고 있는 기사 정모(54·남)씨는 “보면 주민들은 살인사건이나 시신 유기에 관해서 이야기를 잘 안 한다. 하도 여러 번 이런 일이 있어서 그런지 불감증이 온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동네 자체가 수도권에서 외지고 바다도 있고 사람 통행이 거의 없다. 오히려 지나가는 사람이 많으면 이상한 동네다. 몇몇 주민들의 결론은 ‘중국 사람들 무섭다.’ 그쪽으로 몰리더라. 시화공단으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가 굉장히 많아졌다. 그 정도로만 이야기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오이도 선착장 인근에서 바지락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50·여)씨도 “일요일부터 일어난 사건이라 그런지 장사에는 큰 타격이 없다. 손님이 줄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며 “여기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그 사건에 대해 물어봐도 다들 얘기 안 할 것”이라고 말을 줄였다.
시흥시 정왕동 주민 배모(76·남)씨는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이런 흉흉한 사건에 진절머리나 한다. 근데 또 얘기해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어 하진 않는다. 좋은 일도 아니니까 쉬쉬하게 된다. 동네 이미지도 나빠지니까. 이젠 무섭지도 않다. 면역됐다고 해야 하나? 주민들이 많이 둔감해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시화호가 늪지대에 외지고 상당히 넓다. 치안 상태도 경찰 한 명이 담당하는 인원이 너무 많으니까 한계가 있어 보인다. CCTV 설치도 말이 쉽지 뚝딱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인근 주민 주부 이모(56·여)씨 역시 “사건 때문에 불안하기는 뭐. 이런 사건이 많아서 그렇지도 않다”며 “이곳이 다른 도시에 비해 공단 때문에 외국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산다. 그래서 그런지 질서가 문란하다 해야 하나. 그런 점은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택시기사 정모(58·남)씨는 “우리 택시 기사들이나 손님들 보면 이번 사건 때문에 별다른 동요나 두려움은 없다”며 “인적이 없어 자꾸 범행 장소가 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막을 방법은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또 “주민들이 중국 동포에 대한 긴장감은 있다. 택시 기사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손님 열 명을 태우면 다섯 명은 중국 동포다. 특히 술 한잔 마신 중국 동포가 타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요금이 만원이 넘어갔는데 만원 한 장 던지고 내리는 일도 다반사다. 중국 동포들이 많은 지역에 들어가면 절대 경적을 울리지 않는 게 택시기사들의 대응 방법이라면 방법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전문가가 진단하는 시화호의 현 상황은 어떨까?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배상훈 교수는 8일 “시화호 일대는 사람들의 보는 눈이 없고 넓다. 흔히 말하는 늪지대이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지리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다”며 “사실 시화호만이 아니라 안산, 시흥 이쪽 구역들이 외지인이 많다는 점에서 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호수나 저수지, 바다 연안호 등은 시체를 유기하는 데 좋은 조건이라 말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강력범죄에도 무딘 반응을 보였던 현지 주민들의 대응에 “이곳은 토착민들이 많지 않고 쉽게 말하면 뜨내기들이 많은 지역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위협적인 요소를 느끼고 조심하는 면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차피 ‘내 일이 아니고 나만 조심하면 된다’는 생각에 강력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히려 작은 공동체 마을에서 작은 사건이 터지면 정신적 충격이 엄청나게 크다. 그런데 이쪽은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도 없고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이나 걱정이 필요 없는 것이다. 범죄가 일어나도 돈만 벌면, 몸만 떠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밝혔다.
강력 범죄를 막을 방안에 대해서 배 교수는 “전통적인 공동체를 복원하고 권위적인 형태의 완충 시설을 둔다든가 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 볼 만 하다”며 “경기 서남부 지역은 상가 지역과 거주지역이 섞여 있다. 보통 안전한 도시라는 곳은 상업지역과 주거지역 그리고 완충지대가 조화되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 식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강력사건 발생률을 떨어트릴 방안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다만 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주민들도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 보니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CCTV 증설이나 순찰 강화는 정치적 액션으로 의의가 있을지 모르나 그렇게 큰 의미는 없다. 물론 그마저도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 해결 방안은 아니다. 사회적인 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민수미 기자 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