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어버이날 문자부터 연애편지 대필까지…시름 깊어가는 ‘글 안 쓰는 사회’

[기획] 어버이날 문자부터 연애편지 대필까지…시름 깊어가는 ‘글 안 쓰는 사회’

기사승인 2015-05-22 05:00:55

‘제대로 쓰려 말고, 무조건 써라’

미국의 단편 작가이자 삽화가였던 제임스 서버(James Thurber)의 말이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SNS 등의 단문 작성에는 익숙하지만, 진정성을 담은 글을 쓰려고 앉으면 첫 줄부터 막혔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한국인들에게 글쓰기란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특히나 가정의 달인 5월은 감사의 마음을 글로 옮겨야 할 일이 많아진다. 어버이날인 지난 8일과 스승의 날인 15일 포털사이트에는 온종일 ‘어버이날 문자’ ‘스승의 날 문구’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 많은 네티즌이 검색했겠지만 마땅한 결과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문자 사이트에는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에 다시금 감사합니다’ 혹은 ‘부모님의 은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처럼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문구들만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연말·연초,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 등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검색 창에 ‘생일 문자’만 치더라도 연관검색어에 ‘친구생일문자’ ‘남자친구 생일문자’ ‘여자친구 생일문자’ ‘엄마 생일문자’ ‘아빠 생일문자’가 주르륵 펼쳐진다. 가까운 지인에게 보내는 짧은 축하 글마저 ‘검색’부터 하는 시대가 온 지는 이미 오래다.

필요성에 의해 글을 찾는 방법은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다. 대필을 이용하는 것이다. 전형이라 인식됐던 자서전, 회고록뿐 아니라 본인의 신상이나 개인 사정이 담겨야 하는 자기소개서, 연애편지 등 대필시장의 영역은 세분되어 가고 있다.

최근 한 대필사이트를 통해 연애편지를 작성한 30대 남성은 “오랜만에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겨 연락을 주고받던 중 사소한 오해가 생겨 사이가 멀어지고 있었다. 오해가 생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고 싶은데 글재주가 없어 막막했다”며 “말보단 글이 진정성 있어 보일 것 같아 대필 사이트를 찾았다. 5만원을 주고 편지를 완성해 상대방에게 전한 상태”라고 말했다.

편지를 대필하는 업무 과정은 간단하다. 대필가가 유선전화나 메신저 등으로 의뢰인의 사연을 듣고 상황에 맞게 초고를 작성한다. 이후 의뢰인에게 검수과정을 거치면 완성된다. 가격은 작가에 따라 달라지지만, 연애편지의 경우 보통 A4용지 한 장 분량에 2만원에서 5만원 정도다.

현재 대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모씨는 “대필의 범위는 특정 전문직의 자서전부터 개인의 사사로운 연애편지까지 분야가 다양하다”며 “대필을 이용하는 고객의 연령 대는 다양하다”고 밝혔다.

이어 “글쓰기가 귀찮아서 대필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부인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본인의 생각을 글로 충분히 표현한다. 그저 더욱 확실한 표현, 매끄러운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것이다. 대충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쓰는 것보다 부드럽고 명확하게 ‘어느 부분을 어떻게 좋아하고 사랑한다’ 등 여러 표현방식을 이용하는 게 글을 받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모씨는 “대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팔순의 노인이나 결혼이주여성 등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잘 몰라 힘들어할 때 효과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대필은 불완전한 글을 보완해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문자로 인해 단문에 익숙해진 상황과 글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 것 등이 스스로 글을 쓰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양산했다고 지적했다.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경연 교수는 21일 “문자사용에 있어 간소화를 추구하다 보니 긴 글을 못 쓰게 된 것 같다”며 “글을 쓴다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인가를 사유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생각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자나 SNS 등을 직설적으로 쓰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에 대해 곱씹어 생각해 보는 태도가 실종된 듯 보인다. 어떠한 현상이나 상황을 두고 깊이 있는 성찰을 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덕호 교수는 “필력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가 일기를 쓰는 습관이다. 일기 내용을 검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기를 썼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정도로 해서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글을 많이 읽는 사람은 글을 쉽게 쓰기도 한다”며 “평소에 글을 많이 접하고 읽는 것도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민수미 기자 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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