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국민들에게 유병언은 아직 ‘살아있는 자’…세월호의 가장 쓰라린 상흔 ‘불신’

[세월호 1주기] 국민들에게 유병언은 아직 ‘살아있는 자’…세월호의 가장 쓰라린 상흔 ‘불신’

기사승인 2015-04-16 10:33:55
사진=박효상 기자

[쿠키뉴스=민수미 기자] 벌써 1년이 지났다. 지지부진한 진상 규명, 인양 문제를 돌아보면 이제 1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표현이 오히려 적합할 듯 싶다. 세월호 참사가 재조명될 때마다 틈만 나면 고개를 드는 이야기가 있다. ‘유병언 음모론’이 그것이다. 이는 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을 믿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다. 해가 바뀐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제기되는 음모론은 아직도 유 전 회장의 죽음을 석연치 않게 보는 이들이 많으며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종류도 다양하다. ‘유병언 생존설’ ‘유병언 시신 진위설’ ‘해외 도피설’ 등이다. 의심은 끝없이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 전 회장의 포털사이트 연관 검색어에 아직도 ‘유병언 살아있다’가 뜰 정도다.

이른바 ‘유병언 생존설’이 처음 제기된 건 유 전 회장의 사망 소식이 보도된 후 만 하루가 되지 않았을 당시였다.

인터넷에서는 “발견된 시신은 유병언이 아니고 그의 동생이다” “정부가 국민의 관심을 유인하고 유병언에게 도피할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든 상황이다” “다른 사람의 유해를 바꿔치기한 것이다” “유병언의 신체 특징을 알 수 있는 손가락 사진이 조작됐다” “국과수가 DNA 검사 결과를 조작했다” 등의 근거 없는 ‘설(說)’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는 지난해 7월 25일 서울 양천구 소재 국과수 서울 분원에서 유 전 회장 부검 관련 브리핑을 열었다.

서중석 국과수 원장은 시신 의혹과 관련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없이 유씨가 확실하다.”며 “유씨의 생전 담당 치과의사가 보내온 치료 기록과 시체의 치아 상태도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런 이례적인 브리핑에도 국민의 불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국과수 발표 당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과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57.7%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신뢰한다’는 의견은 24.3%에 그쳤고 ‘모름·무응답’은 18.0%였다.

이유가 전혀 없진 않다. 유 전 회장의 유해가 불과 17일 만에 반 백골화 상태가 된 점, 변사체의 DNA 조사 결과가 나오는 데 40일이나 걸린 점, 사인이 분명하지 않은 점 등 국민을 혼란에 빠뜨릴만한 상황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도 많은 이들은 귀를 닫고 음모론을 양산했다. 당시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 대변인은 7·30 재·보선 하루 전날 “최근 발견된 변사체는 유 전 회장 시신이 아니라는 경찰 증언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정치인까지 가세한 괴담은 무책임하게 퍼져나갔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유 전 회장을 둘러싼 음모론을 쉽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블로그·카페, 기사 댓글 등 의심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았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종로 1가, 중구 명동 일대를 돌며 시민들의 현재 생각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거리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진행됐다. 말 그대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다.

바쁜 출근길에 오른 직장인 전모(32)씨는 유 전 회장의 음모론을 묻는 기자의 말에 “인터넷에서 같은 내용을 두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봤다”며 “나도 사실 유병언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쪽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에서 하는 말을 못 믿겠다”라고 전했다.

궂은 날씨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도심 나들이에 나선 주부 이모(38)씨는 “유병언이 죽었다고 보기에는 아직도 의심되는 부분이 많다.”며 “사건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아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답했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 박모(22)씨 역시 “유병언 회장이 죽은 게 아니라 해외로 도피했을 것이란 추측을 하고 있다. 국과수 발표를 믿는 사람도 많지만, 나처럼 믿지 않는 사람도 많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이 같은 음모론을 터무니없는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시민도 있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부근에서 만난 박모(76)씨는 “음모론이 제기될 때마다 사회가 어지러워진다”며 “나라에서 공식 발표한 것은 국민으로서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영업자 이모(55)씨는 “정부에서 죽었다고 하는 데 안 믿을 이유는 또 뭐냐”며 “하나씩 인정하고 넘어가야 다음 상황도 도모할 수 있지 물고 늘어지면 끝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도 “다른 곳은 몰라도 국과수는 믿는다” “이것마저 믿지 않으면 국론 분열이 더 심해질 것이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음모론이 창궐하는 시대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견해는 어떨까?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혜숙 교수는 15일 “음모론은 불신과 불안 심리를 반영한다”며 “사회 전반에 국민들의 불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대한 불신, 특히 권력자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음모론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전말이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아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답답함과 불확실함이 자리 잡았다.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보니 그런 불만이 표출돼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되고 음모론을 믿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이재연 교수는 “‘유병언 음모론’은 심리학에서 ‘낙인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한 사람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끊임없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을 낙인 효과라 한다”며 “유 전 회장은 ‘세월호 사건을 발생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낙인이 찍혀있다. 대중들은 자연스레 죽음 자체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일종의 심리적 편견이다. 세월호 안경을 쓰고 유병언을 바로 본다. 그의 죽음을 발표한 국가도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심리와 흡사하다. 이 심리적 편견은 늘 거짓말 하는 국가가 만든 것이다. 심리적인 과정은 그렇다. ‘유병언 음모론’은 쉽게 얘기하면 ‘머리는 이해되는데 가슴이 이해 안 되는 상황’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현 상황을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며 “공식적인 조사결과가 없으므로 불신 수준이 위험 수준이라 볼 수는 없지만 ‘불신이 크다’라고는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기본적으로 제도에 대한 신뢰가 없다. 권위 있는 발표가 나와 사람들의 이견이 없다면 음모론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 정부가 어떠한 발표를 하면 ‘실상을 다를 거야’라고 생각하는 믿음은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음성적으로 퍼지는 음모론을 막기 위해서는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min@kmib.co.kr
민수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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